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든지 확실하고 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열린 결말이 아닌 닫힌 결말, 읽기 쉬운 문체의 소설 등, ‘직관적으로 머리에 꽂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내가 <영혼 없는 작가>의 책 소개를 처음 읽었을 때, 느낀 당황스러움은 상당했다.
“픽션과 에세이가 서로 몸을 바꿔가며 단어와 문장, 글이라는 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향연을 눈부시게 선보인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부터 연필, 타자기, 중세도시, 통조림, 전철, 배우, 알프스 터널, 일요일, 음악, 파울 첼란까지 실로 다양해서 소재별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픽션이면 픽션이고, 에세이면 에세이지, 서로 몸을 바꿔 간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대체 저 뚱딴지 같은 단어들을 어떻게 연관 지었을지도 감이 안 잡혔다. 하지만 동시에, 흥미가 일었다. 일본어와 독어, 이중 언어를 구사한다는 작가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결국 나는 그 모호함의 세계에 빠져 보기로 결심했고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자유롭게 생각하기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작가가 묘사하는 사물과 상황들이 자유로운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결코 우리가 원래 알던 통상적인 단어와 문장을 동일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구불거리는 좁은 골목들은 나에게 거칠고 위험해 보였다. 마치 회색 비늘을 가진 큰 뱀들 같았다. 집을 짓기 전부터 이 뱀들은 아마도 도시 여기저기를 가로지른 채 가로세로로 누워 있었을 것이다. 분명 그 위에 도시를 지으면서 그 자고 있는 뱀들을 깨우면 안 되었을 것이다.” (72p)
위 문장은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라는 챕터에서, 작가가 유럽의 한 좁은 골목길을 묘사한 부분이다. 평범했던 유럽의 골목은 작가가 묘사한 문장에서 ‘회색 비늘을 가진 큰 뱀’이 된다. 심지어 그 뱀들은 도시가 지어지기 전부터 자고 있던 뱀이라고 한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추상적이고 신화적인 문장인데, 어쩐지 곱씹고 있다 보면 머릿속에 유럽의 좁은 골목길, 뱀을 닮은 골목길, 더 나아가서 커다란 회색 비늘의 뱀들이 길게 똬리를 틀고 잠들어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다와다 요코는 우리의 머릿속에 정형화 되어 있던 언어의 표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벗어나는 방법을 아는 작가인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이러한 마법은 <영혼 없는 작가> 의 모든 문장에서 드러난다. 사랑과 광물학, 사전과 마을... 생소한 조합의 단어를 연결시켜 하나의 픽션을 만들어 내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중 언어 구사자
다와다 요코가 이처럼 자유로운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에는, 그가 일어와 독일어 두 가지의 언어를 경험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일수록, 새롭게 생각하기 어려워한다.
우리의 모어라고 할 수 있는 한글을 예시로 생각해보자. ‘작가’라는 한국어 단어가 있다. 우리는 이 단어를 사용할 때 ‘작가’가 왜 한국어로 ‘작가’인지 의문을 가지는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작가라는 단어는 작가니까.
하지만 우리가 독일어로 ‘작가’가 ‘der Schriftsteller’ 이라는 것을 듣게 된다면,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원리로 이 단어가 되는 거지? 여기에서 철자가 하나라도 빠진다면 작가가 될 수 없는 건가? 하고 자유롭게 의문을 제기해 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다와다 요코가 말하고 있는 ‘모어에서는 생각이 단어에 너무 꼭 들러붙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독어를 단어의 스테이플러 심 제거기처럼 사용할 줄 알았다.
“가끔 나는 모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구역질이 났다. 그 사람들은 착착 준비해 척척 내뱉는 말 이외의 다른 것은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83p)
“모어에서는 단어들이 사람과 꼭 붙어 있어서 도대체 언어에 대한 유희를 하는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모어에서는 생각이 단어에 너무 꼭 들러붙어 있어서 단어나 생각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가 없다. 외국어를 쓸 때는 스테이플러 심 제거기 같은 것을 갖게 된다. 이 제거기는 서로 바짝 붙어 있는 것과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을 모두 떼어놓는다.” (48p)
자유롭게 읽기
영혼이 있는 사람이어야 무엇을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영혼을 잠깐 내 몸에서 때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작가가 되어 단어와 문장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것을 원할 때는 ‘영혼 없는 작가’가 되어 보고 싶다. “긴 여정에 대한 이야기는 영혼이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다”는 다와다 요코의 말처럼, 영혼을 때어 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생각은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유롭게 읽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추상적인 것을 기피하던 나에게 이 영혼 없는 작가의 책이 깨달음을 안겨줬듯이, 생각을 활짝 열고, 편견에 휩싸이지 않고, 자유롭게 읽어야겠다. 그 무엇이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