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부모에 대한 효(孝)를 중시해왔다. 부모를 공경하고 봉양하는 것을 예(禮)의 핵심으로 여겼으며, 이 모든 것들을 당연시해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 기준에서 벗어난 것을 불효라 칭하게 되었고 효의 기준은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그중 <심청전>은 아버지에 대한 심청의 효심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전 설화다. 맹인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자 인당수에 몸을 던져 자신을 희생한 심청이는 아직도 효녀로 불리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토록 아버지에게 지극정성인 심청이를 지금까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소개할 공연 [단심]은 심청이의 이면을 탐구하며 나타낸 하나의 물음에서 시작한다.
“눈 먼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것에 대해 심청이는 정말 만족했을까?”
국립정동극장의 2025년도 K-컬쳐시리즈 두 번째 작품 [단심]이 오는 5월 8일부터 6월 28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한다. K-컬쳐시리즈는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담아낸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공연브랜드이다. 국립정동극장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창작 초연으로 선보이는 신작 [단심]은 고전 설화 ‘심청’을 모티프로 심청의 내면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공연은 총 3부로 나뉘어 75분 동안 진행된다. 1막은 인당수에 빠지기까지, 2막은 용궁의 상황 그리고 3막은 다시 육지로 온 심청이와 심봉사의 만남이다.
1막의 경우 두 명의 심청이 각각 흰색과 검은색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 심청의 갈등하는 내면을 표현하고자 대비되는 의상을 통해 그의 고뇌를 표현했다. 고전 설화 <심청전>에서는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이 공연은 심청이의 내면에 집중한다. 설화가 3인칭 시점으로 쓰인 만큼 전체 상황과 맥락에 집중했다면, [단심]은 인당수에 가기 전까지 심청의 갈등을 흑백으로 드러낸다.
아무리 부모라지만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심청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 싶었을까? 시대사상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심청이의 복잡한 마음은 흑과 백이 어우러져 부드러운 곡선으로 흩날리기도, 처연하지만 강단 있게 수직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몸동작은 부드러우면서도 유연하고, 힘 있으면서도 우아하다. 이는 심청의 여러 감정을 표현하며 고민의 흔적을 온몸으로 나타내는 지표로 작용한다.
어린 나이이기도 한 심청은 지난한 환경 속에서도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를 위해 목숨까지 버려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효 사상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어린 소녀의 심란함도 늘 함께 있었을 것이다. 자신만을 생각할 수 없고 언제나 가족을 생각하며 생활해온 심청이의 목소리는 설화에서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공연에서 인당수에 뛰어내리기 전 수없이 주춤하고 고민하던 심청이의 몸짓에서만 봐도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불안과 고뇌, 슬픔, 불만 등이 자리하고 있었는지 관객은 유추할 수 있다.
결국, 검은 의상의 심청은 흰색의 심청에게 굴복했고 그는 인당수에 뛰어든다.
2막은 용궁에 다다른 심청이의 상황을 나타낸다. 궁궐의 화려함과 걸맞게 밝은색의 분위기로 생동감이 배가 된다. 인상 깊은 점은 원작과 다르게 용왕을 용궁 여왕으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본래 <심청전>은 심청을 불쌍히 여긴 용왕이 심청이를 다시 인간 세상으로 보내는 내용이지만, 공연 [단심]은 용궁 여왕과 만난 심청의 모습을 몸짓으로 표현한다. 단심 제작을 이끈 정구호 연출가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읜 심청이 어머니의 따뜻함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물을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용궁 내부는 연꽃과 그것을 둘러싼 분홍빛이 어우러져 따뜻함이 더욱 부각된다.
다시 인간 세상으로 오게 된 심청이가 나타나며 3부가 시작된다. 원작과 비슷하게 아버지와 재회한 심청은 그를 얼싸안고 기뻐한다. 이때는 1막, 2막과 비교했을 때 한국적인 정서와 옷차림이 더욱 또렷하다. 부드러운 곡선과 선율을 바탕으로 아버지와 만나게 되어 기쁨에 찬 심청이의 모습을 잘 대변했다.
[단심]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외국인 관객을 배려해 대사가 나오는 화면에 영어 자막을 함께 삽입했다는 점이다. 심청전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전통 설화이기에 그 내용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지만, 그 내용을 정확히 모르는 외국인이 한국적 상황과 특징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게끔 도와주었다. 더불어 기존 설화와 달리, 공연은 심청의 내면에 더욱 중시하여 이야기를 전개해나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외국인 관객의 흥미를 모두 잡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전통 사상 중 하나인 효(孝)가 대표 설화인 <심청전>을 통해 강조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정작 심청이의 내면은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유교 사상에 기반을 둔 우리 민족의 정서는 자식이 부모에게 실천해야 할 당연한 도리 중 하나로 효(孝)를 특히 중점에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청이 역시 부모에게 벗어나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꾸려나갈 권리도 존재한다. 그녀가 취한 행동은 자신을 위한 행동이 아닌, 희생을 감내해서라도 가족 전체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심청이로서의 삶에 자신은 없었을 상황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공연을 보며 공감하게 되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한국의 주요 정서인 효(孝)를 배제하고는 온전한 <심청전>을 표현하기엔 한계가 따른다. 공연 [단심]은 부모에 대한 효도를 무겁게 그려 부담감을 느끼게 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게 그려 쉽사리 넘겨짚지도 않도록 여러 무대장치를 활용하여 흥미롭게 표현했다. 그 무대장치 주변으로는 뛰어난 무용수들이 심청전의 주된 특징들을 우아한 몸짓과 섬세한 의상으로 훌륭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한국 무용과 고전 설화 특유의 전통을 아름답게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