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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최진영의 두 번째 소설집 [겨울방학] 중 마지막으로 엮인 단편 소설 ‘0’을 보며 자연스레 떠오른 노래가 있다. 어쿠스틱 콜라보의 ‘묘해,너와’라는 곡이다. 적절하게 떠올린 건지, 창작자들이 내포하고 있는 주제가 같은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로지 자연스럽게 다가온 느낌 하나로 글을 풀어내 보려 한다. 창작물은 접하는 이마다 다른 해석으로 풀어내고 2차 창작물을 만드는 재미가 있으니까 가볍고도 진중하게 다가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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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단편 소설 ‘0’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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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최진영의 단편 소설 ‘0’은 주인공이 잃어버린 책을 찾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책은 화자의 말에 따르면 ‘친밀한 사이가 될 수도 있었지만 겁이 많고 체념이 빠른 점이 서로 비슷해 결국 친해지지 못하고, 어쩌다 우연히 만나면 의례적인 안부나 겨우 주고받는 사이’로부터 우연히 만나 전해 받았다. 잃어버린 책에 대해 화자가 아는 것이라곤 제목에 ‘earth’가 들어간다는 것과 책 속에 ‘우주는 무자비하다.’라는 문장이 적혀있다는 것. 샅샅이 찾았는데도 보이지 않는 책에 차라리 잃어버렸다는 것마저 잊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 후 만나는 친구마다 잃어버린 책에 대해 질문하지만 서로 벽을 보고 얘기하듯 자신이 할 말만 한다. 모두 각자의 고민으로 괴로워하던 당시 화자가 가진 고민은 ‘글쓰기’에 관한 것이었다. 잃어버린 책을 찾아 헤매던 와중에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문장들이 떠오르는데, 그중 하나가 다음과 같다, “그가 미워지자 무서워졌다.”

 

 

“미움이 생기기에 가장 적당한 상태는 상대를 아주 많이 원하는 것. (중략) 미워지자 무서워졌다는 것.

그것은 어디에서 본 것도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 문장의 정체를 아는 게 목적이라면 상상하거나 이야기를 꾸밀 필요가 없었다.

내가 아주 잘 아는 감정이니까. 답은 내 안에 있으니까.

나는 미워지면 무서워지는 인간이니까.” p.281

 

 

미움과 무서움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하다. 미워하고 싶지 않은 상대일수록 무서워지는 것도 같기도 하다. 미워한다는 감정은 또한 지극히 수동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는 것에는 본인의 의지가 들어갈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혹 미워하려고 다짐한 후에 미워하는 일도 상대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미워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던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리라. 미워한다고 본인에게 딱히 이득 되는 일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누군가를 미워함으로써 얻은 이익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다 타버리고 말 것이다. 미워함은 인간이 다루기 힘든 감정이지만, 애석하게도 동시에 아주 보편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누구나 미워함의 감정은 하나씩 품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떤 대상에든, 그 크기가 크든 작든, 그 깊이 깊든 얕든지 간에, 사람이어서 속에 둘 수 있는 자연스럽고 예민한 감정이다.

 

 
“왜냐면 너무 밉다는 것과 너무 좋다는 것은 반대 의미가 아니니까. 너무 좋으니까 밉고 그래서 무서우니까. 무서운 마음에 할 수 있는 말은 ‘괜찮아’뿐이니까.” p.283
 

 

화자의 이야기 속 등장하는 ‘그’는 화자가 좋아했지만 미워했고 그러자 무서워진 사람이다. 같이 있고 싶은 동시에 같이 있기 싫었던 그의 방에서 한숨도 못 자다가 홀로 아침 일찍 빠져나온 화자는 곧바로 후회했다. ‘나오지 말걸.’ 하지만 화자가 돌아가봤자 그에게 할 수 있던 말은 ‘괜찮아’뿐이었다.

 

 
‘그가 미워지자 무서워졌다.’/ ‘그가 좋아지자 무서워졌다’/ ‘그가 좋아지자 미워졌다’
 

 

미움과 좋음과 무서움 사이에서 이리저리 문장을 만들어봐도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낀 화자. 미움은 좋음을 전제해야 하고 좋음 뒤에는 무서움이 필연적인 듯하다. 좋아하지 않으면 미워하지 않는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좋음이 아닌 싫음과 미움을 한 문장에 놓는 것은 어딘지 어색해 보인다. ‘미워서 싫어졌다’는 미움 전에 좋음이 있으니까 그 순서가 이해가 되어도 (좋음->미움->싫음) ‘싫어지자 미워졌다’는(싫음->미움) 확 와닿지 않는다. 물론 그런 사례가 있을 순 있겠지만 비록 끝이 싫어함으로 갈지라도 미워함은 좋아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흐름을 따라가자면, 미워함의 반대는 무관심 같기도 하다. 관심이 없으면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이어서 좋음 후에 무서움이 필연적인 것에는 간단하게 행복과 불행을 예시 들 수 있다. 흔히들 너무 행복하면 무서워진다고 한다. 앞으로 남은 것이 불행뿐 일까 봐서. 그래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조차 행복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렵다. 다가올 불행이 눈에 선하고 옛 선조들에 따르면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삶의 진리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반대로 불행이 있을 때는 그런 생각들과 말이 도움이 된다. 지금 겪는 불행이 클수록 모순적이지만 고통과 함께 어느 정도의 안심도 함께 오는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행복해지려고.’, ‘이보다 더 큰 불행은 있을 수가 없다.’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행복을 양(+)의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좋아함으로 치환해보면 결이 비슷하다. 무언가 좋아하는 게 생기면 물론 행복할 테지만 그 좋음과 행복의 유효기간을 생각하게 된다. 이 행복이 언제까지 갈까, 좋음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에는 역시 한계가 존재하는 걸까. 그렇게 직면하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두려워하고 두려움은 곧 무서움으로 번진다. 언젠가 잃게 될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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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설 말미에서 화자는 결국 그를 다시 만나러 간다. ‘무서워도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다가 다시 방을 뛰쳐나와 이른 아침 버스에 홀로 몸을 싣게 되더라도’ 의 마음을 감수하면서. 어떤 결과를 맞든 이 사랑을 일으켜보려는 화자는 맞닥뜨리기 두려워하던 것을 지나 그에게 간다. 미움과 좋음과 무서움을 안고 달리는 화자는 어떤 감각으로 점철된 희망을 품은 것일까. 아마 책을 몇 번이고 읽어도, 이렇게 글을 써도, 화자처럼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겠지. 미울 만큼 좋아해 보고, 미워하는 게 무서워져도 좋아하는 마음을 믿고 다시 일어난 사람의 경험을 간접으로 체험한다고 내 것으로 만들 순 없다. 그래서 그런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일구어낸 사람들에게서는 빛이 난다. 결과와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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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묘한 일이야 사랑은

좋아서 그립고 그리워서 외로워져

이게 다 무슨 일일가

내 맘이 내 맘이 아닌걸


- 어쿠스틱 콜라보, ‘묘해,너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떠오른 노래의 가사이다. 소설의 미움, 좋음, 무서움을 노래에서는 좋음, 그리움, 외로움으로 엮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억지처럼 보인대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언급한 노래의 마지막 가사처럼 이 모든 감정은 스스로가 어찌할 수 없는 감정들이다.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아서 가장 답답한 것은 본인이지만 그럼에도 이 감정의 연합을 ‘사랑’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납득한다. ‘아, 사랑은 이런 거구나. 묘하다.’

 

 

이 길이 그 길이 아닌 걸

모르고 떠나온 여행처럼 낯설지만

그래서 한번 더 가보고 싶어져 너와


이렇게 너를 바라볼 때

뭐랄까 나는 행복한 채로 두려워져


- 어쿠스틱 콜라보, ‘묘해,너와’

 

 

노래 속 화자는 소설의 결말에서 화자가 선택한 끝과 닮아있다. -물론 끝이 아니라 시작이겠지만- 그리고 가사의 말미에 ‘행복한 채로 두려워져’ 있음을 깨달음에도 상대와 한 번 더 여행을 떠나보고 싶어졌다는 것에서 결말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으니 상대와 함께하는 현재에 집중하기로 하는, 비슷한 용기를 가진 사랑스러운 화자가 또 한 명 있다. 소설과 노래 속 화자 모두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아마 또 미워하게 되겠지. 그 안에는 걷잡을 수 없는 좋아함이 있을 것이고 또 몇 번이고 무서워질 것이다. 그저 감정들 사이에서 줄다리기 타듯 잘 조절해야 하는 건가? 이 두려움과 미움의 싹을 완전히 도려낼 방법은 없는 걸까?


마지막 질문은 언제 알아낼 수는 있을지, 과연 어떤 방법으로 해답을 찾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영영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고 뜻밖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어쩌면 애초에 답이 없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소설과 노래 속 화자가 조금은 부드럽고 편안하게 사랑의 여정을 떠났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또한 이 노래와 엮음으로서 소설을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만 한정 짓고 싶지 않다. 결말이 스포가 되었어도 결말은 소설 속 과정에 비하면 그저 이야기를 접는 용도일 뿐이다. 노래와 잇기 전에 소설집 안에서도 이 소설만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이 많았는데, 삼킨 주제가 많다. 관계와 기억, 잃고 잊는 것들, 글쓰기와 자기 성찰 외에 사랑이라는 키워드 하나만, 그것도 그 사랑마저 압축시켜놓은 글이다. 짧은 만큼 읽기에도 부담이 없는 이 소설을 부디 천천히 음미하고 사색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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