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소풍족을 알았던 건 유튜버 이지다 덕분이었다. 너무나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들. 그 둘이 여행을 한다길래 구독자 수가 2천 명일 때부터 구독을 했던 것 같다. 그전엔 여행 영상을 그다지 재밌게 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봤던 지구촌 같은 영상? 물론 흥미롭지만 재밌진 않았다. 음식의 맛도 풍경도 오로지 타인의 시선과 언어에 의존하는 영상이란 나에게 충분한 자극을 주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소풍족의 영상은 조금 달랐다. 나와 또래인 여성들이 우당탕탕 살아가는 모습이 어딘가 공감도 되면서 동경도 하면서 그렇게 스며들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화자인 그녀들의 말솜씨가 기가 막혔다. 잠깐의 틈새도 놓치지 않으며 서로를 비방하고 또 웃고 그러면서도 배려하고 사랑하고 쉴틈 없는 상황극은 어느새 20분의 영상을 쭉 보게 만들었다.
그들의 영상은 다채로웠다. 그들과 나를 비슷하게 느꼈기에 그들이 하는 말, 느끼는 것들을 나도 그렇게 느끼겠구나 하면서 모든 것들이 가깝게 느껴졌다.
소풍족은 저마다 캐릭터가 있어서 재밌다. 이 책의 저자 김은영과 그의 메이트 박서우. 예민하지만 섬세한 김은영과 섬세하진 않지만 털털한 박서우는 서로의 단점을 멋지게 채워주고 있었다. 박서우는 어딜 가나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가끔은 입이 예민해 먹지 못하는 김은영이 안쓰럽기도 했다.
재밌는 건 시간이 갈수록 김은영의 도전이 보였다는 점이다. “난 예민해서 못먹어”에서 “그래도 한 번 먹어볼까?”로 변할때까지 그녀의 내면엔 어떤 도전과 어떤 마음가짐이 생겼던 걸까 싶었다.
그래서 김은영의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어느때보다 버선발로 달려갔던 것 같다.
제일 생각이 많은 김은영 씨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었을까. 어떤 아픔을 또 견디고 이겨내왔을까.
“계속 두리번거렸지만, 두리번거린다고 사람들은 도와주지 않는다는 지혜만 얻었다.” - p.134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캐리어를 들고 어쩌지 못하던 한 때
소풍족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개그코드였다. 책은 무겁고 진지할 거라는 편견도 잠시 나는 그저 소풍족 영상을 보듯이 책을 읽으면서도 낄낄 거리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웃어본 적이 얼마 만인가. 그것은 정말 순도 백 퍼센트의 재능의 영역임이 분명하다. 텍스트만으로 웃길 수 있다니.
책을 읽으면서 내가 꽤나 소풍족에게 진심이었다는 걸 느꼈던 순간들이 있다.
평소 남에게 별로 궁금증이 없는 내가 그들이 어쩌다가 이 채널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쩌다 서우 언니와 친해지게 된 걸까를 궁금해했었고 이 책으로 인해 궁금증이 해소되어 무척 기뻐하고 있었던 점 때문이다.
김은영과 박서우의 첫 만남 썰도 정말 재밌었다.
김은영이 박서우에게 화장실을 같이 가자고 했지만 박서우는 첫 만남부터 아니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그들은 시간이 훌쩍 흘러 3학년이 되어서야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끈끈함은 영상에서도 흘러나왔었지만 책 중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김은영의 박서우에 대한 편지는 정말 멋졌다. 담백하면서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그러나 얼마나 사랑하는 가를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 전달하고 있었다.
김은영이라는 사람은 예민하고 잘 서운해하지만 본인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반성하고 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매 순간 본인의 행동을 개선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소풍족이 벌써 오년 이나 되었는지는 체감하지 못했었지만 가끔씩 시간차를 두고 소풍족의 영상을 볼 때면 김은영이라는 사람이 정말 변했구나를 느끼고는 했었다.
그녀는 그러나 혼자 변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깨닫게 해주는 여행, 그 속의 사람들, 그리고 박서우를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재밌게도 자신의 성장을 거창하게 말하려 하지 않는다. 늘 그렇듯 유머 속에 적절히 감동을 섞어 가면서 너무 진지해지지 않으려, 너무 슬퍼지지 않으려 한다.
얼마나 부서지듯 깨지듯 살아가는 걸까. 그렇기에 소풍족에게 마음이 쓰이는 걸까? 이 사람은 정말 진심으로 인생을 살아 가고 있구나를 느꼈다.
그녀는 사실은 자신이 보이는 걸 너무 신경 쓴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그녀의 모든 것에 솔직하고 가감 없으며 쉽게 서운해지는 것이 오히려 그녀를 순수한 사람을 보이게 만든다. 타이베이의 작은 소녀 ‘바이’는 어쩌면 은영의 그런 마음을 알아본걸지도 모르겠다. 은영이 그녀를 무릎에 앉히며 시간을 보냈던 그 시간들은 분명 바이에게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을 테다.
은영이라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임이 분명하니까.
그녀는 참 많은 곳을 여행했다. 박서우와 함께 혹은 가족들과 그리고 또 혼자. 몽골, 파리, 타이베이 등. 소풍족에서 봤던 지역들이 나올 때는 참 반가웠다. 몽골 편도 정말 재밌게 봤던 터라 역시 책의 앞머리부터 등장해 주었다. 몽골에서 만난 빌게라는 가이드와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이 오래 지속되었던 이야기. 몽골에서는 화장실이 열악하여 들판에서 볼일을 해결해야 하는데 아무리 초원을 달려도 시야에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 또 그녀가 자신의 생일 12월 31일을 챙기기 위해 홀로 상하이로 떠난 이야기도 재밌었다.
김은영이 설명하는 여행은 다양한 물감으로 칠한 수채화 같았다. 은은하면서 층층이 쌓아 올린 레이어가 이야기에 깊이를 더해주었다. 가끔은 그녀가 물을 너무 많이 묻혀서 종이가 울기도 했다. 그녀는 그것도 그림의 한 부분인 마냥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가 또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그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언제든 들을 준비가 되었으니 또 책을 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