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을 처음 봤을 때의 감정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는 시기였고, 그 고민에 정답은 없다는 것을 이 영화는 조용히 알려주었다. 그 후로도 삶의 방향이 모호하게 느껴질 때면, 이 영화는 내 마음속 북마크처럼 다시 펼쳐지곤 했다. 《소울》은 우리가 삶을 너무 복잡하게 규정해왔다는 사실을 낯설게 일깨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나에게 단순한 감상을 넘어 오랫동안 유효한 한 편의 철학으로 남아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첫 피자의 따뜻한 온기. 그게 인생이라고?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떄, 문득 이런 낡고 어려운 질문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이대로 괜찮을까? 아직 지구에 태어나본 적 없던 영혼 '22'는 그런 사소한 순간들을 통해 살아가고 싶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다. 영화 《소울》은 우리가 종종 놓치고 있던 진짜 '삶'은 거기에 있다고 말해준다.
꿈을 이루는 것이 전부일까? 주인공 조 가드너는 평생 음악가가 되는 꿈을 품고 살아왔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라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게 되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해 영혼의 세계에 떨어지고 만다. 그곳에서 만난 '22'와의 여정을 통해, 조는 인생의 진짜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꿈은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꿈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릴 때, 우리는 ‘살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그는 결국 무대에 섰지만, 마음을 더 울린 건 음악이 아니라 연주를 떠올리며 스쳐 간 인생의 조각들이었다.
"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가, 아니면 사는 그 자체가 목적일까?" 이 영화는 묻고 있다. 꿈을 꾸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것은 자신이 삶을 밀고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 꿈이 전부가 되어버릴 때, 우리는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망각하게 된다. 당신의 삶은 이미 충분히 반짝이고 있다고 영화는 말해준다. 삶은 어느 특별한 순간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사이사이, 아주 사소한 틈새 속에서 진짜 삶은 피어난다.
삶에 준비된 영혼이란 없다
"난 아직 준비되지 않아서, 다음에 할게." 이 말은 시작을 미루고, 도전을 망설이는 이유로 많은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보편적인 변명이다. 마치 완벽하게 준비된 순간이 언젠가는 찾아올 것만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런 순간은 존재하는 것일까?
영화 속, 아직 지구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영혼 ‘22’는 수많은 위인들의 가르침을 듣고, 모든 배지를 다 모은 영혼이다. 하지만 여전히 삶이 두렵고, 자신이 없어 지구로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러던 중 조 가드너의 몸에 들어가 실제 삶을 경험하게 되면서, 22는 처음으로 '살고 싶다'라는 감정을 느낀다. 준비가 아닌, 경험이 결국 그 감정을 만들어 낸 것이다. 완벽한 준비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 주는 성장의 가치이다.
삶은 머릿속으로 준비한다고 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 그 자체가 준비이고, 경험이 곧 성장이다. 실수하고, 방황하고, 어긋나는 모든 순간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살아갈 준비는, 살아가면서 되는 것이다. 완벽한 준비는 어쩌면 끝없이 도달할 수 없을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당신은 준비보다는 용기를 내서 시작해보길 바란다.
재즈는 틀리는 게 아니라 흐르는 거야
《소울》은 단순히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즈라는 음악 장르를 통해 '삶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며, 동시에 흑인 문화에 대한 깊은 존중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빛난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 피아니스트로 그의 삶과 정체적은 재즈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재즈 선율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그가 느끼는 감정, 갈망, 고민을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다.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 조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표현한다. 조가 연주에 몰입하며 존재의 흐름(zone)에 빠져드는 장면은 음악이 단순한 소음이 아닌, 삶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감각임을 보여준다. 음악을 통해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 음악은 흑인 문화 속에서 피어난 진짜 목소리이기도 하다.
픽사 영화 중 흑인이 주인공인 첫 번째 작품으로, 재즈와 함께 뜻깊게 녹아있다. 재즈는 멋진 음악을 뛰어 넘어, 억압과 고난 속에서 피어난 자유의 언어이며 조화와 즉흥이라는 철학을 품고 있다. 《소울》은 재즈 음악을 단지 스타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과 애정으로 그려 낸다. 영화 속 조 가드너의 재즈 연주 장면은 실제 재즈 피아니스트 존 바티스트의 실황 연주를 모션 캡처로 구현하여 옮긴 결과물이고, 악기 하나하나의 움직임에도 섬세함이 깃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삶은 꼭 거창하거나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결국 살아가는 것 자체가 예술이므로,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살다 보면 길을 읽을 때가 허다하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소울》은 그 질문에 반드시 정답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알려주고 있다.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누는 따뜻한 말 한마디, 여름 공기, 맛있는 식사, 한 곡의 음악 이 모든 순간들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어준다. 꿈도, 목표도, 준비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당신 자체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