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집단에 맞게 애버리징을 하면서 보통 본연의 나를 잃게 된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성장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주체성을 잃는 것이다.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기 위해선, 우리는 마모되는 과정에서 나를 지키며 일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춰야 하고 선명한 판단력, 그리고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이는 경험에서 온다.
누구보다 팽팽히 돌아가는 젊은 뇌를 가진 학생 시절의 그들은 영리하다. 습득력이 빠르고 재능이 풍부한 시절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절대적인 경험량과 대처하는 방식 범위가 좁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누구보다 '독재정치'의 위험성에 대해 교육받은 학생들은 결국 파시즘이 주는 단체 세뇌에 빠져들고 심지어 광기에 사로잡힌 학생도 생겼다. 라이너는 통제하지만 이미 시기는 한참 늦었고 그는 결국 체포된다.
교육자가 단 한번 발언으로 인해 자라나는 미래 새싹에 끼칠 수 있다는 영향력을 간과한 채, 라이너 또한 지속된 파시즘이 쌓아 올린 자신의 권위 의식에 빠진다. 정식 교사보다 조건이 열약한 자신의 위치를 충족한다. 라이너처럼 집단과 어울리며 집단에 맞춘 나를 통해 우리는 단체 내 위치를 만들고 권위를 갖는다. 그 위치에서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으며, 입지를 더 빚어 다지면 벵어 선생님과 같은 위치가 될 수도 있다. 예컨대, 관리직이 되어 흔히 간부가 되는 사람을 일컫는다.
간부는 일상생활에서 익히 볼 수 있다. 수평적 구조를 지향하는 회사가 생겨나고 있으나, 수평적 구조 내에 수직적 구조는 엄연히 존재하며 학교 내에서도 직급이 존재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계급은 우리를 나누고, 각 역할에 충실하게 생활하도록 유도한다. 그것이 규율과 연관되어 위반할 시, 그에 맞는 페널티가 부과된다. 당연한 수순이며 규율을 어긴 대가로 벌칙을 받는 것 또한 습관에 배어있다. 이론상 아무 문제 없고 오히려 순조로우며 단체의 목표에 효율적으로 달려갈 수 있다. 물론 한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집단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가? 라는 조건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