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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현대 공연 예술의 무대에 알베르 카뮈가 다시 호출되고 있다. 최근 무대에 오른 뮤지컬 시지프스, 연극 이방인, 뮤지컬 퍼스트맨은 서로 다른 형식과 서사를 지녔지만 공통적으로 카뮈의 세계관을 재해석하고 있다. 코로나19, 전쟁, 기후 위기 등으로 불확실성과 무력감이 짙어진 오늘날 ‘부조리’라는 단어는 더 이상 철학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다. 삶의 의미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금 예술을 통해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카뮈 철학의 핵심을 조명한다. 연극 이방인은 ‘무의미함’과 ‘감정의 거리’를 통해 삶을 응시하는 냉철한 시선을 전하고, 시지프스는 반복되는 운명 속에서 자발적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반항의 형식’을 음악적으로 풀어낸다. 반면 퍼스트맨은 자전적 시선으로 죽음을 앞둔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며 인간 카뮈가 품었던 ‘기억’에 대한 질문을 조명한다. 세 작품은 모두 인간이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려는 태도를 무대 위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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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방인>


 

연극 <이방인>은 카뮈가 1942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인 뒤에도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번 무대는 그런 뫼르소의 내면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거리 두기 된 연출을 통해 관객 스스로 질문을 품게 만든다. 도덕과 감정의 틀 안에서 뫼르소를 재단하던 기존 해석에서 벗어난 이번 연극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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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지프스>


 

뮤지컬 <시지프스>는 팬데믹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네 명의 배우가 모여 연극을 준비하는 이야기이다. 이들은 신화 속 시지프스처럼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이어간다. 배우들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극중극 형태로 무대에 올리며 주인공 뫼르소의 삶과 죽음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에서의 인간 존재를 탐구한다.

 

극은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무감각하게 반응하고 결국 살인을 저질러 사형을 선고받는 과정을 그린다. 죽음을 앞둔 순간 뫼르소는 세계의 부조리를 받아들이며 삶을 긍정하게 된다. 이 과정을 따라가며 배우들은 뫼르소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고 무대 위에서 캐릭터를 창조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존재의 의미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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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퍼스트맨>


 

뮤지컬 <퍼스트맨>은 카뮈의 미완성 유작 『최초의 인간(L’Homme premier)』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자전적 색채가 강한 이 소설은 카뮈가 어린 시절 겪은 알제리에서의 기억, 아버지를 둘러싼 공백, 어머니와의 관계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뮤지컬은 이러한 자전적 요소를 극적 서사로 엮어내며 인간 카뮈의 정체성과 그가 품은 질문을 무대 위에 옮긴다. 이 작품은 기존의 철학 중심 텍스트들과 달리 감정의 결을 따라간다. ‘죽음을 앞둔 순간 인간은 무엇을 가장 후회하고,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관객은 카뮈가 사유했던 인간성의 근원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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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술은 오늘 다시 카뮈를 부른다. 무대 위에서 되풀이되는 삶의 질문 속에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 무대 위의 예술은 이 부조리와 맞서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 중 하나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조명이 켜지고 무대가 숨을 쉬지만 그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공연이 끝나면 모든 것은 흩어진다. 같은 장면이 다음 날 반복된다 해도 정확히 같은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무대는 흐르고 인물은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마치 처음인 듯, 어쩌면 허망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그 반복을 주저 없이 끌어안으며 또다시 무대에 선다.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배우들이 각자의 삶과 감정, 그리고 육체를 바탕으로 하나의 서사를 함께 만들어내는 이 과정은 단순한 연습이나 연기의 영역을 넘어 살아간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깊은 은유로 확장된다.

 

매일의 삶이 완전히 같지 않듯 무대 위의 오늘 또한 어제와는 다르다. 그것을 알기에 배우들은 또다시 오르고 또다시 말하며 또다시 살아낸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예술은 시지프의 형상을 닮는다. 의미 없는 반복처럼 보일지라도 매 순간을 새롭게 살아내려는 의지가 무대를 예술로 만든다. 그 반복을 감내하는 집요함 속에서 인간은 예술가가 된다. 이야기가 끝나고 인물이 사라진다 해도 그 무대 위에서 잠시 드러났던 질문만은 뚜렷하게 남는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정해진 대답은 없다. 다만 질문은 다음 이야기, 다음 무대, 다음 배우의 목소리로 이어질 뿐이다. 예술은 언제나 다시 시작되고 우리는 그 반복 속에서 살아간다. 이 작품들이 다시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은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술은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자세로 이 삶을 마주하고 있는가.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삶이라는 무대를 향해 발을 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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