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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전통 음악과 국악 공연이라고 하면, 나는 늘 약간은 거리감부터 느끼곤 했다. 《아리아라리》 공연을 보기 전에도 그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연 내가 이런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흥미를 느끼긴 할까? 공연장을 향하는 발걸음은 기대보다는 조심스러운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은 공연이 시작된 지 불과 몇 분 만에 산산이 깨져버렸다.

 

공연을 관람하기 전, 나는 ‘전통음악’이라는 말에 약간의 주저함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정적이고 낯설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무언가라는 막연한 인식이 있었다. 머릿속에는 느릿하고 정적인 장면들, 낯선 선율이 떠올랐고, 과연 이 공연이 나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리아라리’라는 제목 역시 처음 들었을 때는 단순히 ‘아리랑’에서 따온 평범한 이름처럼 느껴졌다. 물론 국립국악원이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감은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세계’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공연장을 향하면서도 기대와 설렘보다는 어쩌면 나에게는 어려운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그러한 걱정은 불과 몇 분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무대 위에 조명이 서서히 들어오고, 배우들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무언가 특별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예상했던 고요함 대신, 온몸으로 부딪쳐 오는 에너지와 격정이 무대를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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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국악기와 현대적인 음향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웅장한 소리가 무대 아래에서부터 진동처럼 퍼져나갔고, 그 위에 얹힌 배우들의 노래와 몸짓은 너무나 생동감 넘쳤다.

 

특히 감탄을 금치 못한 점은 단순히 ‘전통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통을 현재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국악의 리듬은 때론 강렬하게, 때론 섬세하게 흐르며 서사의 긴장감을 이끌었고, 무용과 연극적 요소가 결합된 퍼포먼스는 전통이 가진 고정된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렸다.

 

공연의 주된 이야기인 정선아리랑 설화는 사실 나에게 생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인물 간의 갈등, 상실, 사랑, 고통, 해학 등이 현대적인 무대 언어로 표현되면서, 나는 마치 고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삶과 맞닿아 있는 어떤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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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연기였다. 특정 장면에서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다가도, 곧이어 가슴 먹먹한 감정을 안기며 관객의 감정선을 자유자재로 흔들었다. 특히 주인공 아리와 친할머니 사이의 깊은 유대감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몰입했고, 실제로 내 주변의 관객들도 숨죽이며 그 장면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무대 연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지처럼 부드럽고 은은한 배경 위에 조명이 얹힐 때마다 장면이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전환되었고, 영상과 음향이 어우러져 서사의 흐름을 매끄럽게 이끌었다. 현대적인 무대 장치와 전통미가 균형 있게 어우러지면서, 마치 전통과 현대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고 춤을 추는 듯한 감각을 선사했다. 무대 위에서 표현된 춤과 소리, 이야기와 표정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공연이 끝나고 긴 박수갈채 속에서 무대가 암전 될 때, 나는 문득 공연 전에 가졌던 나의 편협한 시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전통’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낡고 멀리 있는 것으로만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아리아라리’를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전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도 충분히 느끼고, 즐기고, 감동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문화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통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공연을 통해 나는 국악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더 이상 ‘어렵다’, ‘지루하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히려 ‘신선하고 강렬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장르임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국악과 전통예술 공연을 더 자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리아라리》는 나에게 그 시작을 열어준 매우 소중한 공연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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