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 지 1년이 남짓 지난 무렵, 소속된 곳이 없는 상태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로움이 밀려온다. 거실에서 가족들과 하하호호 떠들며 같이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혼자 방에 들어온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문득 외로워지기도 한다. 도대체 외로움이란 뭐길래 혼자 있는 인간의 곁을 맴도는 걸까.
‘왜 외로움이 생존과 관련된 다른 정서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됐는가?’라는 물음에 도서 『외로움의 함정』의 답변은 간단하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적 연대라는 토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외로움을 느끼는 감각은 인류의 기본적인 생존 기능이다.
외로움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하는 필수적인 정서적 요소이지만, 반대로 인간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파괴할 수도 있다. 개인의 일상생활에 확연한 지장과 함께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영위하는 데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외로움이 심화되고, 그 끝에는 개인의 고립이라는 함정에 다다르게 된다. 고립은 외로움의 끝에서 만나는 최종 함정이다.
고립은 특정 심리적 과정을 거쳐 자기방임과 고독사로 이어진다. 해당 감정의 과정 중 인상 깊은 부분은 ‘분노’와 ‘수치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면의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고 조절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분노를 통제하는 법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분노를 잘못 표출하여 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분노를 표출할 자신이 없어 분노의 방향이 자신을 향하면서 우울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면의 감정을 표출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이 외로움, 그리고 자기방임으로 향하는 현실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현대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분노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
수치심은 나또한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감정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못해 수치심을 느낀다. 이로 인해 사회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른 사람의 지지와 인정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간다. 일종의 ‘일중독’ 상태에 빠지기도 쉽다.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외로움을 누르며 일만 해 감정이 메말라 가기 시작한다. 지나치게 감정을 통제하고 살아가고, 일에 매진한다. 이런 경쟁적 태도는 인간관계의 정서적 교류의 결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요즘 사회는 경쟁을 부추기고, 감정과 인간관계의 교류를 메마르게 만드는 상황을 장려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고립은 전 세대를 위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청년층에 속한 사람으로서, ‘도망칠 수도 있다는 선택지’의 내용이 와닿는다. 시간의 틀에 맞춰 살기를 바라는 사회, 내 의지가 아닌 사회가 정해놓은 대로 맞춰서 사는 것을 ‘강요’하는 듯한 사회의 풍조는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때로는 나를 위해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고, 그런 선택을 한 청년을 잠시 기다려줄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고독사의 가장 취약한 계층은 중년층 남성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가부장적 제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가부장적 문화의 붕괴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 및 역할에 대한 혼란, 남성 특권의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아들’, ‘아버지’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나’라는 개인은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 대한 이해, 감정의 인식과 표현에 미숙해 중년기에 접어들어 심리적 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고립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처방을 다른 국가의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남자들의 오두막(Men’s Shed)가 있다. 이 커뮤니티는 남자들의 사회적 관계 형성의 어려움에 대한 지역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모임을 처음 만든 사람은 호주의 사회혁신가 맥신 체이슬링이다. 그는 일을 하면서 나누는 표면적인 대화에서 편안함과 친근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남성들의 특성을 고려해 목공을 하는 오두막을 설계했다.
도서 『외로움의 함정』은 청년에서 노년까지 모든 세대가 고립에 빠질 수 있음을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중장년층 남성이 고립 및 고독사로 빠지게 되는 이유 및 그들의 심정을 잘 담아냈다. 조금은 멀게 느껴졌던 고독사가 내 아버지뻘에 해당하는 남성들에게 자주 닥친다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평생 일에 몰두하다가 쓸쓸히 죽어가는, 일 밖에 모르는 수많은 가장들의 말년이 외로움과 고립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책의 말미에는 고립에 빠지지 않기 위한 개인의 접근법이 제시되어 있다. 가장 마지막으로 제시된 ‘건강한 방식으로의 퇴행’은 누구보다 사회 속 어른으로 고생한 중장년 남성들에게 필요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