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수되지 못한 성장 서사
성장 서사라는 것은 흔히 인물이 떠나온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귀환의 구조를 갖는다. 집을 떠난 순간, 인물은 유년기의 미성숙한 자신의 상징적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게 이전의 자신이 죽어야만, 그 모든 모험을 겪고 돌아온 자신이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장이란 다시 말해, 이전의 자신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 『벌집과 꿀』에서 이들은 성장 서사를 완수할 수가 없다. 아직 죽지 않은 그들 스스로가 너무 많은 탓이다. 아니 어쩌면 계속 매 순간 죽음을 겪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죽음 끝에 부활해야 하는데, 돌아갈 귀환해야 할 공간이 없으므로 성장은 두드러질 수도 없다. 돌아갈 곳이 없고 성장할 수 없는 멈춘 상태로 그들은 계속 나아간다. 걷고 또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할까, 알 수 없는 상태로. 마치 거대한 손아귀에 의해 쥐어뜯어지듯 고향으로부터 유리된 이들. 뜯어져 버린 그림자, 자취가 남지 않는 자신의 존재. 그림자를 발바닥에 꿰매줄 웬디를 어쩌면 찾아서 계속 끝없이 걷는 피터팬들이 이 소설 속 인물들일지도 모른다.
디아스포라
「민족―국가의 사이 혹은 너머에 대한 상상」을 쓴 구재진에 따르면, 디아스포라가 문학 및 문화 담론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자본의 세계화, 노동의 세계화로 인한 상황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어원적으로 ‘씨뿌리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디아스포라’는 이제 “이주, 이민, 또는 추방의 움직임을 통해서 모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사람들”을 지칭한다. 모국으로부터 분리된 디아스포라는 두 개의 민족-국가와 연결 혹은 배제되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는 아감벤이 말한 ‘난민’의 위치와 유사하다. 디아스포라 역시 난민처럼 국가의 기초적인 본질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소설 속 낯선 풍경과 맥락 사이 등장하는 한국 이름들은 나에게 상당한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민족과 국가라는 것이 무엇인지, 세계화 시대에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우리에게 민족과 국가에 대한 감각, 뿌리 내림, 고향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남아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떠나고 돌아올 곳을 찾는 것은 아닐까. 이들처럼.
디아스포라 문학은 타자성과 경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적인 존재로 유령처럼 떠도는 사람들. 분명히 있으나 없고, 없으나 있는 그런 존재들을 폴 윤은 담아내고 있다. 우리가 고정적이라고 믿는 것들은 소수자에 의해 그것이 상당히 불안정하며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우리의 안정성과 고정성은 사실 모두 얄팍한 믿음에 지나지 않으며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다. 단일 민족 신화도 결국엔 환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다지도 뿔뿔이 흩어진 우리들의 고향은 어디 있으며 그 고향을 찾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벌집과 꿀』
폴 윤은 인물들에게 고향이나 목적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흔히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루어진 소설에서, ‘결말’이란 갈등의 해소이며 주인공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능을 한다. 디아스포라들의 운명은 결정되지도 갈등은 해소되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해결되는 건 없고 괜찮아지는 것도 없다. 이들은 자신도 놀랄만할 정도로 무심하게 일상을 살다가 이내 버티지 못하고 터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돌아간다. 그러나 그 폭발의 순간 이전으로는 결단코 돌아갈 수 없다. 디아스포라 문학에서 ‘문학’이 말하는 결말이란 존재하는가? 이들은 결말다운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폴 윤의 소설은 ‘소설’보다 ‘삶’에 더 가깝다. 결말의 순간이 명확하지 않고 파도처럼 휘몰아치듯 무언가 벌어지는 그런 삶과.
잔잔하고 무감정한 소설이 그려내는 풍경 속, 파도는 잔인할 정도로 무심하게 몰려들고 이들은 계속 뭍으로도 바다로도 멀어지고 그 사이 어딘가를 배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 위에 서로를 겹치고 덧입히는 타인들이 이 소설에는 존재한다. 서로가 돌아올 곳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들을 만나고 그들은 비로소 성장하거나 결말을 맞이한다.
이들의 삶은 소설과 같고, 이들의 이야기(소설)는 삶과 같다. 어쩌면 이들이 서로에게 그렇듯 소설이란 삶이란 자신 위에 타인을 겹치고 덧입히며 하나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목소리를 내 안에 심는 일은 아닌지 생각한다.
결국 『벌집과 꿀』은 말한다. 문학이란 삶 위에 타인을 덧입히고 서로의 목소리를 심으며 끝없는 파도처럼 그 위를 끝없이 덮어가는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