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 마음속은 차분하고 미묘하게 절망스러웠다. 어떤 무게를 가진 덩어리가 나에게서 툭 떨어져 나가 저 바닥에 나뒹구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귓가에는 아직도 그녀의 갈라지는 목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목이 쉬도록 그녀가 쏟아내던 말들은 대체 무엇에 관한 것이었을까.
'죽음'. 그녀는 몇 시간에 걸쳐 ‘죽음’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공연 자체 보다도 죽음을 듣기 위해 공연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일찍부터 죽음을 의식하고 그것과 관련한 단어는 입밖에도 꺼내지 않던 사람, 좋아하는 노래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부르지 못하고 중단하던 사람. 삶에서 죽음을 금기시하고 가능한 그것과 멀리 떨어지려던 사람. 그 사람은 이제 와서 보니 죽음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공연 안내원들의 유혈과 자해에 대한 경고에도 비장하게 공연장에 입장해, 몇몇 관객들이 불편함에 자리를 떠날 때도 좌석을 지키고 있던 나는 그 행동에 대해 은은한 배신감과 낯섦을 견디면서도 공연에서 무언가 얻고자 했다. 나는 무엇을 보고자 했던 것일까.
*
막이 오르면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등장한다. 지금부터 그녀는 진정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가장 본질적인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잡동사니는 필요 없다는 듯 노란색 배경의 무대 위에는 테이블과 의자뿐이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서 목을 축이다 괴로워하고 일평생 지속되는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다 신음한다.
그리다 문득, 공연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세지를 전한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욕망하는 것뿐.” 이제 투우사 벨몬테가 황소에게 다가가듯 죽음을 갈망하는 그녀의 다양한 몸짓이 시작된다.
그녀가 면도칼로 자신의 무릎을 상처 내자 붉은 피가 다리를 타고 내려와 바닥을 물들인다. 그리고 그녀의 팔에서도 피가 흘러 나온다. 빵에 잼을 발라 먹듯, 이 붉은 피에 적셔 빵을 먹는 그녀의 몸짓에서는 피는 잼과 다를 것이 없다고, 이 몸뚱이는 고깃덩어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이 무겁고 답답한 가죽 속에 있는 자신을 찢고 싶다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이 소리는 무대 위에 차례로 등장하는 갓난아기들의 울음소리와 같은 것이다. 아기들은 "육신이라는 십자가를 진 인간의 진정한 비극은 죽음이 아니라 바로 삶이라고" 말하는 듯 울고 있다.
이윽고 등장하는 검은 소의 모형 앞에 그녀는 향로를 피우며 발작적인 몸부림을 보여준다. 머리를 쥐어뜯고, 가슴을 풀어헤치고, 중얼거리다가 윽박지르고, 이따금 스스로를 구타한다. 자신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검은 소에게 관통당하기를 갈망하며 그 앞에서 엉덩이를 까고, 입으로는 괴상한 소리를 내고, 황소의 목을 감싸 안고, 유혹하고 광기에 온몸을 맡긴 채 자기희생적 퍼포먼스를 오래도록 지속한다. 모든 것이 해체되는 그 경계에 가닿기 위한 몸부림···.
모든 것이 소진된 듯한 그녀는 이제 고해성사식 고백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혐오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녀는 이 세계의 무지함, 공허함, 냉담함을 혐오하고 저속함과 평범함을 혐오한다. 수준 낮은 대중들을 혐오하고 영적인 것보다 일반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사회를 혐오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유골함을 받치고 있는 손의 습진을 혐오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래서 진정한 것 대신 얼마나 사사로운 것에 사로잡히도록 운명 지어졌나. 그래서 그녀는 랭보와 에밀 치오란의 정신을 사랑하고 후안 벨몬테처럼 죽음으로 돌진하고 싶다. 그녀는 끝까지 간다. 사랑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극의 마지막, 그녀는 마치 피에타의 모습으로 한쪽의 팔다리가 없는 남자의 불완전한 몸을 껴안고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모습으로 죽음이 관통해 쓰러진 소를 껴안는다. 한 번도 지워지지 않고 무대에 흔적을 남긴 피 위에서 그녀의 껴안음은 그녀의 희생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비로소 알려준다. (이 공연의 제목에서도 사랑이 죽음에 앞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죽음이 그녀에게 의미를 갖는 것은 사랑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흘린 피는 말한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죽음을 맛보고, 죽음을 통해 사랑의 진실에 닿으며 두려움과 황홀이 맞닿는 그 경계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동시에 가장 신성한 어떤 것에 도달한다고. 자신의 외곽을 스스로 찢어 죽음의 품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 그 파열 속에서만 진실한 존재는 비소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그녀의 메세지는 말할 수 없이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