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00유령포스터.jpg

 

 

연극 <유령>은 존재의 본질과 무연고자에 대한 애도를 이야기한다. 고선웅 연출가는 2018년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무연고자에 대한 기획 기사 '고스트 스토리'에서 영감을 얻어 극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극 전반과 실제 대사에서 '무연고자의 삶의 궤적과 고통을 100분으로 압축해 무거운 서사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어쩌면 위선적인 일은 아닐까'라는 연출가의 고민을 살필 수 있었다.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어설픈 짐작이나 섣부른 판단이 아닌, 진심 어린 애도에 집중하려 애쓴 흔적이 보였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지워져 간 이들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며 존중과 애도를 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연극 '유령'을 본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유령


 

01유령프레스콜.jpg

 

 

주인공 배명순은 가정폭력 피해자다. 극은 시작하자마자 남편 오상필에게 구타 당하고 있는 배명순을 비춘다. 결국 그녀는 세 번째 가출을 결심한다. 이미 두 번의 시도가 실패했으나 이런 인생이라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일념 하에 다시 도망친다. 그렇게 배명순은 정순임이 된다. 오상필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주민 등록과 자녀와의 재회도 포기한다. 그녀는 가명으로 살아가며 여러 지역을 전전하게 된다. 잠은 찜질방에서 해결하고, 식당에 일을 구했을 때는 가게에 딸린 단칸방에서 지내기도 하며 삶을 살아낸다.

 

16년 뒤, 배명순은 온몸으로 암세포가 전이되었음을 알게 되고 이내 사망한다. 시신 안치실에 찾아오는 이들은 병원 관계자, 경찰, 그리고 일했던 식당의 사장뿐이다. 장례를 치르거나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없어 그녀는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 관계자들은 시신을 '처리'한다는 표현을 쓰고 화장 비용 문제로 언성을 높인다.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을 처치 곤란한 눈엣가시로 대하는 태도는 그들을 존엄한 한 인간으로서 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무대 위, 배명순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

 

배명순은 죽은 후 유령이 되어 다른 두 유령과 만나게 된다. 죽은 지 173일 지난 우점수와 123일 지난 황종배다. 그들은 그녀와 같은 무연고 사망자로 화장되지 못한 채 영안실을 떠돌고 있다. 세 사람의 육체는 장방형의 철제 침대 위에 놓여 얼고 있고, 그들의 영혼은 영안실을 떠나지 못하는 지박령이 되었다. 하루빨리 지긋지긋한 세상을 떠나고 싶지만 화장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살아있을 때도 원하는 대로 되는 것 하나 없었는데 죽고 나서 떠나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유령들의 억울함을 본다.

 

우점수와 황종배는 배명순에게 고통스러웠던 생전의 삶을 토로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유령처럼 존재했던 인생에 분노와 설움을 표한다.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보지 않던 삶, 아무도 자신의 괴로움을 듣지 않던 삶에 대해 털어놓는다. 살아있든 죽었든 내 외침이 어느 곳에도 닿지 않는 세상이라면 사라지고 싶은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빨리 화장되어 생을 완전히 끝내고 싶다는 마지막 바람마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회의 무관심은 계속되고 그들의 존재는 그렇게 지워진다.

 

 

 

배명순, 정순임, 다시 배명순


 

02유령프레스콜.jpg

 

 

연극 '유령'의 가장 큰 특징은 극중극, 즉 연극 속에 다른 연극이 존재하는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유령이 된 무연고 사망자 배명순의 이야기가 메인 플롯이라면, 그 플롯 안에 무대 위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이야기가 별도로 존재한다. 배명순 역을 맡은 배우 이지하, 오상필 역을 맡은 배우 강신구를 중심으로 모든 배우들이 실제 본인과 맡은 배역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든다.

 

현실과 연극의 뒤엉킴은 극 중 세계에 대한 관객의 몰입을 의도적으로 해치는 동시에 유머를 전달한다. 배우 강신구는 자신의 배역인 오상필이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악역임에 불평하고, 배우 이지하도 얼굴에 피멍 분장을 받으며 극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무대 감독 역을 맡은 배우 이승우는 극 중간중간 작가의 메시지를 배우들에게 전달하고, 객석에 앉아있던 배우 김신기는 느닷없이 무대로 튀어나와 대사와 대사 사이를 제멋대로 침범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동극은 익살스러운 유머를 넘어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는 곧 본극을 관통하는 '세상은 무대, 인간은 배우'라는 주제 의식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역할놀이는 배우의 일상이자 숙명이다. 하나의 극이 끝나고 나면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제대로 이별할 새도 없이 곧장 다른 캐릭터의 가면을 써야 한다. 분장을 칠하고, 지우고, 다시 다른 분장을 칠하는 과정의 영원한 반복이다. 배우 이지하는 배명순과 정순임을 비롯한 다른 수많은 역할들로 살아가다 다시 본인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한 갖가지 상념을 이야기한다. 모든 분장을 지웠을 때의 나는 누구인가. 이지하 역시 내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맡은 하나의 역할일 뿐인가. 현실과 배역을 넘나드는 연출은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된다.

 

배우들의 고민은 배역에게도 전이된다. 우점수와 황종배는 이 세상에서 정말 재수 없는 '역할'만 맡았다며 기구한 인생에 대해 한탄한다. 오상필은 어릴 적 가정폭력 피해자였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맡게 된 폭력적인 '배역' 때문에 아내를 때리는 것이라고 정당화한다. 배명순 역시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남편에게 맞는 아내의 '역할'을 맡았다는 표현을 쓴다. 삶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서, '배명순'은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그칠 뿐이라고 합리화하며 체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편적으로 봤을 때 배명순의 인생은 분명 불행하다. 본인도 이 세상에서 맡은 역할을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태어날 때 원하는 역할을 선택할 수 없다. 어떤 곳,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는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삶 속에서의 작은 선택이나 결심은 우리의 몫이다. 배명순은 주어진 환경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견디고, 버티고, 도망치겠다는 결심은 그녀의 주체적인 선택이다. 오상필에게 맞는 배명순이 아닌 정순임이라는 새로운 배역을 선택한다. 고되고 지난하더라도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먹고 자고 돈을 벌며 일상을 만들어 간다. 극은 정순임의 노력을 비추며 당신의 삶은 보잘것없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애처롭고 가여운 삶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라고 배명순에게 전한다. 그렇게 극중극 형식을 통한 고뇌는 인물들의 삶과 선택에 바치는 존중으로 귀결된다.


 

 

공동체의 기억과 애도


 

03유령프레스콜.jpg

 

 

연극의 마지막은 위령제의 형식을 취한다. 세상을 떠나 영안실 유령으로 살아가던 세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이 각자의 시신을 떠나보낸다. 무대 위 붉은빛의 조명이 차례대로 켜지고 이내 공간 전체가 불에 탄다.

 

그렇게 애도는 커튼콜까지 이어진다. 배우들은 서로에게, 관객에게, 유령에게, 무대 위의 이름 없는 비석 하나하나에게 존중의 박수를 보낸다. 가난으로 인한 죽음, 폭력으로 인한 죽음, 노동 현장에서의 죽음, 거리에서의 죽음, 그리고 사회가 이야기하지 않는 수많은 죽음을 모두 기억하고 애도한다.

 

이는 배우, 창작진, 관객의 공동체가 함께 지내는 장례이자 제의다. 극은 제의를 통해 어설픈 동정이나 상투적인 위로가 아닌 진심 어린 애도의 뜻을 표하고자 한다. 불쌍한 삶, 쓸쓸한 죽음이라고 말하며 무연고 사망자의 인생을 단편적으로 판단하는 것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애도하고 생전의 외침을 사회에 대신 전하는 것만이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연극 '유령'은 우리와 같은 땅을 밟은 채 같은 하늘 아래의 삶을 살다간 이들을 기억하는 애도이자, 극의 막이 내린 후에도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는 선언이다.

 

 

 

박지연_컬쳐리스트_태그.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