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 <레드북>이 2년 만에 관객을 맞이했다.
"찐" 뮤지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라고 들었던 터라, 아직은 문화 체험의 한 부분으로서 뮤지컬을 관람하는 나는 큰 호기심을 안고 극장으로 향했다. 줄거리만 보면 발칙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주연으로 옥주현 배우의 이름이 적혀있는 게 아닌가. 그녀를 진중한 모습으로만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대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또 작품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가 내 주된 관심사였다.
입장한 유니버설아트센터는 <레드북>이라는 무대를 올리기에 완벽히 어울리는 곳이었다. 오페라를 올리는 옛 극장 같은 공간은 좌석과 벽지가 모두 빨강으로 칠해진 데다 군데군데 금칠된 장식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러나 공간 자체가 크지 않아, 정말 레드북이라는 책을 시각적으로 리딩해주는 특별한 무대를 보러온 듯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설레는 마음과 함께 무대의 막이 올랐고, 잘 가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은 전력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안나, 그저 평범한 인간
작품은 생각한 대로 선정적이거나 노골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억압받던 시대, 자유롭고 싶던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만큼 곳곳에 여성의 해방을 상징하는 무대장치 혹은 연출이 등장했지만 자연스레 녹아들어, 은밀할 것만 같던 <레드북>은 경쾌하고 발랄하기만 했다.
안나를 보며 중고등학교 시절 여자아이들을 떠올렸다. 잘 화내고, 잘 웃고, 잘 떠들며, 숨어들어 꺅꺅대던 아이들. 나이를 먹으면서 체면을 차리겠지만, 속은 변하지 않아 다시 만나면 똑같이 맑고 자유분방한 그 친구들. 안나는 이 시대 평범한 여성의 초상으로 다가왔다.
어쩌다 세상이 그렇게 한쪽 성을 위해 기울어졌을지 생각해 보지만, 아무래도 정해진 답은 없다. "모권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엥겔스가 저서에 기술하였듯, 나라를 가릴 것 없이 일어난 이 불균형은 너무나 많은 아픔을 만들었다. 안나와 같은 평범한 인물이 한 시대 전에는 괴팍하고 이상한, 미친 여자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삶의 기쁨을 모른 채 살아와야 했을지 안타까움을 넘어 나의 슬픔이 됐다.
야한 소설을 쓰는 작가. 그것을 지금 시대로 가져온다면야 어디서 명함을 내밀기 부끄러울 직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녀의 소설이 지금 시대의 즉각적이고, 도덕성이라곤 찾아볼 수없는 부류의 작품이 아님을 안다. 오히려 섬세해 사랑을 찬미하는 그녀의 글은, 사실은 뭇 인간의 공통관심사이기에 오히려 보편적으로 재미있는 글이다.
그러니 금서처럼 보이는 레드북은, 오히려 클래식한 레드로 다가와야 그 의미를 다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작품과 공간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클래식인 오페라를 올릴 듯 연회장과 닮은 공간에서, 주류에서 이탈한 여성처럼 보이는 안나의 이야기는 더 넓고 평등한 세상의 주류로서 편입되고, 그녀의 미움 받을 용기는 모두가 사랑하는 평범한 자유가 된다.
안나, 그렇기에 위대한 여성
<레드북>을 보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면, 꼭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쓸 때 고증을 철저히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대극스러운 대사 톤이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경쾌하게 헤쳐 나가게 돕고, 관객으로 하여금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사실 그렇다. 이 작품은 시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일부 여전한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엄격함을 다루고 있다.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안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병원에서의 독백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뇌엽절제술을 받아 눈이 부었을 테지.
안나는 남성이 주인공인 뮤지컬의 여성 캐릭터들보다 상당히 입체적이고, 또 더욱 '사람' 같다. 사건에 기절하지 않으며,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쓰러져 운다거나 초연히 받아들이며 가련한 모습으로 옆으로 비켜나지 않는다. 마냥 관능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고양이처럼 살랑대지도 않는다. 이는 주인공이기에 주어지는 입체성이기도 하지만, 작품이 여성을 남성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녀는 괴팍해 보이지 않고, 사랑의 모습을 자주 상상한다고 해서 변태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마지막 법정 장면에서, 다양한 여성들이 활자의 형태로 연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나의 법적 처벌을 막기 위해 도움을 주는 익명의 편지들은 사회의 분열을 막는 어쩌면 너무 순진한 봉합이기도 하지만, 레드북의 세계에서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지지 방식이었다.
안나는 굽히지 않는다. 설령 국외로 추방되거나 옥살이를 하게 될지라도, 그녀는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를 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무엇을 견디고 또 해낼 수 있는지도 안다. 그리고 그러한 당당함이 결국은 다른 많은 여성의 삶을 바꾸었으니, 그녀의 평범하고 강한 의지는 위대한 것이다.
근래 본 중에 가장 웃음을 많이 터뜨린 뮤지컬이다. 억압을 견디고 맞서는 내용이면서 무겁지 않은 데다, 말장난이 많은 작품이다 보니 특히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