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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가 집필한 고전 문학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이름은 단연 제인 오스틴일 것이다. 여성 문학의 계보는 종종 단절되어 보이며, 많은 이들이 제인 오스틴을 여성 문학의 대표이자 출발점으로 인식하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당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하면서도, 책 속 질문처럼 “정말 여성 작가는 제인 오스틴에서 시작된 것일까?”라는 물음 앞에서 새로운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비포 제인 오스틴』은 말 그대로 제인 오스틴 이전에 존재했던 여성 작가들과 학자들을 재조명한다. 그들의 삶과 글은 때로는 뜨거운 투쟁으로, 때로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전진으로 이어진다. 책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사에서 지워졌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들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창작자에게 깊고 강력한 정신적 울림을 전해준다. 이 글에서는 『비포 제인 오스틴』에 소개된 여성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평면 표지_비포 제인 오스틴.jpg

 

 

 

외쳐라, 로스비타 (Hrotsvithat, 강한 목소리) - 로스비타 폰 간더릇 하임


 

배움을 갈망하던 여성들은 여성 차별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노동력 생산을 위해 이용되는 자유권과 교육권을 역으로 활용한 것이다. 문헌을 필사하고 삽화 작업을 하기 위해 중세 수녀들은 예외적으로 공적 교육의 기회를 얻었다. 베네딕트회 수도원 소속이었던 로스비타 폰 간더릇 하임의 이야기를 통해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로스비타(강한 목소리)’라는 필명으로, 당대 인기 고전극 작가 테렌티우스의 작품 중 여성 혐오적인 부분을 자신만의 다시 쓰기를 통해 비판하며 당대 여성상을 문제 삼았다. 또한 그녀가 테렌티우스의 팬이었음에도 비판적인 글쓰기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교육을 받은 수녀들이 비판과 논쟁의 방법을 이미 적극적으로 사용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현대에도 옛 고전 작품을 재해석하고 다시 쓰는 움직임이 관측된다. 또한, 당대 행태를 사회고발적으로 써낸 작품에 대해서는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열광한다. 이런 행태에서 원조격을 따지는 것은 다소 의미가 모호할 수 있으나, 중세 시대 수녀가 자신만의 창작활동을 이어가며 자신이 속한 사회 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표명을 했다는 이야기는 현대 여성들에게 공명하는, 연결된 감각을 일깨워준다.

 

다만, 더 큰 영역으로 나아가지 못하거나 남성과 동일한 위치의 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점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진위성과 능력을 검증받는 모습이 오랜 역사 동안 이어져왔다는 지점에서 익숙한 분노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여성들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다시 한계를 규명하고 아쉬움을 표하기보다, 그들의 로스비타에 주목하고 그 정신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는 강한 목소리를 표하는 더 많은 발화자가 여전히 더 필요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가치 판단할 수 있는가? - 엘로이즈


 

어린아이들은 순수한 존재라는 보편적인 인식이 여자에게는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큰 나이 차를 극복한 숭고한 사랑’과 같은 방식으로, 순수한 성인 남성과 조숙한 여성 청소년의 사랑을 보편적인 일로 내보내는 방송 프로그램을 접하면, 분노한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의 순수함과 순결성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세태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모순 아닌 모순이 생긴다.


엘로이즈의 삶은 여성의 삶이 절대 단편적인 흑백 명제로만 해석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열일곱 살이던 엘로이즈는 공부를 가르친다는 이유로 접근한 서른아홉 살 아벨라르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누이의 집으로 빼돌려 아이를 낳게 한다. 이 이야기까지 듣고 나면, 마치 내 동생이나 조카의 이야기인 것처럼 몰입해 분노하게 된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삶이 정말로 우리에게 영향을 줄까? 이후 엘로이즈의 삶은 한 인간과 여성에 대한 비난이 사회가 규정하는 순결하고 티 없는 여성상을 고착하고 단편적인 논쟁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벨라르의 권고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 엘로이즈와, 이후 그녀의 삼촌에게 거세당한 아벨라르는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눈다. 물론 엘로이즈의 묘사로도 아벨라르의 모습은 폭력적이고 기이하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의 이야기만으로 엘로이즈를 판단할 수는 없다. 엘로이즈는 중세 세계관에서 부인 혹은 어머니로만 살고 싶지 않았고, 결혼하지 않은 고대 그리스 여성 철학자를 동경했다. 이미 수녀원 학교에서 교육받고 언어에 능통하며 재능이 탁월했던 그녀는 여성 수도자를 위한 규범을 재정립하고 서한을 보내 기존의 불합리에 대한 개혁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그녀의 삶은 당대뿐 아니라 현대에도 폭풍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서 지켜낸 철학으로 결국 수녀들의 삶을 그들의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데 힘썼다.

 

엘로이즈의 삶은 현대 여성이 겪는 도덕적 모순과 혼란을 자꾸 일깨워준다. 이런 여성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여전히 많은 여성은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지만, 그 비난의 행위를 오히려 정당화할 수 없다. 설정된 정상적 여성의 규범에 맞지 않다고 비난하고 배제하는 순간 그 틀은 우리를 더 옭아매기 시작한다. 모두가 그 틀에 들어갈 수 없기 마련이다. 더 많은 삶의 모습이 그대로 존재할 수는 없을까? 표준과 정상으로 규정하지 않고 말이다.

 

 

 

남겨진 질문 - 소르 후아나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소르 후아나는 누에바 에스파냐의 총독에게 초대받아 지식인들과의 대화에서 놀라운 답변을 쏟아내며 단번에 이름을 알린다. 이후 모든 청혼을 거절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 수녀의 삶을 선택한다. 1680년대 그녀가 발표한 『어리석은 남자들』의 한 구절을 통해, 그녀의 지성을 엿볼 수 있다. "지나친 욕망으로 경멸받을 일을 불러일으킬 때에 너는 악한 일을 부추기면서 어찌 그들이 선을 행하길 바라는가? 여자들의 저항을 꺾으려고 안간힘을 써놓곤 무게나 잡으며 말하지, 이건 모두 여성들이 문란한 탓이라고"


그녀의 글은 당대 멕시코 사회에 논란을 일으켰지만, 지적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신학자 안토니우 비에이라 신부의 주장에 대해 소르 후아나는 이 주장이 구원의 보편성을 부정한다며 비판했다. 수녀의 신분으로 신학자의 강론을 반박하는 일은 오늘날 기준으로도 놀라운 용기다. 계속되는 압력과 비난 속에서도 그녀는 학문을 이어가다 결국 1693년 글쓰기를 중단한다. 소르 후아나의 주장은 오늘날에는 보편적이라 여겨지지만, 당시에 얼마나 거센 풍랑 속을 견뎌야 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현재 소르 후아나는 멕시코의 국보로 여겨진다. 그녀의 이름은 명예의 벽에 새겨졌고, 얼굴은 지폐와 동전에 담겼다. 이는 그녀의 천재성과 지성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이 학문을 이어가기 위해 선택할 수 있었던 한정된 길조차 자유를 주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만약 그녀가 끝까지 학문을 이어갈 수 있었다면, 어떤 성취를 이루었을까. 아쉬움과 궁금증이 함께 남는다.
 

한편, 당대에는 분명했던 장벽이 오늘날에는 ‘유리천장’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부당한 처사에 대해 보도가 나고 개선하자고 외쳐도, 일상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묵인되는 일이 여전히 흔하다. ‘나’를 설명하는 꼬리표를 떼고 그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약자를 위한 배려를 넘어, 모두가 더 높은 수준의 성취를 꿈꿀 수 있는 시작일 것이다. 소르 후아나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학문과 창작의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없었을까. 책에서 소개된 이 여성들만 보더라도,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주어졌다면 인류는 더 풍요로운 지적·예술적 유산을 누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책을 읽으며 자꾸 그들을 상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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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제인 오스틴』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과 현대 여성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여전히 전통적인 성별 위계와 분류에 따른 ‘에겐 (에스트로겐) 남/여’, ‘테토 (테스토스테론) 남/여’와 같은 단어가 유행하고, 사회가 규정하는 성별 명제는 여전히 강요되고 있다. 여성 안전 문제를 이야기하면, 타국의 안전함과 비교하며 인종차별을 더한 저열한 비난이 돌아오는 현실도 존재한다. 사실을 말하는 것이 위험성을 감수하다 못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례도 자주 실감한다. 데이트 폭력 사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모두가 말할 자유를 가지면서도 검열과 비난, 심지어 신변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는 공포는 그림자가 되어 모두를 압도한다.

 

하지만 책에서 소개된 수많은 여성 작가들을 떠올려 보면, 그 그림자 속에서도 나 또한 변화의 바람에 함께하는 한 인간이라는 힘이 조금은 생겨난다.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규정되고 자유가 구속될 때, 어떤 여성들은 침묵을 깨고 소리를 내왔다. 불공정한 환경과 사회는 약자를 괴롭히고 억압하는 데 많은 힘을 쏟지만, 그렇다고 고립되어야만 할까? 책을 읽는 내내 개인의 삶에서 벌어진 투쟁과, 시간이 흘러 그것을 조망하는 우리의 삶에서 작은 불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부당함 속에서도 숭고함을 캐내고 각자의 지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수백 년 전 여성들이 여전히 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비포 제인 오스틴』은 여성 문학의 태동을 감지하는 동시에, 그 정신을 우리 세대에게까지 전달한다. 처음 책을 펼칠 때의 기대는 제인 오스틴 이전의 여성 문학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책을 덮을 무렵, 내게 남은 것은 생생한 여성 문학의 계보와 그들의 강인한 문체에서 전해지는 강한 의지였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 또한 여성 고전 문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여성으로, 창작자로, 그리고 현대인으로 공명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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