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전, 부모님이 2000년대 초반부터 사용하시던 삼성 디지털 카메라를 물려받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라 받게 된 것에 가깝긴 하다. 아무튼, 하루는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신나게 외출을 하던 길이었다. 그날은 너무 들뜬 나머지 손목에 걸린 디지털 카메라 스트랩이 순간 헐렁해져서 날아갈 지경이 되었는데도 걷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곧 작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몸체를 자랑하던 카메라는 허공을 날아 아스팔트 위를 뒹굴었다.
이때의 충격 때문인지 지금도 잔고장이 많아 사용이 불편해졌지만, 중요한 건 그런 불편보다도 여전히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저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 몇 장 남기고 싶었을 뿐인데 요즘도 외출할 때 빼놓는 법이 없는 물건이 되었다. 그 이유는 제법 단순하다. 대충 대충 찍곤 했던 사진들을 다시 보던 중 문득 마음의 동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찍는 데는 3초에서 5초밖에 들지 않았는데 다시 볼 때는 그것보다 훨씬 오래 남는 감상과 그로 인한 여운을 느꼈다.
그 후 매일 디지털 카메라로 하루를 남기는 데 재미를 붙이고 얼마 뒤 떠난 일본 여행에서도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열심히 남겼다. 낮은 화소의 디지털 카메라가 기억을 강제로 풍화시킨 탓인지 그때의 사진을 보면 아련한 추억이 눈앞에서 일렁인다. 우스운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조금 흐릿한 사진 사이로 어떤 향기가 느껴진다. 불완전한 기억의 저장물이 심상으로 적은 화소수를 메우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을 배경 삼아 나누어보려 한다.
찍는 것이 아니라 담는 카메라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비교적 낮은 채도와 대비감을 지닌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빛에 바랜 듯한 느낌의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 기억의 원본을 불러오기 위해 감각이 하나씩 깨어난다. 다른 카메라에 비해 비교적 실제 톤을 잘 잡는 카메라라면 사진이 약간의 노란색만 머금고 있어도 사진 속의 날씨와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 속 능소화의 투명한 주황색 꽃잎은 여름의 뜨거운 태양광을 제대로 머금고 있다. 땀을 흘리는 것처럼 태양빛에 반사된 미끈한 잎사귀를 보니 그때의 습도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능소화의 향기를 맡아본 적은 없어 꽃의 향기를 상상할 순 없지만, 온도와 습도를 불러오고 난 후에는 뜨거운 아스팔트의 아지랑이 냄새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방금 설명했던 것처럼 빈티지 디지털 카메라는 적은 화소수 때문에 화려한 색과 명암의 깊이를 보이는 그대로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 때문에 찍힌 사진을 보면 입체감이 적어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바닥을 찍을 때 예쁜 사진이 나올 수 있는 일은 적고 일본 여행 중 바닥을 찍은 사진도 위의 것이 유일하다. 무척 더운 날에, 한시 바삐 발을 움직여도 모자란 시간에 열기가 피어오르는 그런 아스팔트를 응시할 이유는 사실 많이 없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예쁜 맨홀 뚜껑을 발견한 게 아니라면.
디지털 카메라가 담아내는 납작한 풍경은 그렇기에 더욱 프레임 안의 모든 면을 구석구석 관찰하게 만든다. 사진을 찍을 때는 놓쳤던 나뭇잎 사이로 얼룩처럼 비치는 햇빛도 뒤늦게 눈에 들어온다. 사진의 각 요소들이 조합되고 머릿속에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 순간이 GIF 파일처럼 약간의 생명을 얻는다. 반짝이는 햇빛과 앵글 구석에서 흔들거리는 카메라 스트랩, 최대한 신발이 사진에 걸리지 않도록 몸을 뒤로 빼느라 움찔거리는 샌들 앞코.......이 순간 맡을 수 있는 건 살랑거리는 나뭇잎의 비린내다.
맨홀 뚜껑과 볼 것 없는 아스팔트만으로도 상상할 거리를 상당히 많이 제공하는 사진도 있지만, 무엇을 찍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사진도 분명 있다. 카메라를 들었다면 형형색색의 무언가를 꼭 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시야가 좁아지기 쉽다. 특히 초점 거리가 상당히 제한된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더욱 그렇게 된다. 그렇기에 담길 수밖에 없는 작은 엑스트라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뒤의 간판을 보니 제법 군침이 도는 냄새가 흐르는 거리인 듯하다. 낚싯대 같은 장대에 테루테루보즈처럼 달려 있는 장식들을 올려다 보며 맛있는 냄새를 코끝으로 한껏 들이마셨을까. 이건 축제 분위기를 내는 장식이 신기하고 예뻐서 찍은 사진이었을 것이다. 마치 거리의 입구처럼 딱 햇빛이 드는 자리에서 손짓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게 아닐까? 정적으로 보이는 사진에서도 미처 가리지 못한 뒤의 풍경이 속절없이 맘을 들뜨게 한다.
디지털 카메라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기도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담아내는 검정은 때론 보다 복잡한 감정을 선물하기도 한다. 지브리 뮤지엄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허락된 몇 없는 스팟에서 그토록 좋아하는 거신병과 조우하며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도 들떴던 기억이 난다. 사진 속 거신병은 구시대의 유물, 전설 속 병기와 같은 몸을 하고 얼굴엔 읽을 수 없는 그림자로 덮여 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분명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아쉬운 맘이 들진 않았다.
이 사진은 한 번 보면 왠지 눈을 뗄 수가 없다. 거신병과 마주 서 있는 그 기분을, 그 긴장감을 사진 너머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만든 고독과 전사가 지닌 엄숙함을 느끼며 거신병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보정으로 걷어내고 싶지 않았다. 육중한 쇠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 사진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보다 훨씬 좋다. 이렇게 한치의 의심 없이 말할 수 있다는 건 무척 기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디지털 카메라는 여러 의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순간의 향기를 몰고 온다. 소위 '감성'이라 뭉뚱그려 말하는 것은 이러한 복잡한 정서를 한 번에 느낀다는 걸 표현하기 위한 최선의 어휘일 것이다. 감성은 감성이니까,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좋다는 걸 아는 거니까 좋은 것이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좋은 이유를 오래도록 깊이 생각해보지 않다가 감성의 이유를 추적해보며 오랜만에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그냥 좋은 것 말고도 더 좋을 수 있다는 게 좋다. 디지털 카메라를 더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감정을 그들도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