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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한미 삼청본관에서 열린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 전시에 다녀왔다. 마치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열어보는 듯, 리딩룸에서 직접 많은 포토북을 만지고 넘겨보는 경험으로 시작되는 전시는 강렬한 첫인상을 주었다. 1943년부터 2025년까지의 매그넘 사진가들의 사진을 사진집으로 접하며 이것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사진이 프레이밍을 통해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시에서 포토북을 보면서 편집을 통해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받쳐주는 작품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면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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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북 150여 권과 작품 80여 점을 내보이는 이 전시는 세계적인 사진가 모임 '매그넘 포토스'의 사진집이 갖는 이러한 의미에 주목한다. 포토북을 전시하는 데서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점은,  전시 동선을 따라가면서 포토북이 우리 자신의 시선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의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작가 각각의 세계로 빠르게 눈을 돌리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이 바깥 세계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으로 닿을 때 사진을 보는 우리도 그들의 시선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이로써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사진만을 통해 말을 거는 포토북을 읽을 때도 여타 책이 그러하듯 우리가 보는 세계의 경계를 조금씩 넓힐 수 있게 된다.

 

 

 

사진으로 누군가의 시대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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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시는 향유하는 이와의 내적인 상호작용과 이들의 자발적인 사유를 기대한다. 전시를 관람할 때 초반에는 이러한 궁극적인 목표에 매몰되어 예술을 완벽히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지만, 이 경우 전시 후반부에 지치기 쉽다.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의 전시 구성은 뒤로 갈수록 덜 설명적이고 점점 사진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덕에 초중반부에 밀도 있는 전시를 관람하며 호기심을 빠르게 해소하고 그 얼개를 이해한 후, 가볍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전시가 시작되는 지하 1층 리딩룸에는 보고 만질 수 있는 포토북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다. 도서관 한 켠을 옮겨둔 듯 작은 서가 같은 공간이다. 다양한 크기와 개성 있는 디자인의 포토북이 큐레이팅 되어 있어 각각을 가볍게 훑어보면서 작가의 개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아가 작가 고유의 색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작가의 시선이 얼마나 먼 곳에 닿느냐에 따라, 그 작가가 지내는 시대의 단편과 누군가의 삶의 지문을 읽을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전시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의 다양성은 전시의 묘미이자 본질이었다. 리딩룸에는 어느날 사라진 여동생의 추억을 주변인들의 초상과 풍경으로 좇으며 개인적인 아픔을 아파르트헤이트의 경험으로 확장하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역동적인 레이아웃과 사진 배치를 통해 미국 재즈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리듬감 있는 포토북도 있었다. 개중에는 특히 뇌리에 각인된 작품들이 많았고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며 전시에 대한 감상을 나눠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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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파의 포토북은 감상했던 포토북 중 가장 적확한 방법으로 주제를 표현했다는 감상을 주었다. 공산주의 국가의 유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7 Colonial Still Lifes>를 읽고 이 사진집을 읽을 것을 우선 말해둔다. 그는 과잉 소비 문화와 사회적 편견, 그리고 이것의 근원이 되는 글로벌 소비 문화를 에서 사진으로 표현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사진집의 주제가 촬영 기법과 편집으로 강화되고 선명해지는 것을 자연스레 느낀다. 클로즈업샷으로 각 페이지를 꽉 채운 이미지는 피사체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좁혀 이미지를 과장한다. 멀리서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보기 때문에 이미지는 왜곡되고 그 거리감에 보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 세속적인 욕망과 집착의 추한 모습을 발견하면서, 이러한 감정이 촬영 기법과 이미지를 나열하는 편집 기법에 의해 유도된 것임을 곧 깨닫게 된다.

 

과소비를 조장하는 글로벌 소비 문화가 우리 안의 욕망을 어떻게 부풀리는지, 그리고 그것을 마틴 파는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한 권의 책으로 이해할 수 있음에 경이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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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의 풍경과 이웃, 자신에 대한 관심과 탐구를 바탕으로 철학적인 내용을 전개하는 포토북들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트렌트 파크의 더미 북은 리딩룸을 빠져나오기 직전 시선을 오래 붙들어둔 작품이었다. 평생 빛을 쫓아 살아왔다는 그의 말에서 사진작가로서 평생 빛을 연구할 수밖에 없는 그의 삶을 생각했다. 빛의 근원을 찾아간다는 것은 결국 손에 넣을 수 없는 무언가를, 달리 말하면 삶의 의미를 나름대로 정의하려는 노력이 아니었을까?

 

더미북을 보면서 해가 저물어 모든 것이 시간 너머로 잠기는 그 순간의 허무함, 그렇지만 모든 것이 시간 앞에 영원하지 않다는 진리만큼은 확실하게 다가오는 감각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죽음을 기억하며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인간 나름의 고뇌의 해소 방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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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말미에 본 치엔치 창의 은 전시에서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맨바닥 위, 마치 죄수처럼 사슬로 서로 묶여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 랩핑된 벽 앞에 서 대만 롱파탕 사원에서 일생을 보낸 한 남성의 편지와 사슬로 묶인 정신질환자들의 사진을 교차해 감상했다. 사진 속 어떤 이는 웃고 있지만, 이들을 인격체가 아닌 통제할 존재로만 바라보는 사원의 폭력을 인지하니 다소 비참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러한 판단과 동정이 그들에게는 더한 폭력일 수도 있다. 다만 전시에서 읽은 편지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절박함을 침착한 말투로 억누르려는 것처럼 느껴져 복잡한 심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절제와 금욕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는 사원에서, 수도승의 옷이 사슬로 묶인 정신질환자들을 낙인 찍는 죄수복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가해자의 모습을 비추지 않고도 실상을 고발할 수 있는 사진의 힘을 여기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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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 전시를 보면서 새롭게 깨달은 점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개인적이라 생각하는 것도 기록하면 역사로 편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한 사람의 기억으로 묻히게 된다. 자신의 과소비 습관이 개인의 문제라고만 생각하면 과소비를 조장하는 자본주의가 그것의 근원임을 진단하지 못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자신이 겪는 부조리가 그저 개인적인 고난이라고 받아들일 때 또한 마찬가지다.

 

개개인, 혹은 군중의 삶을, 그들의 일상이나 역사적인 순간을 촬영해 포토북으로 역어내는 것은 반성의 행위다. 이것은 자신만이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내보임으로써 비슷한 정서와 성찰의 순간을 공유하려는 적극적인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개인의 삶과 연결되고 기억의 특정 조각을 간직하며 누군가의 시대를 역사의 얼굴과 풍경으로 기억할 수 있다.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 전시가 선사하는 의미 있는 사유의 순간은 9월 14일까지 뮤지엄한미 삼청본관에서 경험할 수 있다. 포토북을 메시지를 전하는 강력한 매체로 조명하려는 전시의 의미가, 개개인에게 다가올 그 다른 의미가 무한히 만들어지고 공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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