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여행을 하는가. 저자 김은영은 이와 같이 말한다.
낯선 곳을 걸어야만 새롭게 알게 되는 내가 있고,
낯선 맛을 삼켜봐야만 비로소 인정하게 되는 내가 있다.
낯선 햇빛 아래 서야만 새롭게 보이는 내가 있고,
낯선 내가 되어야만 만날 수 있는 내가 있다.
(p.285)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곧 인생이라고 여긴 그녀에게 여행이란 자신을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낯선 환경은 나도 모르는 새로운 모습을 이끌어낸다. 여느 보통날처럼 살았다면 미처 깨닫지 못했을 내면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는 하나 둘 쌓여간다. 그렇게 계속 그녀는 새로운 나를 만나러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오늘도 잘 놀다 갑니다》는 여행 유튜브 채널 ‘소풍족’의 멤버 김은영의 솔직한 여행기를 기록한 책이다. 대학 졸업 후 대학 동기 박서우의 권유로 시작된 해외여행은 훗날 그들을 여행자로 만들었고 소풍족을 탄생시켰다.
여행자의 삶을 만들어준 첫 유럽 여행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이 함께 떠난 5주간의 유럽 여행이 서막이었다. 이 여행은 뚜렷한 목표가 없던 그녀에게 열심히 살아야 할 동기를 만들어 주었다. 여행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코피를 쏟는 열정을 보이며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열심히 살아갈수록 활기를 얻는 그녀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대장정의 유럽 여행이 시작되었다. 첫 해외여행은 새롭고 신기하고 어설펐다. 지나치게 깨끗한 숙소 화장실에 놀라고, 영화에 나오는 프랑스 가정식을 먹어보고, 흔들리는 기차에서 심한 멀미로 고생도 한다. 어느 날은 궂은 날씨에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다른 날에는 멋진 지구의 지평선을 보며 짜릿한 스카이다이빙을 경험한다. 피하고 싶은 인종차별을 면치 못한 날도 있었다. 두 사람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여행의 롤러코스터를 맛보며 그들만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 갔다.
그리고 여행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순간이 있었다. 근사하게 지고 있는 베네치아 노을을 바라본 순간은 그녀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았다. 마음을 말랑하게 해주는 강렬한 노을빛에 비로소 그녀는 진정한 여행을 맞이했다.
노을이 예뻐 보였을 때,
노을이 노을로 보였을 때,
비로소 여행이 여행이 되었다.
(p.21)
혼자만의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이 책은 저자 김은영의 사적인 여행기도 담겨있다.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 그녀는 낯선 타국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
홀로 떠난 프랑스 파리, 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B와 즉흥적인 동행을 한다. 어색함이 공존하는 가운데 그녀는 B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잔뜩 늘어놓고 B는 그저 대답만 했다. 오르세 미술관에 도착한 그들은 함께 또는 각자 그림을 구경했다. 그녀는 이 동행을 끝으로 B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늦은 밤, 새벽 비행기 때문에 일찍 떠날 채비를 마친 그녀의 캐리어 위에는 B가 쓴 쪽지와 르누아르 그림의 자석이 놓여있었다.
포르투칼? 포르투갈? 잘 다녀오세요.
제 이름은 B예요. 까먹으셨을까 봐.
르누아르 좋아신대서 골라봤어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p.179)
자신의 과한 행동에 B가 질려버렸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다. 혼자 단정 지었던 B와의 인연은 계속되고 있었다. 혼자만의 여행을 외롭지 않게 해주는 다정함을 느낀다.
처음 혼자서 떠난 치앙마이 장기 여행에서도 그녀는 새로운 인연들을 만난다. 러닝 중 우연히 만난 태국 여자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그들이 일하는 카페에 초대받는다. 다음날 카페로 향하기 전 바로 옆 식당에 들른 그녀는 그곳에 사는 꼬마 ‘바이’와 부쩍 가까워진다. 바이는 그녀를 매 까올리(한국 엄마)라 부를 정도로 좋아했다. 하지만 잠시 그녀가 한국에 갔다 온 사이 바이와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졌다. 그녀가 한국에 없는 동안 칭얼거렸을 바이와 이를 케어하느라 힘들었을 가족들은 바이를 단호하게 막았다. 언젠간 한국으로 떠날 그녀와 계속 깊은 정을 쌓는 건 바이를 더욱 슬프게 할 뿐이었다.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도 있는 법.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쉬운 이별이 있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머나먼 타국에서 따뜻한 정을 느끼며 새로운 추억을 마음속에 새겼다.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필요한 것
저자는 친구와 떠나는 여행, 홀로 떠나는 여행에 이어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여행도 이야기했다. 그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과의 여행은 무엇이 다를까. 그녀는 엄마와 이모를 데리고 떠난 타이베이 여행을 통해 가족 여행의 조건을 알려주었다.
가족 여행에서 가이드가 되는 그녀가 타이베이를 여행지로 선택한 건 이미 경험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가이드 본인도 낯선 곳을 여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비행기는 한국 국적기를 이용하고, 호텔은 조식이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게 좋다. 그녀는 조식 없이 숙소를 예약해서 아차 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혹시 웨이팅이 있는 식당을 가게 된다면 실내에 있는 곳을 가길 추천하며, TV에 나온 식당을 가면 더욱 좋다고 말한다.
이미 여러 해외여행 경험으로 노하우가 생긴 그녀에게도 가족 여행은 쉽지 않았다. 최대한 엄마와 이모에게 맞춰 여행 일정을 계획했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야심 차게 준비한 아침 식사 메뉴는 엄마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해외여행 시 컵라면과 김치를 챙겨가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준비한 타이베이101 야경은 안 가면 안 되냐는 엄마의 말 한마디로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결국 그녀는 서러움을 토로한다.
가깝고 편한 사이일수록 더욱 소중히 여겨야 된다고 다짐하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짜증에 쉽게 무너지고 만다. 그래도 다시 한번 다짐하며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본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여행에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 속에 즐거움도 가득했으니까, 그렇게 가족 여행은 계속 이어진다.
이 외에도 몽골, 러시아, 중국 여행 등 그녀의 여행 에피소드는 가득했다. 그녀는 달라지는 여행지처럼 다채로운 경험을 했다.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넓은 세상을 마음껏 보고 들으며 만끽했다. 그 경험은 스스로와 친해지고 단단해지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시작은 무섭고 떨리지만 용기 내어 한 발짝 나서면 뜻밖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안다.
이것이 우리가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이자 그녀가 여정을 멈추지 않는 이유이다.
여행은 짧은 여행이고, 인생은 좀 더 긴 여행이다. (p.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