어린 시절부터 나는 쓸데없는 생각이 과하게 많았다.
그냥 쉬이 넘길수도 있었던 생각들을 붙잡고 끌어모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탐독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 편히 보내줄 수 있었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생각들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나'에 대한 생각은 찐득한 갯벌에 빠져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처럼 아주 느리게 흘러갔고 자기 전에 내가 했던 생각들을 되돌아보면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역시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들 뿐이었다.
내가 어떤 일을 겪었다면, 그때 당시 내가 어떤 마음이었고 왜 그런 마음을 느꼈는지, 내 주변 사람들은 나의 어느 부분을 인지하는지, 혹은 인지하지 못했는지, 난 그 일에서 어떤 위치였고 비중은 어땠는지, 내가 잘한 것은 무엇이고 못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받은 영감은 어떤 것이었는지, 혹은 영감을 받지 못했다면 어떤 부분에서 그러했는지, 등등이 항상 내 머리속을 채우곤 했다.
또 너야?
여전히 마지막까지 남은 나에 대한 생각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또 다른 자아는 지겹다는 듯이 그 모습을 쳐다본다. 이제 좀 쉬고 싶은데, 이 지긋지긋한 생각은 도무지 나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쩜 이리 한결같을 수 있을까! 당장이고 집어들어 밖에 던져버리고 싶은데, 희뿌연 안개를 움켜 쥔다 해서 안개 조각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의 원흉은 교묘하게 내 손을 빠져나간다.
이 녀석도 연차가 꽤 많이 쌓여서 나를 잘 파악하고 있는 탓이리라. 잡아도, 잡아도, 잡히지 않는다. 내 통제를 벗어난 '이 녀석'은 이젠 생각이란 걸 하고 싶지 않을때도 나타나 날 괴롭힌다.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수가 없다. 어디로 도망가든 내가 도망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 따라와 이렇게 말한다.
어디 나 없이 편하게 살려고.
가장 오래도록 날 괴롭혀 왔던 생각은 바로 '내 존재의 이유'이다.
나는 왜 살아있는 것일까? 나는 이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는걸까? 난 어떤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거지?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걸까?
그런 이유를 찾아내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는 억지로 눈을 감고서라도 위와 같은 생각들을 마주하지 않으려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두컴컴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 나았다. 대답하기 힘든 위와 같은 질문은 그보다 더 암흑같았으니까.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데서 오는 두려움은 보이지 않는 것 이상의 공포였으니까. 눈을 감고 도망치다 넘어지는 것이 그보다는 덜 아팠으니까.
넌 왜 살아있어? 넌 뭐하러 태어났어? 넌 네가 뭔지도 모르면서 왜 사는거야? 피하지 말고 대답 좀 해봐.
처음엔 상냥하게 말을 건네던 이 녀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말투가 거칠어졌다. 폭력적으로 변해갔고 윽박지르듯 나에게 소리치는 일도 잦아졌다. 일정한 형태가 없던 이 녀석은 조금씩 각진 모양으로 변하면서 날 압박했다. 실눈 뜨고 살펴보니 정체모를 네모 모양이었다. 사방에서 날 옥죄어 오는 동시에 내가 있어야 할 공간을 조금씩 잠식해갔다. 이건 무슨 영화 큐브도 아니고, 살아남기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찌되었건 내가 만든 공간에서 내가 위험해지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으니 위 질문에 답은 아니더라도 답 비슷한 뭔가를 내놓기는 해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당시의 내가 뭘 내놓을 줄 알았겠나. 겁에 질려 아무거나 써서 내보였지만 그 답에 영 만족을 못한 이 네모 친구는 모양을 세모로 바꿔 날 압박하기 시작했다. 음, 평평한 면이 날 바라봤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날카롭고 뾰족한 쪽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섬뜩하고 무서웠다.
저기에 찔리면 죽는다.
이 사실을 자각한 나는 필사적으로 위 답의 해법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내 몸 구석구석을 헤집고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내가 살아있는 이유를 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난 결국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토록 허무할 수가 없었다. 통탄하기도 했고 속상하기도 했다. 뭔가가 날 압박하는 것 이상의 상실감이었다. 존재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데 존재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내 몸의 주인인 내가 그런것조차 모르다니. 나에 대해 아는 게 뭐야? 뭘 알지도 못하면서 살고 있었던거야?
가련한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퍼지는 좁은 공간에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던 나는 이윽고 멀쩡하게 살아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수히 많은 가시가 주변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모든 것이 사라진 공간 내에서 어리둥절 한 채 멍하니 있었다.
모른다는 것도 답이 될 수 있는건가? 아니, 어쩌면 이게 정답이었던 걸까?
영문도 모른채 앉아있던 나는 그토록 염원하던,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왔음에도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또다시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참 지랄맞은 본성이 아닐 수 없다.
모른다, 알지 못한다,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다.
그래 어쩌면 너무 일찍부터 그런 물음에 대답하려 애쓴것은 아닐까? 이건 평생의 과제잖아. 평생 찾아 헤매도 모자랄 질문을 너무 일찍 정의하려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거야. 천천히 찾아보자. 아직 시간은 굉장히 많아. 난 아직 어른이 되지도 않았는걸.
그런 편안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했으면 좋았으련만, 역시나 생각과 호기심이 많은 나는 정말 내가 모르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 험난한 길에 또다시 오르고 말았다.
왜 지금 알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할 인생인데, 그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속도를 결정하는 주체가 나인데,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야 될 일인가? 어쩌면 내 안에 있는데 내가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좀 더 열심히 나를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지금 난 정말 최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를 더 열심히 파악해보자. 분명 내 안에 이유가 있을거야.
이유가 있겠지, 분명 이유가 있을거야, 그렇고 말고.. 라며 필사적으로 찾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내가 존재해야 할 적당한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때 그 이상의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모른다는 것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라도 있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라는 것은, 그런 일말의 희망마저도 없다는 뜻이었다.
내가 찾은건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아닌 아무것도 없는 공허 그 자체였다.
보이지 않는다, 지금 내 안에 없으니까 볼 수 없다, 내 안에 없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질문, 그렇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너무 일찍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질문, 하지만 결국은 제대로 직면해야 했던 질문.
답을 찾아내려 애써야 했던 질문, 답을 찾아야 했던 질문.
내 안에 없다, 난 없다.
찾았다.
나는 없다라는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