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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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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는 저명한 그림책 작가이자 가드너이다. <타샤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에서는 타샤의 삶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원제는 'Tasha Tudor's Heirloom Crafts'인데, 직역하자면 '타샤 튜더의 수공예'이다. 타샤의 인생을 알고 나니 국내 제목이 더 정답고 담백한듯싶다.


타샤 본인도 '수공예'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타샤의 뜨개질, 인형 제작, 정원 가꾸기, 바구니 짜기, 천 염색과 비누 만들기는 그녀의 삶의 방식이었기에 그저 수공예라고 치부될 수 없다. 사진가 리처드 브라운이 포착한 섬세한 장면들과 작가 토바 마틴, 그리고 타샤 본인의 말들을 따라가며 우리는 '예술이 생활이 되는 모습'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몇 년 전,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개봉했을 때 귀농에 대한 판타지라며 냉소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타샤의 집을 읽으면 이 판타지가 사실은 얼마나 끊임없는 근면함이 뒤에 자리하는지 알게 된다. 집 안의 모든 것을 직접 만들고, 요리 재료를 밭에서 길러내고, 염소젖을 짜고, 양초와 비누를 직접 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선택한 삶의 방식이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저 '자급자족'이라고 일컬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녀의 손재주가 탁월해서만은 아니다. 사라져 가는 감각, 가치에 대한 기록물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효율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챗GPT는 한 땀 한 땀 그려서 완성된 지브리 영화 속 화풍을 몇 초만에 따라한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시간을 들이는 것이 '낭비'로 간주되는 시대이다. 그래서 타샤가 느리고 고된 것을 지향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오래된 마법 주문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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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나 역시 아날로그적인 삶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손으로 다이어리를 쓰는 것이다.

 

나한테 최고의 생산성 도구는 손으로 직접 그리는 '네모칸'이다. 처음에는 회사 업무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회의 중 메모지를 들고 다니면서 시작된 습관이다. 그러다가 할 일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쾌감에 중독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착하기까지는 꽤나 시행착오를 겪었다. 예전의 나는 '노션병'이 있었다. 이유는 단지 많은 '일잘러들'이 노션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노션과 같은 디지털 툴을 사용하는 이유는 속도, 그리고 다른 기기 간의 동기화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핸드폰 앱을 켜는 것 자체가 큰 노동이었다. 또한 동기화가 잘 되더라도 디지털 폴더에 넣는 순간 어떤 폴더에 넣었는지 까먹어서 결국엔 꺼내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내가 노션에 적응이 안 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유명한 노션 템플릿을 복사해보기도 하고 노션 기능 유튜브 영상들을 시청하기도 했다. 반면 손으로 직접 적는 다이어리는 모든 것을 내 눈에 보이게 적고, 내 스타일대로 바꿀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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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손으로 직접 적으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확신이 차올랐다. 일기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일기보다 삶의 허무감이 훨씬 채워지는 걸 느꼈다. 생산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채워주는 것이 아닐까.

 

텍스트힙, 라이팅힙, 니팅힙, 식물 키우기 등이 트렌드로 떠오르며 많은 2030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삶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삶의 본질도 질문받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 속에서, 무용함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살아 있음의 감각을 발견하고 있다.

 

글을 손으로 쓰고, 실을 감고, 흙을 만지고, 식물을 기르고, 계절을 직접 느끼는 일들. 이 모든 건 자동으로 되지 않는 '불편한 일들'이지만, 그 불편함이 삶의 결과 질감을 만들어낸다. 이를 좀 더 파고들면, 불편함이 사실은 '기다림'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왕자>에는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는 유명한 문장이 있다. 계절과 시간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은 타샤에게 불편함이 아닌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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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타샤의 집>이 최초로 발행된 해는 1995년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개정판이 출판되었고, 세상의 속도는 차원이 다르게 빨라졌다. 타샤의 '슬로 라이프'는 '느긋한 삶'이 아니라, '자기만의 속도를 지키는 삶'이다. 이 리듬은 자연의 시간, 손의 속도, 계절의 흐름과 일치하기에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다.

 

전자레인지나 전기 믹서가 없어도 그녀는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꼭 맞는'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 소박함은 단순히 물질의 적음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만을 남기는 일이다. 타샤가 만든 인형, 수확한 작물, 생활용품 속에 고스란히 이 정신이 깃들어 있다.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감동하는 이유는 바로 무의식적으로 삶의 본질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당장 모든 걸 제치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기로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손때 묻은 물건을 하루 한 번씩은 사수하는 것.

 

나 역시 고요한 아침, 혼자 다이어리를 써 내려가며 직접 제조한 녹차 라떼를 마시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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