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나,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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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nstagram, @ttonji

 

 

숨이 턱 막히던 한 여름날, 작은 마을버스를 타고 해방촌의 언덕을 한참 동안 오른 뒤에야 무케나 컨택 즉흥이 열리는 무용연습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원한 공기가 훅 밀려와 오는 동안 쌓인 열감을 빠르게 식혀주었다. 나는 한결 상쾌해진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습실 한쪽 벽면에는 큰 통창이 나 있었다. 투명한 유리 너머엔 여름 특유의 푸른 하늘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건물들이 나와 하늘 사이에 끼어들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건물 아래, 무성하게 자란 나뭇잎들이 천천히 살랑거리며 나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으니까.


공간을 구경하며 호흡을 진정시킨 뒤, 나는 양말을 벗어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맨발로 공간을 천천히 탐색했다. 정성스레 한 걸음, 한 걸음. 뒤꿈치부터 시작해서 엄지발가락 끝까지, 발바닥의 모든 부위가 바닥에 닿을 수 있게 살며시 걸음을 내디뎠다. 발바닥과 바닥이 빈틈없이 닿자 찬 기운을 머금은 마룻바닥의 서늘한 온도가 맨살을 통해 온전히 느껴졌다. 잠들어있던 발바닥의 감각이 슬며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맨발로 걷는 경험도 흔한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감각의 일깨움을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발에 아무것도 덧대지 않은 채 돌아다니는 건 집에서도 흔히 경험하는 일상적인 행동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연습실에서의 걸음이 일상과 달리 생경하게 느껴진 건 인식과 주의의 여부 때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마시기 위해 방을 나서는 걸음과 달리, 그곳에서의 내딛음은 발과 바닥의 섬세한 접촉을 통해 공간의 분위기를 흡수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노력은 컨택 즉흥을 무사히 수행하기 위한 선행 과제였다. 언어의 교류 없이, 움직임만을 감각하며 상대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마음의 예열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초심자인 나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도 여러 가지 잡념들을 머릿속에서 떨치지 못했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춤도 익숙지 않고,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도 못했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불편해지는 거 아니야? 괜히 왔다. 나 같은 사람과 어울리는 곳이 아닌데, 주제 파악이나 할 걸….


애써 집 밖으로 몰아냈다고 생각했던 걱정과 근심이 다시 돌아와 문을 노크할 때쯤, 컨택 즉흥 시간이 다가왔다. 공간과도, 나의 신체와도 전혀 친해지지 못한 채. 


나는 깊게 심호흡했다. 길게 뱉은 숨에 불안을 담아 부드러운 선율에 흘려보냈다. 대화를 통해 사람과 친해지고 인연을 맺는 건 내 강점 중 하나였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춤과 접촉이 수단이라고 해서 겁먹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무엇보다 컨택 즉흥은 한국 특유의 눈칫밥, 남들의 시선이라는 사회적 제약 없이 본모습을 온전히 내보일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이런 소중한 기회 앞에서 걱정과 근심에 매몰되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즉흥 연주와 함께 공간을 천천히 유영하던 사람들의 피부가 천천히 맞닿는다. 손이 될 수도 있고, 팔이 될 수도 있고. 종아리, 무릎, 등, 어깨…. 온기가 흐르는 부위라면 어디로든 대화할 수 있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포시 맞대며 인사를 건네고 차분히 상대를 알아간다. 오늘 컨디션이 어떤지, 기분이 어떤지, 원하는 움직임이 무엇인지, 궁극적으로는 너는 어떤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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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nstagram, @ttonji

 

 

...

나는 마주한 너에게 말을 건다.

 

맞닿은 팔꿈치로 너의 움직임을 감각한다. 서로가 원하는 걸 알기 위해 우리는 입을 여는 대신, 등을 맞댄다. 너는 내게 체중을 실으며 대답한다. 무슨 뜻일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는 건가, 내 의중이 어떤지 역으로 물어오는 것일까. 나는 입과 귀를 굳게 닫고 촉감과 생각만을 동원해 너를 이해하려 한다. 때로는 살랑이기도, 때로는 섬뜩하기도. 그러나 말소리에 의미를 담을 순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대화의 도구는 오로지 음악과 공간. 그리고 너와 나의 움직임 뿐.

 

 

 

컨택 즉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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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nstagram, @ttonji

 

 

컨택 즉흥은 1970년대 무용가, 스티븐 팩스턴의 주도로 연구된 실험 무용 중 하나이다. 그는 본인이 연마하던 아이키도에 영감을 받아 중력, 관성, 운동량, 마찰과 같은 물리 법칙에 기반하여 사람과 사람 간의 움직임을 탐구하고자 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나의 몸과 상대의 몸이 서로 맞닿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즉흥적인 춤이다. 이 과정에서는 일정한 패턴도, 정해진 안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접촉을 통해, 몸으로 상대와 대화하며 원하는 대로 움직임을 이어 나가면 된다. 그 순간의 감각과 호흡에 따라 자리에 머물기도 하고, 흘러가기도 하며, 서로를 감싸안기도 하고 자유롭게 떠나기도 한다.


이쯤 읽었으면 감이 올 수도 있다. 컨택 즉흥, 초심자가 입문하기엔 난도가 꽤 높은 체험 예술이다. 우선, 즉흥 춤이라는 소개부터 험난하다. 춤추는 것도 부끄럽고 어려운데 심지어 즉흥이라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낯설고 어렵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다면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 역시 언젠가 춤을 배우고 싶기도 했고, 새로운 분야의 예술을 맛보고 싶다는 열망이 컸으니까. 하지만 아직 한 가지 큰 장벽이 남아있다. 우리 사회에서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살과 살이 맞닿는 ‘컨택’이다. 


컨택 즉흥의 ‘컨택’ 개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세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통념적이고 세속적인 의미의 접촉이 아닌, 예술을 통한 대화의 창구로서 컨택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태까지 사람들 틈에서 살아오며 쌓인, 접촉에 대한 선입견을 한순간에 내려놓는 건 누구에게라도 어려운 결심이다.


나는 이러한 걱정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국 특유의 잣대를 충실히 따르며 살아온 평범한 초심자이며, 전공도, 취미도 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즉흥이라고는 프리스타일 랩 정도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내게 즉흥 춤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나는 무턱대고 컨택 즉흥에 뛰어들었다가 숙련자들의 화려한 움직임에 호되게 당한 기억을 되새기며 컨택 즉흥 세션을 소개하려 한다. 전문가가 아닌, 병아리가 예비 입문자에게 전하는 글이다. 두려움과 걱정, 내면의 경계심을 인정하지만, 컨택 즉흥이 선사하는 해방감과 자유로움, 최종적으로는 감각의 개방을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정말 ‘아무케나’ 즐기는 컨택 즉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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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nstagram, @ttonji

 

 

모기조차 무더위에 종적을 감춘 한여름, 나는 해방촌의 한 무용연습실, WAKE에서 열린 무케나 컨택 즉흥 세션에 참여했다. 무케나는 ‘아무케나’의 줄임말로 장르와 분야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즉흥을 표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낮은 곳에서 서로를 수평으로 만나 교류한다는 소개 문구가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컨택 즉흥의 매력 중 하나는 전문적인 가이드가 주관하는 안전한 환경 속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에 대한 호기심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이다. 무케나 세션에서는 가이드가 직접 컨택 즉흥에 참여하고, 사전 안내문을 붙여 주의 사항을 전달하는 등 안전 확보를 위해 다방면으로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컨택 즉흥에 앞서 처음 컨택 즉흥을 접하는 사람을 배려해 긴 시간의 스트레칭과 컨택 가이드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스트레칭부터 벅차기 시작했다. 어렵다 못해 경이로워 보이는 준비 운동 동작을 따라 하기엔 나의 유연성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유지해 온 뻣뻣한 몸이 요즘 따라 더 굳어버린 듯, 모든 관절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탄식이 절로 나올 뻔했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인지라 속으로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칭의 목적은 격렬한 운동 전, 몸의 긴장을 풀어 부상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컨택 즉흥에 앞서 열심히 스트레칭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만, 여기에 더해 한 가지 특별한 의도를 추가로 함의하고 있다. 컨택 즉흥은 말 대신 몸으로 대화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 세션이다. 즉, 말과 몸이라는 수단의 차이가 있을 뿐 타인을 알아간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대화할 때, 타인과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선제 되어야 하는 건 나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우울한지, 긍정적인지와 같은 감정 언어로 규정할 수 있어야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이를 통해 상대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컨디션이 어떤지 등을 알고 있어야 건강하고 몸의 대화를 나누고 안전하게 컨택을 이어갈 수 있다.


스트레칭으로 굳은 몸을 풀며, 내 몸의 다양한 부위가 잘 존재하는지 확인했다. 평소 잘 인식하지 않았던 발가락을 하나씩 만져보기도 하고,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며 갈비뼈가 어디에 있었는지 새삼 느껴보기도 했다. 몸을 이리저리 늘리고 꺾으며, 곳곳의 관절을 깨우다 보면 그동안 나의 몸에 얼마나 무심했는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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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칭이 끝나고, 어느 정도 내 몸과 친해진 뒤 –친해지지 않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컨택 가이드가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가이드의 미션을 통해 컨택 즉흥이 이루어질 공간, 그리고 타인의 몸과 친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컨택 즉흥에서의 맞닿음은 사람과 이루어지는 접촉만을 형용하지 않는다. 두 발로 서있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바닥과 발이 접촉하는 순간이고, 누운 채로 바닥을 구르는 움직임도 컨택 즉흥의 핵심 동작 중 하나다. 그러니 공간과 친밀도를 쌓는 일도 컨택에 앞서 꼭 필요한 선행 조건이 된다.


사람들은 가이드의 지령에 따라 여러 행동을 수행했다. 함께 천천히 공간을 걷기도 하고, 앉기도 했다. 빠른 걸음으로도 걸어보고, 뛰다가 갑자기 멈춰보는 등 다양한 움직임을 펼쳤다. 정신없이, 신나게 공간을 누비며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몸과 공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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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가이드로는 두 사람이 짝을 맺고, 번갈아서 한 명씩 눈을 가린 채 맞잡은 손으로만 서로를 의지하는 팔로우십 가이드가 진행되었다. 우선, 한 명은 리더, 한 명으로 팔로워로 역할을 나눈다. 팔로워는 눈을 감은 채로, 리더는 눈을 뜬 채로 함께 걷는다. 리더는 팔로워의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안으며 걷고 싶은 곳으로 향하며, 움직임을 리드한다. 암흑 속에 내던져진 팔로워가 할 수 있는 일은 리더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것뿐이다. 


시각을 제한하니,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주변 사람들이 내딛는 발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느껴지고, 혹여나 오가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까 눈을 더 질끈 감게 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선택지는 내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감싸안은 리더에게 마음과 몸을 맡기는 것이 전부였다.


눈을 가린 채 리더가 이끄는 대로 정처 없이 떠돌다 보니, 어느덧 암흑에 익숙해졌다. 앞을 볼 수 없지만, 그의 손을 맞잡고 걷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음을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그러자 천천히 걷는 것에 국한되었던 움직임이 점점 다양해졌다. 빠르게 걷기도 하고, 뒤로 걷기도 했다. 리더가 내 손을 풀잎에 포갠 모양인 듯, 매끈한 감각이 느껴졌다. 앉은 자세를 하다 자연스레 앞으로 누웠다. 철푸덕 누워버린 나는 뺨으로 차가운 마룻바닥의 표면을 감각했다. 


리더가 내게 선사하는 감각을 느끼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컨택 가이드는 초심자인 내게 훌륭한 예습이 되었다. 편견과 관습에서 비롯된 잡념을 잠시나마 깊게 묻어둘 수 있었다. 역할을 맞바꾸어 컨택 가이드를 한 번 더 진행했다. 나는 눈을 뜨고 파트너는 눈을 감았다. 이제는 내가 이끌어야 했다. 나는 오로지 상대의 니즈를 파악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가 무얼 하고 싶은지,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 등을 계속 곱씹으며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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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함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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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컨택 즉흥에 참여하다 보면, 금세 체력이 바닥나게 된다. 방전 위기에 몰려 잠시 벽에 기대 호흡을 가다듬던 중, 한 구경꾼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거울 뒤에 몸을 반쯤 숨긴 채 빼꼼 고개를 내밀어 컨택을 나누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바라본 곳에서, 참여자들은 서로 뒤엉켜 흐느적거리는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사람들은 다양하고 난해한 몸짓을 선보였다. 치어리딩이나 발레처럼 상대의 몸을 지지대 삼아 높은 곳에 올라가는 사람, 휘파람이나 발 구르는 소리 등 표현하고 싶은 소리를 마음껏 내는 사람…. 그곳에서 참여자들은 마음껏 각자의 욕구를 발산하고 있었다.


관객은 신기한 듯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컨택 즉흥을 구경했다. 신기하게 여기는 것 정도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기이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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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가이드가 끝난 뒤, 본격적인 컨택 즉흥이 시작되었다. 음악이 흐르고 참여자들은 천천히 살을 맞대며 몸의 인사를 건넸다. 상대를 알아가며 조심스레 이어지는 움직임은 이윽고 춤의 형태로 발전했다. 이들이 추는 춤은 정해진 형식도, 안무도, 방향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눈앞에 마주한 파트너를 알아가려는 과정, 대화를 나누려는 노력이 춤처럼 비추어질 뿐.


나도 파트너와 살며시 어깨를 맞대며 컨택을 시작했다. 옷깃 너머로 느껴지는 감촉을 느끼며 상대의 컨디션을 헤아렸다. 그러나 명징하게 읽지는 못했다. 그저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등을 맞대자, 상대의 척추가 나의 척추와 가볍게 포개어졌다. 오돌토돌한 굴곡을 지닌 척추의 표면이 올곧이 내게 전해졌다. 일상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을 감각이었다. 등 중심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상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해 본다. 


등을 통해 상대의 체중이 내게 옮겨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내게 의탁했다. 등 위로 무게가 느껴져 자연스레 허리가 굽혀졌다. 나와 파트너 모두 의식하지 않았을 테지만, 겉으로 보았을 때, 우리의 모습은 현대무용의 한 동작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나와 상대는 몸을 맞닿은 채 계속해서 마음과 움직임을 공유했다. 만남과 소통, 헤어짐의 순간까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듯, 컨택 즉흥은 맞닿음을 통해 원하는 바를 전하고 이를 움직임으로 응답하는 몸의 대화다. 이 과정에서 표음을 매개로 한 소통은 일절 이루어지지 않는다. 너와 나 사이에 흐르는 전류만이 서로의 의중을 나눌 수 있는 수단이다. 


움직임, 맞닿음과 함께 자유는 컨택 즉흥의 핵심 테마 중 하나이다. 참여자들은 원할 때 쉴 수 있고, 혼자 춤을 추고 싶다면 컨택에 참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원하는 소리를 내거나 비치된 크레파스로 글, 또는 그림을 그려도 좋다. 이처럼 밖에서는 좀체 시도할 수 없었던 행동들이 이 시간과 공간에서는 대부분 허용될뿐더러 오히려 권장되기도 한다. 즉, 컨택 즉흥은 다양한 요소들이 합쳐진 종합 예술 세션이라 볼 수 있다. 


구경자의 시선에서는 사람들이 그저 난해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컨택 즉흥에서의 춤은 해방이라는 도착지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다리일 뿐, 최종적인 목표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구경만으로는 컨택 즉흥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해방과 자유는 컨택 즉흥을 경험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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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할 필요 없다. 분명히 내가 당신보다 뚝딱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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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서 춤은 가장 거리가 먼 예술이었다. 춤이라고는 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쩌다 한 번씩 강제로 동원되어 추던 단체 안무가 전부였다. 당연히 실력도, 흥미도 없었다.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 춤을 추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부끄러움이 머리끝까지 치솟을 정도로 멀리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미디어가 TV, 유튜브, 릴스나 쇼츠를 거쳐 변화하면서도 춤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춤은 항상 아름답고 멋진, 이상적인 형태로만 미디어에서 다뤄졌기 때문이었다. 미숙한 노래 실력을 당당하게 뽐내는 아이돌은 간혹 존재했지만, 어색한 춤을 추는 아이돌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듯.


못 춘 춤이 화제가 될 때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보통 흑역사로 박제된다. 나도 기분이 우울할 때 아직도 홍진호의 ‘콩댄스’를 찾아보곤 하니까. 이처럼 내게 춤은 전문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고음이 힘에 부쳐도 당당하게 노래를 부를 순 있지만, 어색하게 뒤뚱거리며 춤추는 건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처음 컨택 즉흥에 참여하기로 한 날에도 여러 걱정이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접촉에 대해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지도 못하기도 했지만, 남들이 내 몸짓을 우스꽝스럽게 볼 것이라는 불안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나는 결국 잡념을 가득 안은 채 세션에 임했다. 그리고 해방감을 느끼기는커녕 혼란스러운 마음만 잔뜩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지만,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틈틈이 쉬며 컨택 즉흥에 집중하는 참여자들의 얼굴과 몸짓을 면밀하게 지켜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일상에서 좀체 경험할 수 없는 개방감이 묻어 있었다. 서로의 몸과 맞닿으며 뒤엉킨 그들은 잡다한 생각을 묻어두고 이상적인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내보이는 후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들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리고 동경하게 되었다. 지금은 무거운 짐을 잔뜩 떠안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처럼 세상의 시선들에서 벗어나 온전한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다. 사실, 옳은 길은 분명히 존재했다. 통념을 벗어던지기만 하면 되었다. 접촉을 대화의 수단으로만 여기면 되었고, 실력과 춤을 연관 짓지 않으면 되었다. 이처럼 쉬운 명제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아직도 머리 깊이 뿌리 내린 선입견들을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름의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노력인지는 기회가 된다면 쓰게 될지도- 무엇보다 컨택 즉흥을 취미로 즐길 수 있을 정도로는 흐릿해졌다는 게 가장 만족스러운 변화였다. 그렇게 나는 그저 뚝딱거리는 사람에서 컨택 즉흥을 조심스럽게 누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색다른 차원, 색다른 세상, 색다른 대화와 관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처럼 예술 체험은 신체와 정신을 모두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소중한 시도다. 오늘 소개한 컨택 즉흥이 대표적인 예시다. 겉으로 보기에 난해할 수도 있고, 입문이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 걱정과 경계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그동안 감각하지 못한 자유로움이 당신을 구원할지도 모른다.


무케나 세션은 8월 24일, 일요일. 두 번째 컨텍 즉흥 세션을 열 예정이다. 자세한 안내 사항과 신청 링크는 인스타그램 계정, @mukena_session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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