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그림책 만들기 7단계_평면표지.jpg

 

 

그림책이 무엇이냐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짧은 분량의 책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글과 그림이 있다고 해서 그림책이 되지는 않는다. 책장을 넘기는 흐름에 따라 글과 그림이 자연스레 따라붙고, 그걸 따라가는 독자에게 무언가가 전해질 때. 무작위의 글과 그림, 종이와 잉크는 비로소 그림책이 된다. 그림만 잘 그려서, 글만 잘 써서 되는 일은 아니다. 마법과도 같은 '그림책만의 순간'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이것은 그림책을 만들려는 모든 사람의 과제다.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만들기 7단계』는 실제 그림책 작가이자 그림책 교육 경력이 있는 윤나라, 이서연 두 사람이 들려주는 그림책 작법서다. 두 작가는 그림책 만드는 일이 쉽다는 빈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1단계 ‘그림책 산책’부터 7단계 ‘열매맺기’까지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가며 예제를 풀고, 각 장마다 두 사람이 함께한 대화를 읽다 보면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도 싹튼다. 그림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물론 그림책 교육 현장에 있는 강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림책 교육을 하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림책 작가는 어떻게 작업을 이어갈까. 작가로서, 또 그림책 만들기를 지도해 본 입장으로서 두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림책 만들려는 사람들 곁에서



3-4 edit.jpg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만들기 7단계』 본문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두 분이 어떻게 함께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만들기 7단계』를 쓰시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이서연(이하 ‘이’): 작년 초에 대략적인 기획을 해두고 저처럼 그림책 작가이면서 그림책 교육을 해본 적이 있는, 비슷한 나이대의 공저자와 함께하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나라 작가님이 떠올랐고요. 서로 잘 맞고 각자가 못 보는 부분을 봐줄 수 있어서 즐겁게 작업했어요.


윤나라(이하 ‘윤’): 지금까지 그림책만 그려왔는데, 제안을 받고선 그림책이 아닌 우리의 수업 노하우가 담긴 참고서는 어떤 느낌일까 기대되고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혼자 만들기에는 벅찼을 텐데 서연님이 계셔서 너무 든든했고 재밌었네요.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만들기 7단계』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들려주세요.


: 저희가 그림책 출간 경험이 있고 지금도 계속 작업을 하고 있으니, 그림책 만드는 과정을 작가로서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이라는 수식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죠. 그림책 만드는 과정을 쉽게 포장하기보다 작업의 어려움까지 낱낱이 들려주며 진심을 담으려 했습니다.


또 실제 수업을 할 때는 시간 관계상 1단계 ‘그림책 산책’이나 3단계 ‘한 장면 꽃피우기’는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둘 다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번 책에서 강조해 봤어요. 만들기 전에 다른 그림책을 충분히 탐색하시고, 그림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과 텍스트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배워가시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대상으로 그림책 수업을 하셨을 텐데, 수업을 하시며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만드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모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아요. 그림과 글을 적당히 조화롭게 배치하는 게 그림책을 만드는 일반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사람이 가진 이야기는 다 다르기에 때로는 전혀 다른 방식이 필요할 수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책에서 수강생 그림책 중 『다음 고양이는?』을 소개했는데, 별다른 글 없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서로 반대되는 생김새의 고양이가 양 페이지에 펼쳐지는 구성이에요. 그 친구도 수업 4주차까지 이야기가 구체화되지 않아 고생했어요. 쉬는 시간 화이트보드에 각각 다르게 생긴 고양이 그림을 잔뜩 그려놓은 걸 보고 제가 힌트를 얻어 학생과 대화를 나눴고, 그렇게 탄생한 그림책이죠. 저에게도 학생에게도 모험이었는데 완성된 걸 보고 다들 재밌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림책 수업을 할 때 수강생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워하는 단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 이야기 소재를 확정하는 단계를 어려워하세요. 아이들은 비교적 빨리 정하는 편인데, 어른들은 달라요. 그림책 만들기에 더 진지하게 임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전하고픈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이야기 주제 마감일은 따로 공지하는 편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작업이 늘어질 수 있거든요.


윤: 공통적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많이 힘들어하세요. 처음 그려보기도 하고 시간에 쫓기게 되거든요. 많이 아쉬워하고 자기 그림에 위축되어서 힘들어하세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위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해요.

 

 

그림책을 만들려는 사람이 꼭 기억했으면 하는 것 또는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이: 자유로움과 즐거움이요. 그림책에는 놀이의 성격이 있어요. 작업은 힘들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좋고 즐거워서 이걸 할 수밖에 없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가르치겠다, 내 메시지를 설파하겠다는 마음보다 재밌어서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앞서야 해요.

 

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하고 싶은 그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요. 내가 생각한 방향과 주변 사람들이 그 그림책을 본 느낌하고는 다를 때가 많아요. 그러니까 만드는 과정 중에서 놓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해야 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틈틈이 봐야 하죠. 그리고 처음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가졌던 목적을 잃지 않기를 원해요.

 

 

 

그림책만 할 수 있는 것



3-1 edit.jpg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만들기 7단계』 본문

 

 

그림책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은 그림책, 또는 그림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 올가 토카르츠쿠가 글을 쓰고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림을 그린 『잃어버린 영혼』이에요. 회사 일을 마치고 머리를 식힐 겸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죠. 그땐 코로나가 터지기 전이어서 편안히 앉을 공간이 지금보다 많았거든요. 별생각 없이 돌아다니다가 앉은 자리 뒤편에 낮은 책장이 있길래 무심코 손을 뻗어서 잡은 책이었어요. 이 책을 보고 이전까지 제가 그림책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 다 깨져버렸죠.


펼치면 왼쪽 페이지에는 영혼의 이야기, 오른쪽 페이지에는 육체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서로 상관없이 진행되다가 나중에 합쳐져요. 책의 물성을 활용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선했어요. 그 만남을 계기로 마침 운명처럼 그림책을 만들고,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 숀 탠 작가님의 그림책이요. 그림책 하면 아기자기한 동화, 일러스트 느낌의 그림체를 많이 떠올리는데요. 이 작가님은 자기만의 독특한 그림체와 세계관을 그리셔요. 실제로 커다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림을 그리시는데 사실 그림책 안의 그림을 유화로 그린다는 건 진짜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자기만의 색과 개성을 가지고 계속 전진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숀탠 작가님의 그림책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책에서 애니메이션과 그림책을 비교하며 설명하기도 하는데요, 두 분이 생각하는 그림책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림책만이 지닌 매력은 무엇인가요?


: 소설은 자연스럽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 진행 방향대로 읽고 영화는 한번 재생되면 멈추지 않고 관객의 특별한 개입 없이 보는 것이 일반적이잖아요. 그림책은 이 두 매체에 비해 차이가 있어요. 우선 보통 그림책에는 글과 그림이 같이 있기 때문에 그림책 읽기는 소설보다 비선형적으로 이뤄지죠. 독자는 그림을 먼저 보기도 하고 글을 먼저 읽을 수도 있어요. 

 

그림책의 이야기는 짧은 분량에 함축적으로 녹아 있는 경우가 많고 글과 그림이 주는 의미와 정보의 간격도 있기 때문에 독자는 그 사이에서 생기는 차이라든가 조화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같은 이유로 영화와 같은 영상 매체보다는 독자의 개입이 많이 이루어지는 장르인 것 같고요. 이런 특성 때문에 저는 그림책을 고요한 매체라고도 생각해요.


: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적은 수의 장면을 그려요. 그러니까 장면 하나를 엄청 고민하고 세심하게 생각해서 골라놓지요. 저는 짧지만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여백의 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많은 애니메이션을 쉽게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만져볼 수는 없지요. 그림책에는 물성이 있어요. 물성이 있다는 것은 쉽게 손때 묻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변질될 수 있다는 의미에요. 그래서 책 하나하나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두 분이 그림책 작가인 만큼 작가로서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왜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나요?


: 어릴 때부터 영화나 소설, 드라마 등 이야기를 장르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안에도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사실 어느 장르든 상관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디자인을 전공해서 그림 쪽이 좀 더 익숙하다 보니 그럼 우선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시도한 분야가 그림책이었습니다.


: 서점에 나온 그림책을 보고 궁금증을 갖게 되었어요.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어른들도 그림책을 볼 수 있네? 등등 이러한 단순한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하게 되었어요.

 

 

그림책을 만든다는 건 결국 나를 발견하는 일이라는 문장이 책에 나오는데, 두 분 모두 그림책 작업을 하며 발견한 새로운 자기 자신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그림책을 만들며 어렸을 때 갖고 있던 어떤 마음,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가 없고 어떤 말로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여전히 제 안에 있음을 깨달았어요. 자신만의 세계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요, 이것이 작가의 ‘오리지널리티’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에게 각자의 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믿기에 수업에서도 수강생에게서 그걸 발견하려 열심히 들여다봅니다.


: 그림책을 만들면서 생각보다 제가 끈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 다른 일을 꾸준히 하기가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제가 만든 그림책을 계속 보다 보니 저도 몰랐던 저의 무의식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림책 작가로 산다는 것



책 이미지_윤나라_4_edit.jpg

윤나라 작가의 그림책 『얼음 펭귄』

 

 

두 분은 언제부터 스스로를 그림책 작가로 인지하기 시작하셨나요?


: 제가 처음 스스로를 작가로 인식했던 때는,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열었던 더미북 공모전에 제 더미북이 선정이 되었을 때예요. 어떤 기관과 연결되어서 거기서 돈을 받고, 또 제 그림이 걸리는 전시도 홍보 지원을 받으니까 이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책을 낸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어요. 그냥 책만 냈다면 독자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그림책 작가로 강의를 하고 전시를 하니 사람들이 많이 불러주고 나서야 제가 그림책 작가라는 걸 인지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림책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해보면서 그림책 작가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림책 작가가 되는 조건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그걸 표현하고자 한하는 욕구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창작하는 과정이 힘들지만 그래도 완성된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 이걸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작가가 되는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실제로 동료 작가들이 ‘꾸역꾸역’이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작업할 때마다 그 단어는 정말 최적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만큼 억지로라도 나를 일으켜서 작업이 시작될 때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계속하는 건 만들고 싶은 욕망, 실제로 내가 완성된 책 모양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 이미지_mia_2_edit.jpg

이서연 작가의 그림책 『The blue: bench』(벤치, 슬픔에 관하여)


 

작가로 활동/작업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나가고 있나요?


: 가장 현실적인 어려움은 돈이에요. 그림책 작가가 그림책만 만들어서 돈을 벌기는 어려운 구조니까요. 의외로 집에서 독립했던 게 도움이 되었어요. 오롯이 제가 저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이 되니 오히려 작업 외의 일에도 보람을 얻고 의미를 부여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요. 내 삶을 내가 운용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윤: 역시나 그림책이 돈을 벌어다 주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게 되면 그림책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들게 돼요. 그림책은 정말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여서 나오는 건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힘들어요. 하지만 내가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큰 열망이 삶에 동기부여가 돼주고 그림책 작가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거 같아요.

 

 

그럼 작가로서의 삶을 계속하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 노하우가 따로 있다기보다 이야기가 생기면 그걸 계속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것을 계속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 덕에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생각하고, 물어보고, 계속합니다. 이 과정의 반복이에요.

 

: 작업이 멈춰 있다가도 문화생활을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것을 보다 보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겨나곤 합니다. 역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겠구나 그런 마음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며 한 말씀 부탁드려요.


: 저희 LMDL에서 교육장을 준비해 그림책 만들기 자체 강의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만들기 7단계』를 바탕으로 진행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얼음 펭귄』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제 그림책 소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 텐데요. 저는 열심히 부지런히 지내고 있습니다. 서연님과 함께할 다음 책을 계획 세우고 있고,  『마야와 마법의 집』 동화책 시리즈 3권 삽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음 펭귄』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 준비중에 있어요. 제가 쓰고 그린 새로운 그림책 더미도 오랜 시간 준비 중이고요. 언제 나올진 모르겠지만, 많이 응원해 주세요!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