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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몇 년 전부터 연애 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이 <환승연애>, <솔로지옥>, <나는 솔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항상 입을 다물고 있는 쪽이었다. '연프 대유행'의 시대에서 연애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대체 남의 연애가 왜 궁금한데?"라는 근본적인 의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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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남의 결혼이라면 조금 궁금할지도? 연프 문외한이었던 내가 넷플릭스 연애 프로그램에 중독되게 했던 일등 공신은 바로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 (원제: Love is Blind)라는 예능이었다.

 

 

 

벽 너머의 상대와 평생을 약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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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는 한국어판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사회 실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출연자들은 몇 주 동안 '포드'라고 불리는, 가운데에 벽을 둔 공간에서 이성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의 외모를 보지 않은 채 오직 대화를 통해서만 탐색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모든 이성과 한 번씩 대화를 나누고, 그 이후에는 자과 잘 맞는 몇몇 상대들과만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상황의 특수성 덕분에 출연자들은 상대의 인종, 외모, 체격을 배제한 채로 약혼 상대를 정할 수 있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외모에 대한 힌트를 주고받을 수도 있지만, 실험의 의도를 존중해 일부러 그러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출연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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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서로의 외모를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약혼의 순간이다. 포드 안에서 약혼을 결정하게 되면, 실제로 만나 약혼반지를 나눠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굉장히 어색하고 부끄러울 것 같지만 대부분의 출연자 상대를 만나자마자 껴안거나 입을 맞춘다. (물론, 인터뷰에서 사실은 어색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출연자들도 존재한다)


얼굴도 보지 않은 채로 결혼을 약속하다니. 조금 해괴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외적 조건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실에서의 연애에 지친 출연자들은 이를 오히려 귀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또, 얼굴도 모르는 상대와 동일한 관심사나 취미, 혹은 비슷한 인생의 궤적을 공유하는 순간은 정말 기적 혹은 마법을 떠올리게 한다. 오직 서로에게 집중하며 깊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다 보면 몇 주 안에 결혼 상대를 정한다는 프로그램의 전제가 그리 이상하게만 느껴지지는 않게 된다.

 

 

 

'포드' 밖에서도 서로에게 눈이 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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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기간 안에 약혼자를 찾는 데 성공한 커플들은 멕시코 같은 휴양지로 신혼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여행은 그간 보고 싶었던 상대와 마음껏 붙어 있게 되는 시간인 동시에, 현실적인 요건들이 밀물처럼 옷깃을 적시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때 가장 흥미로운 관전 요소는 바로 다른 커플들과의 만남이다. 프로그램 특성상 포드에서 마음이 통한 상대가 여러 명인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처럼 마음이 통했던 상대를 각각 약혼자를 둔 상태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의 긴장감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출연자들은 마치 전 애인을 만나는 기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한때 잘 통했던 상대나 다른 이성 출연자의 외모가 현재 약혼자의 외모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 심각한 배경 음악이 앞으로의 불길한 사건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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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친 후 커플들은 이전에 자신들이 머물던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신혼집에서 함께 살며 생활 방식을 맞춰 보는 동시에 각자의 집을 방문해 보고, 부모님과 친구들을 소개한다. 이 부분에서 크게 와닿았던 문화적 차이는, 대부분의 부모님이 몇 주 만에 이루어진 약혼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의 선택을 존중해준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의 의사가 결혼에 큰 영향을 미친 커플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인 것 같다. 오히려 과거의 연애 행적, 재정적 차이, 생활 방식의 차이 등이 결혼의 현실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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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간의 동거를 거친 후, 드디어 결혼식이 다가온다. 이 결혼이 정말 성공적인 결혼으로 이어질지는 당일 신랑 신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 식장을 빌리고,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가족과 친구, 지인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눈앞의 상대와 결혼할 것인지 아닌지를 공개적으로 밝혀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말 부부가 되는 커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세 커플 정도면 많은 편이고, 특정 시즌에서는 어떤 커플도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포드에서 누구보다 잘 맞는 것 같았던 이들이 하객들 앞에서 서로를 깎아내리며 식장을 나서는 케이스도 더러 있다.

 

심지어 이 모든 장면이 방송에 송출된다는 걸 고려해 보면 굉장히 잔인한 시스템인 것 같다. 결혼이 성사되었다고 해도 추후 공개되는 동창회 (Reunion) 에피소드에서 이혼 사실을 밝히는 커플들도 몇몇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짧은 기간 안에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눈이 멀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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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 즉 결혼식 에피소드에서 제작진들은 각각의 출연자들에게 묻는다.

 

"Is Love Blind?"

"사랑에 눈이 멀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출연진들의 대답을 보다 보면, 출연자들이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성격도 잘 통하는데 외모까지 내 취향? 오히려 좋아 - 포드에서 대화만으로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났는데, 실제로 보니 외적 요건까지 취향인 경우.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유형의 출연자들 상대와 대면으로 교류하는 순간부터 애정이 더 커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2. 눈이 멀 정도의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 대화를 나눌 당시에는 너무 좋았지만, 막상 만나 보니 외모가 취향이 아닌 경우. 상대와 헤어질 때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게 되면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하다. 가끔 타 출연자와 약혼자를 비교하는 등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출연자들이 종종 있고, 이 경우 해당 시즌의 '공식 빌런'으로 등극하게 된다.

 

3. 사랑도 좋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 둘의 감정은 여전히 깊지만 재정, 주거지, 생활 방식 등의 요소가 맞지 않는 경우. 특히 이미 자녀가 있는 출연자들이 이러한 상황에 자주 처하게 되는 것 같다. 헤어짐을 결심하는 순간조차 상대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는 게 느껴질 때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4. 사랑에 완전히 눈이 멀어버리다 - 살아온 환경, 인종 등이 다르고 외적 요소도 평소 취향과 거리가 멀지만, 사랑으로 극복한 경우.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유형이다. 이런 커플들은 실험 내내 눈에 띄는 갈등도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금세 서로를 보듬으며 이겨나간다. 개인적으로는 기적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이 아니었다면 뭔가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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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을 시즌 10까지 꼬박꼬박 챙겨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이 프로그램의 끝이 결혼이 아니었다면 뭔가 달랐을까?"라는 생각이었다. 특히 위에서 언급했던 유형 중 3번 유형을 보며 이러한 생각을 자주 했었다. 출연자들 또한 촉박한 시간에 의해 느끼는 압박감을 종종 언급한다. 몇 주 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약혼하고,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니. 아무리 대담하고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도 마냥 쉽지 않은 결정일 테다.

 

그런데 반대로, 결혼이 아니었다면 이 프로그램이 지금만큼 유의미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연애 상대를 고르는 프로그램이었다면 출연자들은 지금만큼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부담이 없으니 더 넓은 선택지를 열어두는 경우도 훨씬 많았을 것이다.

 

물론 사랑의 끝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귀결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회의감이 있는 편이다. 하지 결혼을 제도적 차원에서가 아닌 평생 내 옆을 지켜줄 사람을 정한다는 의미로 본다면 프로그램의 취지를 조금 더 온전히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진정한 사랑을 만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는 요소들을 제쳐둔 상태에서 사랑에 눈이 머는 경험은, 그 끝이 결혼이든 아니든 꽤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는 원조 시리즈인 미국 편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등의 유럽 국가, 아랍, 심지어는 일본 편까지 확장하며 그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나에는 타 국가들의 시리즈도 감상하여 국가 간의 문화적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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