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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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선명히 감지되는 변화는 나에게도 '취향' 이랄 것이 생겼다는 거다. 펑키한 느낌의 재즈를 좋아하고 자기 연민이 느껴지는 인디 음악은 배척하며 덜 직관적이어도 평단이 좋다하는 영화를 보는 정도의 취향 말이다.

 

줄곧 취향이 있는 사람을 동경해왔다. 그동안 나에게 취향이 없었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겠지만, 나보다 훨씬 식견이 넓은 사람 앞에서 바닥이 보인다는 생각에 선뜻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2025년 올해 실상 내가 즐기는 것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넓고 얕은 것도 내 취향임을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를 취향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나를 표현하는 일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깎아내리게 되는데, 어떤 내밀한 일기장 속에서도 독자가 있는 이상 에디팅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말이면 각종 음원 사이트들은 한 해 동안 즐겨 들은 음악을 망라해 ‘음악 나이’를 매기거나, 매달 가장 많이 들은 노래와 가수를 순위를 차례로 보여준다. SNS에 업로드하기 앞서, 목록에 섞인 아이돌 앨범을 슬쩍 크롭해 가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적이 있다. 결국 진짜 나와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 사이에는, 일란성 쌍둥이 정도의 고유한 차이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타인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내 취향을 돌보는 일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다. 이때 내가 이상화하는 방식대로 선호가 정교해진다.

 

올해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은 무엇인지 1위부터 4위까지 꼽아보며, 완벽하게 조각되지 않은 나의 취향을 이곳에 또 한번 전시해 본다.

 

 

 

적재_CLICHÉ (2024)


 

뻔한 외로움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소용돌이.

휩쓸리고 사무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또 한 번의 진부함이다.

이젠 익숙해진 그리움은 상투적이지만 그런대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올해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은, 예상밖에도 2024년에 발매된 적재의 정규 3집 CLICHÉ였다. 많이 들은 '곡' 순서로 정렬하면 이 앨범의 어떤 곡도 순위권에 랭크되어 있지 않지만, 어떤 노래를 듣고자 하는 동기가 없을 때면 이 앨범 전체를 유독 많이 플레이 했나보다. 2집이 음악적 완성도에 무게를 두었다면, 3집에서는 솔직한 감정을 전면에 드러냈다는 아티스트 본인의 말에 철저히 동의한다.

 

같은 가사에 두가지 멜로디로 탄생한 <나의 시>, <나의 고백>은 2집의 〈바람이 불어오네〉와 〈그대〉 쌍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적재의 데뷔곡 격인 〈view〉의 세 번째 버전은 원곡의 도드라지는 기타 사운드에서 일보 나아가 완벽한 연말의 기상과 행진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웅장함을 더해 새롭게 실렸다. 적재의 10년 음악사가 여실히 느껴진다. 이런 곡들을 제치고 나의 베스트 트랙으로는 〈밤이 오면〉과 〈낮잠〉을 꼽고 싶다. 특히 〈낮잠〉은 풍금과 휘파람이 만들어내는 평화로운 사운드 속에 뜻밖이지만 개연성 있는 ‘죽음’ 이라는 키워드를 얹어낸 점이 인상 깊다.

 

 

 

Tom Misch_Geography (2018)


 

영국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톰 미쉬의 Geography가 새삼 2025년의 앨범에 들었다는 것이 놀랍다. 2018년 발매되어 그 즈음에 접한 앨범으로, 함께 소개하는 다른 앨범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오래 들어온 앨범이다. 〈South of the River〉의 바이올린 사운드에 반해 톰 미쉬를 접하고 당시 그리 많지 않던 곡들을 탈탈 털어 듣던게 생각난다. 올해 어떤 순간에 이 앨범을 들었는지보다 되려 고등학교 자습실에서 수학 공책에 인테그랄 기호를 그리며 들었던 기억이 더욱 생생하다.

 

TOP4에는 밀려났지만 다섯번째로 많이 들은 앨범이 존 메이어의 Continuum이었는데 나무위키에서는 톰미쉬를 "존 메이어를 마지막으로 기타 히어로의 명맥이 끊어졌다시피한 현대 음악판에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기타리스트."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럴 때 존재하는가 싶던 취향의 실체를 맞닥뜨린다.

 

세련된 기타리프는 물론 자기 색을 갖추면서도 디스코, 재즈, 힙합 비트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다채로움덕에 항상 만족도가 높은 앨범이다.


 

                                                   

JENNIE_Ruby (2025)


 

셰익스피어의 희극 As You Like It 속 “온 세상은 무대일 뿐이고, 모든 사람은 단지 연극을 할 뿐이다”라는 문장에서 출발한 제니(JENNIE)의 첫 번째 정규 앨범. 나의 TOP 앨범이 아니라 올해의 앨범으로 칭해도 손색이 없다. 남장 여성과 극중극 구조 등 셰익스피어 시대 낭만 희극의 전형을 위시하여 장르와 캐릭터를 오가며 연기하듯 노래하는 제니의 음악적 태도가 엿보인다. 2024년 ‘Mantra’ 공개 이후 이어진 선공개 곡들, 그리고 2025년 3월 정규 앨범 Ruby 발매까지의 흐름 속에서 각 곡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갖는다.

 

앨범에 수록된 15곡 중 7곡이 뮤직비디오로 제작되었고, 코첼라를 비롯해 단독 쇼케이스, 연말 시상식 무대별 편곡을 더한 공연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확장되었다. 같은 곡이라도 무대마다 다른 연출과 퍼포먼스를 선보여 종래에 앨범 컨셉이 완성된 느낌이 든다.


 

 

Michael Mayo_Fly (Deluxe Ediition) (2025)


 

마지막으로 2025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도 초청된 미국의 신예 재즈 보컬리스트 마이클 마요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이다. 2024년 발매된 Fly에 여섯 곡을 추가한 디럭스 버전을 선보였다. 스탠다드 곡인 〈It Could Happen to You〉, 마일스 데이비스의 〈Four〉 같은 리메이크와 함께, 오리지널 곡 〈Fly〉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보컬 루핑을 통해 풍성한 화성을 만들어내는 마요의 연출력과 독보적인 스캣을 5월의 선선한 봄바람과 쌍으로 들어보면 그만한 정취가 또 없다.

 

가끔은 취향전시의 늪에 빠질 때가 있지만 스스로 그 늪을 걸어나올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 늪은 더 이상 빠져죽을 곳이 아니라 나답게 헤엄칠 수 있는 넓고 얕은 바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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