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삶의 어떤 순간은 예술과 구별하기 힘들고, 어떤 예술은 삶 속의 한 장면과 같다. 좋은 창작물은 내가 언젠가 한번 쯤 삶 속에서 겪었고 또 만났던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를 위해 예술가는 자신이 체험한 고통, 슬픔과 기쁨을 해체하고 또 그 속에 몰입 해야한다.

 

그렇게 골몰하다 마지막에 만나는 삶의 민낯이 아름답기만 하면 좋으련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일이 이렇게 흘러갈 수 있을까?"하는 비통한 질문으로 맺어지기도 한다.

 

 

 

창작은 삶의 격랑에 맞서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다.


 

그렇게 삶이 고뇌와 절망 속에서 흔들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붙잡는다. 누군가는 절망을 회피하기 위한 쾌락을 붙잡을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술과 사람을 붙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250425_내가 사랑한 예술가들_표지(평).jpg

 
 
현대미술 분야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는 마이클 페피엇. 마이클 페피엇이 사랑한 예술가들이 붙잡은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자신의 슬픔과 절망을 들여다보고 형태 없는 감정과 기억을 꺼낸 후 오히려 그것을 더 단단히 붙잡는다. 그리고 그림과 조각, 선과 색으로 바꾸어낸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내 상처의 뿌리를 끄집어 낸다는 것은 나의 불완전함과 모순을 직면하고 또 들쑤시는 고통을 수반함에도 그들은 묵묵히 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고통의 강을 건너는 우리에게 등불이 되어주고 있음을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을 읽으며 느낄 수 있다.
 

페피엇은 피카소, 자코메티, 프랜시스 베이컨, 루시앙 프로이트, 장 뒤뷔페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실제로 교류하며 그들의 삶과 예술을 오롯이 지켜본 증인이었다. 그는 그들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술자리를 함께하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관찰하거나 스쳐지나왔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개인의 고통과 혼란스러운 삶을 어떻게 창작의 원천으로 삼았는지 지켜봐온 사람으로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특히 그들의 작품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에서 벗어나 예술가의 성장 환경, 생각과 삶의 태도, 인간 관계를 함께 살펴봄으로서 작가의 개인적 에피소드가 어떻게 그들의 세계를 구성하는가를 조명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다도(Dado, 1933년 10월 4일~2010년 11월 27일)'와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년 10월 10일~1966년 1월 11일)'였다.

 

 

 

다도 Dado, 인류의 역사에는 고통과 기형, 굴욕도 포함된다.


 

dado-960x640.jpg

 

 

바쁜 삶을 살아가며 효율적인 삶을 지향하는 우리를, 수시로 딜레마에 밀어넣는 것이 '양심'이다. 그리고 페피엇이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양심'이라 지칭하는 예술가가 '다도'다. 오늘 출근해서 쏟아지는 일거리와 메일들을 처리하기도 바쁘니, '죽거나 버려진 아이들', ''전쟁 속 희생되는 사람과 유족'들의 이야기는 클릭 한 번에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와중 다도는 우리의 주의를 놓아주지 않는 작가로, 세상의 모든 고통을 이미지로 담아서 전달한다. 그는 삶 속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있음을 자각 한 후, 현실의 잔혹함을 예술로 끌어올렸는데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의 폭력성과 내면의 파편들을 낱낱이 드러낸다. 절단되고 변형된 몸을 조형적으로 변주한 다도의 그림은 단순히 인간의 훼손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 신체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더 깊게 탐구한 끈질긴 시선의 결과다.

 

페피엇은 그가 그려낸 괴물들이 실은 우리 안에 도사린 진실이며, 사회가 감추려는 어두운 층위라고 말한다.

 

 

 

자코메티 Giacometti, 너무나 개인적이고 강렬해 결국엔 보편적이 된 진실.


 

자코메티는 20세기 입체파 조각가다. 새로운 미국 추상주의의 물결이 유럽에 퍼지던 시기, 영국 예술가들에게 더욱 강렬히 부각되며 구상 회화 전통을 실현했다고 평가 받는다. 특히 자코메티의 작품은 전쟁 이후의 사회적 비극, 환멸과 실존적 불안을 투영한 가느다랗고 앙상한 형태의 인체 조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2b05e89b1cc6.png

 

 

그의 조각들은 단단하면서도 위태롭고, 언제 무너질지 모를 긴장감을 품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했고, 그 물음의 흔적이 그대로 작품에 새겨졌다. 특히 페피엇은 자코메티와 나눈 대화를 통해, 예술이 단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기 위한 방법임을 보여준다.

 

작가는 그의 예술이 '진실을 전달하려는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느끼며, 그 진실은 너무나 개인적이고 강렬해 결국엔 보편적인 진실이 되었고 이런 진실이야말로 형태를 막론한 위대한 예술의 정의이자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코메티와 그의 조각들이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특히 깊은 우울에서 벗어나거나, 엉망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길을 찾을 때, 작가는 이들을 등대 삼아 떠올린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느낄 수 있겠지만,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은 예술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에서 쓰였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예술가들을 신화적 존재로 우러르기보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들은 세상과의 마찰 속에서 불안하고, 외롭고, 때로는 자기 파괴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 불안과 외로움은 예술이라는 행위로 승화되고,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 점이 예술이라는 카테고리, 장벽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는 이유가 되겠다.

 

페피엇은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각자의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의미로 바꾸고 있는가? 이 책은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도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겪은 혼란과 상처, 불안과 절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들이 이를 어떻게 창작의 원천으로 승화시켰는지를 탐색한다.

 

그들의 예술은 치유의 수단이자, 세상과 싸우는 무기다. 절망 속에서 빛나는 예술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삶을 견디기 위한 가장 우아한 방식의 저항이었다. 예술가들의 불완전한 몸짓 속에서 우리로서 ‘살아내는 힘’의 한 형태를 발견하게 한다.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은 삶이 얼마나 잔혹한지 아는 사람만이, 찰나의 행복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예술은 삶의 비극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치열한 과정이자 그 과정이 거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가장 아름다운 형식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세상 아래 나만 동떨어져 나와 있는 파편 같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 외로움과 고통을 ‘예술’이라는 언어로 바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처절하지만 고결한 이 기록은 삶에서 탈락해 울고 있는 누군가의 순간 마저 예술로 바꿔낼거다.

 

 

 

컬처리스트_최태림_명함.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