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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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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아토피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피부가 건조하니 가려움을 참지 못해서 계속 피부를 긁곤 한다. 시도 때도 없이 피부가 붉게 돋아오르고, 나도 모르는 새 긁다 손톱이 피범벅이 된 채로 잠에서 깨어 얼음찜질하며 잠 못 이루던 밤도 있다.

 

아토피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치료법도 명확하지 않다. 다시 말해 무작위로 걸릴 수 있는 병이라는 거다. 그러나 한국에서 아이가 병에 걸리면 그 시선은 부모에게도 이동한다. 부모가 뭘 잘못 먹였는지,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는지, 뭘 입히는지. 그것들에 대해 질문하며 이유를 찾고자 한다. 이는 함께 해결하려는 도움의 손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모를, 그중에서도 엄마를 탓하는 손가락질로 이어지기도 한다. 액상과당, 합성 착향료 등 각종 화학물질에서부터 밀가루까지 해로운 음식물을 완전히 끊고, 유기농 식단만을 고수하며 집안의 먼지를 전부 탈탈 털어 없애는 건 쉽지 않다. 이는 환경 파괴, 식품 규제 미흡 및 자극적인 콘텐츠의 유행 등 엄마가 혼자서는 막기 어려운 외부의 환경에서 기인한 불가능이기도 하다.

 

모성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그러나 때로는 그 모성이 많은 이가 자책하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모성이 필연적으로 내재한 본능인지 혹은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른 실천인지 알기 위해서 1980년대 브라질로 가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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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열하지 않는 죽음


 

버클리 대학의 문화인류학자 낸시 셰퍼-휴즈의 저서 [오열하지 않는 죽음: 브라질의 일상적 폭력]에 따르면, 그녀가 브라질 북동부 빈민가에서 어머니와 아이들을 오랫동안 관찰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한다. 당시 브라질 빈민가는 오랫동안 극심한 빈곤, 부족한 공중보건 인프라로 골머리를 앓으며 어린아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브라질의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아이가 하늘의 천사가 되었다는 말만 할 뿐, 담담히 자기 일을 이어서 했다.

 

이 현상은 브라질의 엄마들이 유난히 비정하기 때문은 아니다. 첫 번째 이유는 지역 영아 사망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 여성들은 전 생애에서 평균 9.5번 임신한다. 그중 1.5명의 아이가 사망한 채로 태어나고, 살아서 태어난 나머지 8명의 아이 중 3.5명이 어린 시절 사망한다. 그중에서도 생후 12개월이 되기 전에 사망한 아이가 80%에 달한다. 그곳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엄마가 된 이상, 아이의 죽음은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재난과도 같다. 매일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사회적 상황 때문이다. 가사 노동을 하거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를 집에 두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일터로 향해야 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전략적 육아에 있다. 기저귀가 하나라면 생존 가능성이 높은 아이에게, 약이 1회분이라면 더 회복 가능성이 있는 아이에게 주어야 했다. 이 선택은 엄마들을 폭력적으로 여기게 하지만 엄마들을 그런 선택으로 이끈 건 구조적 환경이기도 하다.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자원의 희소성으로 인한 결과라는 것이다. 낸시 셰퍼-휴즈는 서구 사회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이 많아 무조건적 헌신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지만, 빈곤 사회는 현실을 고려한 전략적 분배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 잦다며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엄마들을 쉽게 비난하게 된다고 말한다.

 

생존을 위해서 여성들은 아이의 죽음에 심리적 거리를 둠으로써 가족을 잃은 고통에 둔감해진다. 이러한 엄마들이 잘못했다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사회가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과 그 책임을 엄마들에게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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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의 방문


 

낸시 셰퍼-휴즈 교수가 20년 뒤 다시 브라질 북동부 빈민가에 모성적 사고와 아동 생존에 대해 연구하고자 재방문했을 때 많은 변화를 깨닫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공중보건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깨끗한 식수가 보급되고, 예방접종이 확대되었으며 보건소가 증가했다. 무엇보다도 산전, 산후 관리가 체계화되어 영아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과거에는 아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애착 형성을 지연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영아 생존 가능성이 개선되면서, 아이의 죽음이 더 이상 일상적이지 않게 되자 엄마들은 아이와 더 깊은 애착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많은 아이를 낳고, 그 중 살아남기를 기대하는 방식이었지만 변화 후에는 아이 수를 줄이고, 살아남은 아이에게 더 많은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양육 방식이 변화를 맞이하였다. 피임 및 가족계획, 여성 교육 등이 확대되면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도 한몫한다. 어떤 엄마는 아이의 죽음에 더 이상 무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크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재임했던 8년간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확대 정책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ília)'가 극빈 가정에 여러 가지 명목으로 현금을 지급하며 2억 인구 중 3천만 명을 극빈자에서 구제하는 등 정치적 변화도 맞이하였다.


물론 극빈층의 영아 사망을 기록하고 그것을 학술지에 소개하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고통의 소비로 비판받을 여지는 있다. 낸시 셰퍼-휴즈 교수가 백인 미국인이며 학자라는 정체성도 현장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제약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인류학의 역할은 현실을 낭만화하거나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들이 맞닥뜨린 구조적 불평등을 가시화하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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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을 다시 묻다


 

낸시 셰퍼-휴즈 교수는 모성이 종과 계급을 뛰어넘어 실현되는 자연적 본성이 아닌 교육, 보건, 빈곤, 정책 등 사회적 요소에 의해서 조건적으로 발현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조건에 따른 발현이라는 말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이는 사회의 불평등과 폭력에 대한 개선 요구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로서 기능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보건, 소득, 주거 등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함은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은 타인에게 주어진 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그를 누구보다 쉽게 판단하고, 비난할 수 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를 알고 난 후 내가 누군가에게 함부로 걱정이라는 이름 아래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를 기꺼이 사랑하게 만드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다. 모성이라는 스위치가 켜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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