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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근이 이어가던 운동을 그마저도 완전히 놓은 지 5개월이 됐을 무렵, 우연히 아파트 내에서 요가 수업을 진행한다는 안내문을 보게 됐다. 지난 10년간 수영, 홈트, 러닝, 요가 등 여러 운동을 맛보기 스푼으로 떠먹듯 조금씩 체험한 끝에, ‘운동은 돈을 내고 집 가까운 곳에서 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나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지하로 내려가기만 하면 요가 수업을 들을 수 있으니 수업 10분 전에 나와도 지각할 걱정이 없고, 무엇보다 주 2회 요가 수업을 월 3만 원에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가성비를 지녔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조건이었다. 그렇게 나는 3년 만에 요가를 다시 배우게 됐다.


초등학생이라면 이름이나 생김새 관련해서 누구나 유치한 별명을 한 번씩 가져봤을 법도 한데, 나는 그런 별명조차 없었을 만큼 지극히 평범하고 특색 없는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도 고등학생 때 드디어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 하나 생겼는데, 그게 바로 목각인형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어떤 동작을 취하든 묘하게 뚝딱거리는 것 같고 어색하다고 말했다. 거기에 대고 그 정도는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내가 생각해도 부정할 수 없는 팩트 그 자체였기에 난생처음 생긴 별명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내가 모든 동작을 완벽히 따라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동작을 취하든 마치 녹슨 기계가 수십 년 만에 처음 작동되는 것처럼 몸이 삐거덕거렸고,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던 관절과 근육은 내가 아무리 살살 달래가며 늘려보려 해도, 팽팽한 고무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 내 몸 상태가 놀라울 건 없었으나, 자괴감은 물밀듯 밀려왔다. 안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데, 내 몸마저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 억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안되는 동작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낑낑거릴수록 몸에 힘은 또 어찌나 많이 들어가던지.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있어, 선생님이 몇 번이고 자리로 찾아와 어깨를 툭 치며 힘 빼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순간, 남들만큼만 하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며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내 모습이 꼭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인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 뚜벅뚜벅 잘 걷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2보 전진을 위한 추진력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는 생각에 언제나 마음이 조급했었다. 그렇게 매번 주위를 살피면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사니, 몸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갔고, 나도 모르게 긴장한 상태를 유지했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이라 여겼는데, 사실은 몸이 굳어있는 내 마음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타인과 비교하며 쉽게 낙담하곤 했던 나를 일으킨 건 선생님의 “동작이 잘 안되시는 분은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세요”라는 말이었다. 선생님은 자세를 유지하기 힘들면 옆에 블록을 이용하라 하셨고, 상체가 완전히 숙여지지 않으면 무릎을 살짝 접어서 손으로 발끝을 잡아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다독이며 동작을 이어 나가자, 지금의 내 상태를 알아차리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남들처럼 손이 발에 닿지 않는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그 대신 첫날엔 발목까지 닿았던 손이 이제는 발가락을 한번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유연해졌다는 사실에 남몰래 기뻐하는 중이다. 이렇게 기준을 타인이 아닌 나로 두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작은 변화를 더 많이 눈치챌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상체를 천천히 숙이며 발끝을 향해 팔을 앞으로 길게 쭉 뻗는다. 여전히 몸엔 불편한 자극이 오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하다.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의 나를 발견할 거라는 기분 좋은 믿음은 그렇게 나를 유연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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