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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클래식에 대한 첫 기억은 8살쯤 엄마 손에 이끌려 보았던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 무대에 올라 첼로를 연주하는 이모를 찾다 감미로운 소리에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 이후로 클래식은 내게 차분한 이미지로 자리잡혀 있었다.


클래식을 다시 조우한 건 알고리즘에 이끌려 듣게 된 첼로 음악이었다. 최근 음악들은 화제성을 위해 숏폼 챌린지에 초점을 맞추거나,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멜로디나 가사로 제작되곤 한다. 얕게만 소비되는 음악들에 지쳐 있던 와중, 우연히 접한 클래식 음악은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익숙하지만 제목은 모르는 고전적인 음악부터, 즐겨 듣던 음악의 재해석까지. 반복 재생을 하며 듣다가, 아예 클래식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지금도 공부할 때나 편안해지고 싶을 때 가끔 찾는다.

 

두 번째 만남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서 이뤄졌다. 밴드 편곡에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구성으로 현장감과 스케일을 더한 공연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이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탄생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자니, 순수한 클래식의 맛이 점점 궁금해졌다.

 

'언젠가 꼭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리라'고 마음을 품던 어느 날, 세 번째 만남이 찾아왔다. 내면을 어루만지며 서로를 위로하는 공연 "MUSICSCAPE - 그림자의 경계에서"였다.

 

'당신도 발끝의 그림자를 좇나요? 저돈데.'

 

제목에서 묘한 친근함을 느낀 나는, 통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덜컥 함께하기로 했다. 그리고 약속한 경계에서 우리는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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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세계와 대면하기


 

전화를 끄고 이내 바깥세상과 잠시 멀어지면, 순식간에 우리는 숲의 한가운데로 향한다. 낙엽 짓이기는 소리, 가지들 사이로 스쳐 가는 바람 소리. 그 사이에 우뚝 선 두 그루의 소리도 숲과 닮았다. 이곳은 우리의 숲이다. 나무 없는 숲은 없듯, 우리 또한 작더라도 분명 세상에 속해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나 혼자의 힘은 드러낼 수 없을 만큼 작지만, 뭉치면 금세 우주가 되듯.

 

그렇게 모여든 우리는 하나의 파도가 되어 흐르고, 때로는 산이 되어 고된 길을 오른다. 평화로운 듯 들려오는 세상의 소리, 그러나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면 각각의 입자는 모두 치열하다. 파도의 방향을 이겨야만 곧게 설 수 있고, 오르막길을 지나야 산 정상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곳은 우리의 오늘이다.

 

우리가 가진 것들은 모두 자연으로부터 왔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은 채로, 우리가 지나온 길들을 머금은 먹을 떨군다. 이 순간만큼은 붓을 다루듯 소리를 쥐고 자신만의 글자를 적어 내려간다. 붓질이 끝말에 다다를수록 먹은 거칠어지지만 이내 단단한 소리를 낸다. 그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을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을까? 선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따라가며 상상해 본다.

 

 


하루하루가 쌓여 세워진 우리에게


 

길의 목적지에 다다르고 해가 밝으니 또 우리는 짊어졌던 세계만큼 자라났다. 지난밤의 성장통은 다시 어제가 되고, 하루만치 바뀐 세계와 마주해야 한다. 견뎌냈으니 앞으로가 완만하기를 바라지만, 자란 만큼 기존의 세계는 좁아진다. 우리는 다시 이 세상을 넓히기 위해 다시 밤으로 걸어간다.

 

틔우는 것, 피우는 것, 뻗어내는 것 모두 삶에 대한 거센 전진의 흔적이다. 바깥에서 보는 우리는 쉽게 타인의 성장을 '아름답다'고 칭한다. 그러나 성장의 기로에 선 각자의 세계는 외롭고, 고통스러우며, 때로는 빛 하나 새어들지 않는다. 그들은 나 자신밖에 모르던 각각의 공간을, 소리를 통해 밖으로 꺼내 보이며 자라내야만 하는 서로를 위로하고, 북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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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한가운데에서 세계를 변주하던 그가 경계면의 뒤로 훌쩍 멀어진다. 자연으로 가득하던 세계가 순식간에 알 수 없는 기계음으로 휩싸인다. 그 사이로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인간의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두 존재는 선 그을 수 없게끔 희석된다. AI는 자아를 갖고, 인간은 AI에 기대는 시대. 불완전한 인간의 존재 이유를 계속해서 되묻는다. 우리는 왜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에게 의존하는가? 왜 인간의 손으로 인간이 설 자리를 빼앗는가? 우리는 그들과의 경계를 허물어야 하는가, 구분 지어야만 하는가?

 

'언제나 거짓은 크게 들리고, 진실은 작게 읊조리죠. 그 작은 속삭임이 세상을 바꿉니다.'

 

자연 밖의 세계에 골똘해진 그때, 다시 그림자와 대면했다. 바깥세상의 구석에서 숨어 지내는 세계는 별이다. 그를 뒤덮은 것은 그림자다. 그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저 너머로 빛을 보낼 수 있다. 빛과 그림자는 필히 동시에 존재한다. 거짓을 택했다고 해서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반대로 진실을 택했더라도 언젠가 거짓을 맞닥뜨리게 된다. 완전하지 못한 우리가 별이다. 그림자의 시간을 반드시 견뎌내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이기에.


 

 

무대와 객석의 경계에서


 

클래식이라고 해서 조금은 딱딱한 무대를 상상했었다. 그러나 웃음과 눈길로 호흡을 맞추며 첫 곡을 시작하는 모습에 덩달아 나의 긴장도 풀렸다. 그들이 보인 열정에 관객들도 박수와 환호로 답했다. 여느 콘서트장과 다르지 않은 열기였다. 자극적 요소 하나 없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나도 조용히 박수를 보냈다. 이번 기회로 클래식과 더 친해져 보기로 마음먹었다. 기대 이상으로 값진 대화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은 내면의 세계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소리는 도구일 뿐이고요.”


이번 공연을 이끈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최인이 공연을 마친 후 건넨 이야기이다. 예술이 가진 기본적인 구성 요소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점점 본질이 희미해져 가는 예술 세계에 묻는 듯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여겼다. 아직 세상에는 오로지 내면을 바라보고자 하는 예술가들이 있구나. 나도 저들처럼 마음의 창 너머로 나아가고 싶다. 그곳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 그림자를 별로 이끄는 삶이고 싶다. 부디 나의 박수소리에서 공감과 존경의 마음을 발견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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