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교(仙人橋) 나린 물이 자하동(紫霞洞)에 흐르르니
반천년(半千年) 왕업(王業)이 물소리뿐이로다
아희야 고국흥망(故國興亡)을 무러 무엇하리요
<선인교 나린 물이~>는 삼봉 정도전이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을 돌이키며 지은 시조이다. 망국인 고려를 회고하였다는 점에서 그 시상은 고려의 충신으로 알려진 길재나 원천석의 시조와 유사하나,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사뭇 다르다.
초장의 ‘선인교’는 개성의 어느 다리이고, 물이 흘러 들어가는 ‘자하동’ 역시 개성의 어느 지명이다. 중장의 ‘반천년 왕업’은 대략 오백 년 정도 되는 고려 왕조를 뜻하며, 그것이 ‘물소리뿐’이라는 것은 인적 없이 황폐해진 공간을 형상한다.
한때 수도였던 개성이 이처럼 도외시되는 이유는 고려가 망해서이기도 하지만, 조선이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에게 ‘고려를 배신하고 건국한 나라’라는 꼬리표를 떨치기 위해서는 과거의 흔적을 씻어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렇게 1392년 조선이 건국되고, 1394년 수도를 반 천년 도읍지에서 한양으로 천도하였다.
종장에서 그는 ‘아희야’라고 누군가를 호명한 후, ‘고국흥망 물어서 무엇 하겠는가’라고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진다. 개성은 곧 과거의 공간이니, 그것을 잊고 새로운 국가를 맞이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절을 되뇌다 보면, 마치 자기최면으로도 느껴진다. 그는 고려의 역적이기에 고려의 ‘망(亡)’을 논할 수는 있으나 ‘흥(興)’을 말할 자격은 없다. 그럼에도 그는 본래 고려 사람이기에 은연히 개성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기에 평생 따라다니는 죄책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묻지도 않는 질문을 되새겨서라도 변명할 수밖에 없다.
건국과 천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1398년, 정도전은 죽는다.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그는 자신과 함께 건국을 도모했던 이방원(태종)으로부터 숙청당한다. 다사다난했던 그의 인생은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끝나버렸다. 한 나라의 시작과 한 인물의 끝은 그 간격이 어설펐다.

어쩌면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건국 이후의 어떤 기억보다도 자하동의 선인교를 먼저 떠올리지 않았을까. 또 개성에서 있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지 않았을까. 그는 조선을 건국함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사실 그 이전에 고려의 신하였다. 그곳에서 나고 자랐고, 청춘을 보냈고, 꿈을 키웠다. 그가 마음의 도읍지를 고려에서 조선으로 옮겼다 한들, 결국 그는 고려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우리는 여러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얼마나 허망한가. 일말의 후회도 없었는가. 혹은 배신의 칼날이 자신에게 돌아올 줄 알았는가. 그러나 그의 흥망을 물어서 무엇 하겠는가. 어차피 반백 년 그의 업적도 물소리뿐일 텐데.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몽주를 패자가 아닌 충신이라 일컫고, 정도전은 개국공신인 동시에 변절자로 인식한다. 두 인물에 대한 견해가 모순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결코 결과만이 아닐 테니까. 결국 역사는 사람의 기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