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 by 아현(雅玄)
칼날 위를 걸어서 간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피는 나지 않는다
눈이 내린다
보라
칼날과 칼날 사이로
겨울이 지나가고
개미가 지나간다
칼날 위를 맨발로 걷기 위해서는
스스로 칼날이 되는 길뿐
우리는 희망 없이도 열심히 살 수 있다
정호승, 「칼날」 전문
가끔은, 별 수 없을 때가 있다.
애써 붙잡고 있던 미련 한 줌을 놓아버리는 순간.
칼날 같은 양면이 속을 헤집고.
더는 무언가도 기대하기 어렵다면,
우리는 희망 없이 무언가 다른 것을 택하게 된다.
눈이 내리는 겨울에는,
칼날도 시퍼렇게 얼어붙는다.
딱 그만큼의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