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웃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올해 받았던 질문들 중 가장 인상 깊은 질문이다.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포옹’이었다.
사람마다 힘들 때 버티게 해주는 무언가는 다 다를 것이다. 루틴의 성실함에서, 성취의 순간에서 삶을 이어갈 이유를 찾고 버티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웃을 수 있는 뭔가는 무엇일까.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내가 우는 날, 내가 웃는 날, 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날에도 그저 나를 ‘아무 이유 없이’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힘든 날일 때 더더욱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그래서 백예린의 Square라는 노래의 가사 중 아래 문장을 정말 좋아하는데, 사회생활로 유난히 힘든 나날을 보낼 때 매일 퇴근곡이였을만큼 위로가 되어 준 문장이었다.
“The one who knows I’m here alive today” (내가 오늘 여기에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
그 문장은 마치 나를 대신해 누군가 속삭여주는 것만 같았다. ‘너 오늘도 살아 있구나. 나는 그걸 알고 있어.’ 누군가 나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감각, 그것이 내게는 아주 단단한 위로가 되었다. 퇴근길의 외로움 속에서 그 문장은 나를 안아주었고 “오늘도 잘 버텼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생물학적으로 포옹을 하면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어 긴장이 내려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과학적 설명 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포옹이라는 행동 자체가 주는 어떤 순간적 멈춤인 것 같다.
누군가를 품에 안는다는 건 말 그대로 온몸의 힘을 잠시 풀어주는 일이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일이다. 상대의 체온에 귀를 기울이고, 숨결의 리듬을 느끼기 때문에 행복 호르몬이 나오는 것 같다. 그 짧은 순간 동안은 복잡한 생각도, 어려움도, 다 닳아가는 체력도 잠시 멈추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가끔 포옹을 ‘5초짜리 명상’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짧지만 깊게, 상대와 나 사이의 따뜻한 온기가 하루 동안 쌓인 무게를 아주 조금 가볍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포옹은 어쩌면 언어보다 솔직한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다.
어른이 될수록,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쉽게 손을 뻗지 못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괜찮은 척하는 습관 때문에, 혹은 내가 이미 너무 고단해서.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팔에 잠시 기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 온도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올해가 가기 전에, 지금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을 꼭 안아주면 어떨까?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서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따뜻함을 조금도 아끼지 말길. 포옹 한 번에 세상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그 짧은 5초가 누군가의 하루를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포옹에 대한 글을 짧게 써 두고 연말연초에 만나는 지인들을 만날 때 인사와 함께 꼭 안아주기로 마음먹고 실천하고 있다. 타지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본가에 내려가는 길에 늘 “아빠한테 꼭 안겨야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나자신이 내가 어떤 모습이든 늘 아무런 이유없이 안아주시는 아빠 같은 존재가 되다면, 상대방도 나신도 생각만 해도 위로가 되고 힘들어도 한 번 정도는 웃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