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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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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다. 당대의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삶의 의미와 자아 성찰의 키워드는 현재까지도 문학의 미적 가치와 철학적 사유를 깊게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데미안은 어떤 작품보다도 내밀한 마음의 양식이며,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들의 실체적인 현상이다. 또한 작품을, 글을, 문장을 읽으며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는 작품과 공감대를 형성하여 한결 친숙한 거리를 유지하는 힘이 된다. 그러다가 곧 우리는 '에밀 싱클레어'이자,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빠져든다. 또 시간이 흐른 뒤, 이제는 자신이 '싱클레어'이고, '데미안'이며, '헤르만 헤세'가 되어서 돌아온다.

 

작품의 배경을 살펴보면, 제1차 세계대전과 칼 융의 제자인 정신분석가 'J.B.랑'에게 받은 상담 치료, 앞서 언급한 필명 사용에 대한 일화를 들 수 있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집필하면서 개인적인 경험과 이와 연결하여 작품에 녹아든 이야기가 정확히 소설의 어느 위치에, 또한 얼마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딘가로 나아가는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그 자리에서 멈춰있는 법이 없이, 움직인다.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는 존재이다. 고뇌하고, 때때로 의문을 품으며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주어진 '운명'과 어느 날에 마주친 '우연'의 양면을 받아들이는 것은 젊은 날의 초상이라 부를 수 있다. 불안으로 점철된 삶의 궤도가 어떻게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마음껏 울고, 웃으며, 사랑하고 또다시 아파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그 당시 나는 기이한 피난처를-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우연'의 힘으로 찾았다. 그러나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무엇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이 그 필요한 것을 찾은 경우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다. 그의 욕망과 필연성이 그를 인도하는 것이다.

 

(p.170)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인 '두 세계'와 '불안'은 이야기의 처음과 끝으로 이어진다. 빛과 어둠, 이상과 현실, 좋은 것과 나쁜 것 등으로 상징되는 '두 세계'의 경계와 마음의 기저에 존재하는 '불안'은 인간성의 가장 보편적인 요소일 것이다.

 

두 세계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추는 언제든지 다른 쪽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사회적·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절대적인 악을 차치하고, 주관적인 기준 및 개인의 가치 평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두 세계의 위치는 자아의 성찰로도 그 해답을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부정당하거나, 다수의 관점에 속하지 않을 때 두 세계의 경계는 또한 위협받는다.

 

이는 불안과도 이어지는데, 자아는 오롯이 자신만의 판단으로 홀로서기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속에 있는 '나'와 '나'를 이루는 사회는 언제든지 연결되어 있다. 힘의 불균형은 불안을 자아낸다. 엄습하는 감각과 이어서 느껴지는 감정이 불안을 야기한다. 실체적인 현상인지, 만들어진 존재인지 구분할 수 없을 때 불안은 몸집을 키워간다.

 

 

그의 명예심에 호소한느 것이 소용없으리라고 나는 느꼈다. 그는 다른 세계 속에 속해 있으며, 그에게 있어선 배반이란 걸 죄라고 느낄 리가 없었다. 나는 그것을 똑똑히 느꼈다. 이런 일에 있어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은 우리들과 같지 않았다.

 

(p.23)

 

 

(···) 그러니까 네가 불안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물건이 있는 거야. 그것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사람은 아무 말에서 불안을 가질 필요가 없어. 만약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에게 힘을 양도해줬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거야. 예를 들면, 무슨 나쁜 일을 했는데 다른 사람이 알고 있거든 - 그러면 그는 네게 힘을 갖게 되는 거야. 이해하겠니? 그건 분명한 일이 아니니?

 

(p.66)

 

 

독문학자이자 독일 문학 번역가, 전혜린 타계 60주년 기념 복원본 『데미안』은 독일어 원문 구조와 문법, 어법에 충실하면서도 번역가 특유의 개성이 담긴 감성과 문학적 깊이를 더해 줄 번역 스타일을 담고 있다. 같은 작품이라도 번역가의 해석에 따라서 그 의미가 새롭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감명 깊게 있은 책일수록, 그리고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다양한 출판사와 여러 번역가의 시선을 쫓게 된다.

 

언어는 말의 뉘앙스나 문맥의 구조 등에 따라서 각각의 다른 표현을 달리한다. 원문을 번역할 때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좋은 표현이나 더욱 어우러지는 하나의 단어를 찾고, 비로소 아름다운 문장을 완성하는 손길이 존재한다. 그들의 눈에 비친 원석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 위해서 무수한 시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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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야기한 이 전체의 경험 중에서,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고 뒷날까지 남겨진 것이었다. 이것은 성스러운 아버지의 세계에 생긴 최초의 틈이었고, 나의 어린 시절이 의지하고 있는 기둥에 찍힌 최초의 칼자국이었다. 그런 기둥은 모든 인간이 되기 전에 쓰러뜨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우리들의 운명의 내적이며 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칼자국은 틈이 생성되고, 아물고, 잊혀지지만,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방에 살면서 계속해서 피를 흘리는 것이다.

 

(p.32)

 

 

"너는 그 꿈을 너 자신에 관해서 풀이했니?라고 나는 물었다.


"나에 관해서? 물론이지. 사람은 자기 자신과 관계없는 것을 꿈꾸는 법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나 하나에만 관계되지 않아. 네 말이 옳아. 나는 나 자신의 영혼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꿈을 꽤 정확히 실별한다. 그리고 또 매우 드문, 인간의 운명 전체를 암시하는 꿈도 식별한다. 나는 그런 꿈을 꾼 일이 드물다. 그리고 그것이 예언이었고,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꿈을 꾼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꿈의 해석은 너무나 불확실하다. 그러나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 혼자만에 관계되지 않는 어떤 꿈을 꾸었다는 사실이다. 그 꿈은 내가 전에 꾼 일이 있는 다른 꿈들의 일부였고, 그 다른 꿈들을 계속하고 있다. (···)"

 

(p.273-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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