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경비원의 10년 서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는 저자 패트릭 브링리가 미술관에서 보낸 10년 간의 일들이 압축되어 있다. 사랑하는 형의 죽음으로 모든 게 무의미해진 그는 가족과 함께 보냈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에서 고요한 이끌림을 느낀다. 발걸음이 다시 미술관으로 향했을 때 이미 그는 푸른 근무복을 입고 서 있었다. 예술 작품을 지키며 그 앞에서 했던 모든 사유들이 그를 다시 살게 했다.
저자는 ‘세계 3대 미술관’이라 불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연 70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미술관으로 7만 평의 공간에 300만 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에서 수많은 예술작품과 사람들을 스치며 다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매일 거장의 작품을 지키고 가까이에서 그것을 바라보며 전에는 몰랐던 소중한 의미들을 새롭게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물 흐르듯이 고요히 전개되는 그만의 감상은 조용한 우리의 일상이 실은 얼마나 고귀하고 치열한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를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QR코드로 만나는 손안의 미술관
국내 25만 부 판매를 기념해 제작된 이번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2023 초판 출간) 개정판은 저자가 언급한 167가지 예술 작품을 본문에서 감상하고 싶다는 국내 독자들의 요청을 반영한 것이다. 저작권사의 특별 허가를 얻어 전 세계 여러 번역본 중 오직 한국어판에만 시도된 이례적인 경우라고. 책 하단에 삽입된 OR코드를 스캔하면 고해상도의 작품 이미지와 주요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메트로 박물관의 유물과 예술 작품을 내 방에서 간편하게 감상해 보시길!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삶, 다양한 태도
미술관에 얽힌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흥미로움이 있다. 우선 저자 패트릭 브링리의 직업적 특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데 그는 미술사에 대해 깊이 아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미술관의 경비원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작품을 지켜본 사람이다. 바로 그 지점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그의 관점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그에게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유익한 가이드를 받는 기분이 든다.
함께 일했던 그의 동료를 알게 된 것도 좋았다. 나이도, 국적도, 사연도 저마다 가지각색인 푸른색 근무복 동료 경비원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 것과 그 삶을 꾸려나가는 데 취하는 태도를 보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다잡아본다. 근무복에 가려져서 몰랐었던 그들의 비밀스러운 삶이 계속되기를 응원한다.
저자가 매일 보는 수천 명의 방문객들을 몇 가지의 유형(관광객 유형/공룡 사냥꾼 유형/사랑에 빠진 유형)으로 나눈 점도 재밌었다. 미술관을 찾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조용히 지켜보았던 시간은 그에게 자연스러운 치유를 안겨 주었다. 동시에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독자에게도 활기를 전했다.
또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 2막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기가 오는데 그런 고민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자의 행보를 바라봤던 것도 있다.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사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양한 감상이 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남긴다.
예술과 삶이 연결되는 순간
미술관에 걸린 작품에 대한 사유를 사는 일에 엮어서 풀어낸 점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렇게 보면 예술과 삶은 딱히 경계가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분 없이 서로 자연스럽게 붙어 있는 순간에 오히려 더 위대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 같다.
예술과 삶의 진정한 의미와 아름다움에 대해 알게 됐던 때가 뉴욕에서의 화려한 직장 생활이 아니라 형과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작고 조용한 병실이었다는 저자. 다는 아니지만 그 속뜻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7장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에 그런 내용이 있다. 저자의 형이 갑자기 치킨 너깃을 먹고 싶다고 해서 식구들이 밤거리로 뛰어나가 음식을 사서 돌아오는데 그때보다 더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사랑, 슬픔, 웃음이 가득한 소풍을 즐겼고 그 장면이 꼭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 수확>의 이미지와 겹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광활한 풍경 속 농부 몇 명이 식사를 즐기는 그 일상적인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광경이 된다. 삶은 닮은 위대한 그림?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 저자의 말대로 어느 쪽이 더 빛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두 영역이 경계 없이 섞여 들었을 때가 더 진짜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8장 ‘푸른색 근무복 아래 비밀스러운 자아들’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직원 작품 전시회에서 그의 동료인 에밀리가 만든 커다란 생일 케이크 조형물이 눈앞에 계속 아른거린다. 여러 재료로 구성한 입체 콜라주 같은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자신의 작품을 “자화상이었어요” “모두 저예요”라고 말한 게 이해가 간다. 나를 이루는 것들을 가지고 작품에 녹여냈으니 작품이 곧 나일 수밖에 없는, 그 당당한 정체성이 어느 걸작보다도 빛나 보였다.
어떤 창을 내어 세상을 바라볼까?
누군가의 삶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창이 되어 주기도 한다. 저자의 사유는 가끔 사는 데 필요한 처세술 같기도 하다. 예술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삶 전반에 걸쳐진 무언가 같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방식에 적용 가능한 이야기가 많았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p200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p291-293
종이 위 무엇 하나 그냥 그린 건 없다.
한 획 한 획마다 어려운 임무를 완수하고자 하는 에너지와 야심과 헌신이 깃들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빈 종이 한 장만 있으면 모든 근심을 잊고 혼신의 힘을 바쳐 주어진 과제를 해냈고,
씁쓸한 불평 따위는 일이 끝난 후에나 하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 데 이보다 나은 방법이 또 있을까?
p331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준다.
(중략)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그러나 삶은 군말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씩 우리 삶이 범위가 방대한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무겁기는 하나 그 숙제를 푸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서 이 책이 어느 정도 가이드를 제시해주는 것 같다.
영감을 주는 작품에서 배울 점들을 열심히 찾고 그것을 살아가는 데 연료로 쓰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삶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일종의 태도적인 면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을 ’어떤 창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좋을까?’ 정도로 받아들였다.
이야기의 골자는 예술을 통해 삶을 다시 돌아보며 소중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게 꼭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벽에 걸린 작품이 아니더라도 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애정하는 것으로부터 지혜를 얻고 또 그것을 잘 사용하여 자신만 아는 상처를 잘 보듬는다면 이것만큼 눈부신 일도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정말로 그게 예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