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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것’을 적어둔 목록을 뜻한다. 희망과 열정만 가득할 것 같은 이 단어의 어원은 다소 섬뜩하다. 목에 밧줄을 걸고 죽기 전, 발밑의 양동이를 걷어찬다는 행위에서 비롯된 버킷리스트(Bucket List). 그래서인지 나에게 있어 버킷리스트는 인생의 마지막에나 꺼내야 하는 장엄한 목록같이 느껴지곤 한다.
 
나는 죽음이 멀리에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죽음은 예기치 않게,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찾아올 수도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지금껏 내가 죽기 전 이루고 싶은 일들을 적어본 적은 없다. 언젠가 하겠지, 아직은 괜찮겠지… 마음속의 목소리를 미루고 미뤘던 탓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버킷리스트를 얼렁뚱땅 작성하고자 한다. 아무런 고민 없이 써 내려갈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 별똥별에 소원을 비는 것처럼 말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그 찰나에 떠오르는 마음이 곧 오래도록 품어왔던 바람일 테니까. 우습게도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은 대부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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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나는 취향을 찾고 싶다. 나에게 있어 취향을 찾는다는 것은 곧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일이다. ‘아무거나’라는 말은 이제 질렸다. 지금껏 나는 확신이 부족한 삶을 살아왔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좋아하고, 남들이 꺼린다고 하면 흥미가 식었던 것 같다. 감정에 솔직해지면 다 무너지기나 할 듯이 두려웠던 지난 몇 년이 지겨워졌다. 길고 긴 100세 인생을 채워나갈 버킷리스트도 못 쓸 정도로 흐물거리는 주관은 싫다.
 
취향이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자기 확신과 솔직함은 단순한 동경이 아닌 이해를 불러온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스럽다. 특별한 점이 없더라도, 자신만의 취향과 분위기를 쌓아온 사람들은 빛이 난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도 그들의 취향이 보이는 것은 그만큼 오랜 시간 자신을 탐구하고 다져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취향 그 자체라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건 채워야 하는 체크박스라기보다는, 한 평생을 함께하는 일종의 임무로 봐도 무방하다. 몇십 년, 혹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파헤치고 알아가야 하는 점이겠지만, 일단은 한 걸음 나아가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첫 번째로 달성하고 싶은 건, 무엇을 좋아하냐는 어려운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는 것!

두 번째는 부츠 신기. 이 항목은 다소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단순히 부츠를 신는 것이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무서울 정도로 비슷하면서도 각자만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늘 내 다리가 부츠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부츠를 신는다고 해서 생기는 문제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에 대한 불만족에서 따라오는 생각은 항상 똑같다. 아직 내 진짜 인생은 시작되지 않았다는 생각. 지금보다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는 무조건적인 회피와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자 하는 마음.
 
결론적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단순한 부츠가 아니다. 바로 생각을 바꾸는 것. 목표를 달성하고도 만족하지 못해 결과를 회피하는 것이 아닌 시선을 바로잡는 것. 어떤 것을 하든 결국 내 안의 부정적인 믿음을 깨뜨리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한다. 변하는 방법은 단 하나도 알지 못하지만, 일단은 버킷리스트에 올려두고 싶다. 내가 풀어갈 과제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다니,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세 번째는 엔딩을 보는 것이다. 나에게는 조금 특이한 습관이 있다. 나는 모든 작품의 엔딩을 보지 않는다. 흥미롭게 봤던 그 어떤 작품이든 결말이 다가올 때 즘에는 시청을 멈추게 된다. 즐거움이 끝나기 때문일까? 그저 나만의 결말을 상상하는 게 좋아서일까?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시청 중’인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어쩌면 이건 정말 ‘회피’의 끝판왕 격이 아닐까. 끝을 받아들이는 일에 서투른 나머지 그 끝을 직면하지 않는 것을 택한 것이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대도 끝내야 하는 것들은 반드시 있다. 그런 점에서 싫은 마음을 꾹 참고서라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마지막 화를 누르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동하지 않는 마음을 붙잡고서라도 끝장을 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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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사람들의 버킷리스트가 그렇듯,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일상적인 일이 나에게는 큰 도전이 된다. 마찬가지로 내겐 일상이라 여겨지는 어떤 것들이 누군가의 버킷리스트에 쓰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삶은 재밌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며 경험은 쌓이고, 그 경험은 또 다른 목표를 제시한다. 그래서 삶은 자꾸만 우리를 살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지루한 삶을 살고 있을 때는 스스로 과제를 던져보자.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어보자. 마음에서 나오는 대답은 언제나 새로운 삶의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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