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에는 사람은 변한다. 굳이 제목을 의문형으로 해놓곤 첫 문장부터 글의 결론을 단정 지어서 뭐하자는 거지 싶겠지만, 흔히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그만큼 단단한 반박임을 내비치고 싶었다.
내가 그래왔고 주변에서도 변한 사람들을 몇몇 본 적 있다. 내 삶이 긴 건 아니지만, 어릴 땐 남을 괴롭히다가 철이 든 뒤로는 모두에게 사과를 하고 모범생 모드로 변신한 친구도 있었으며, 반대로 착하기만 하던 애가 군생활을 하면서 점점 공포의 선임이 되어 가는 것도 봤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하다. 소심하기 짝이 없던 나는 어느새 웃기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부디 이것이 마땅한 칭찬이 없어서 그냥 던진 말이 아니길 바란다.) 또 게으름만 피우던 코로나 시기와 달리 지금의 나는 안주하기 싫어 조급해 한다. 애인과의 연애에서도 한 번 크게 다투고 나면 다신 같은 문제로 싸운 적이 없다. 다투기 전에 고치지 그랬냐는 말은 말아주길 바란다. 나도 아직 인생 1회차에 연애 횟수는 한 손가락이다.
꼭 ‘사람은 변한다’의 산 증인이라고 자부하는 나라서만은 아니다. 떠올려보자. 가장 가까운 가족, 친척도 항상 변해왔다. 툭 하면 으름장을 피우던 우리 아빠는 갱년기를 거치며 여성 호로몬의 분비로 인해 엄마 없이는 삶의 낙이 없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릴 때 항상 나랑 결혼한다고 했던 내 여동생은 자기 혼자 이혼했는지 지 방에서 나오지 않은 채 거의 별거 중이다. 대부분의 가정도 이러할 것이라 믿는다. 모두의 삶을 담아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도 가족 구성원들의 각기 다른 변화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사람은 나이대에 따라 모습이 변한다.
흔히들 본성이나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니, 그것은 그저 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변화에는 보통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외부적 자극으로 자연스레 찾아오는 변화와 내적 갈등을 통한 자발적 변화다. 그리고 본성이나 천성 같은 경우는 깊은 내면에서 존재하는 것이기에 무조건적으로 자발적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나도 나를 안다. 난 나의 본성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애써 바쁘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지만, 이 또한 나이기에 그렇기도 했다.
김영하 작가의 신간 ‘단 한 번의 삶’을 읽고 크게 인상 깊었던 지문이 있다. 요약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변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최소한 ‘도발적 사건’이 있어야만 ‘의미있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큰 사건을 겪고 변화하길 기대하며 관람하는데, 그 기대감이 ‘사람은 변한다’라는 말을 믿으려는 의지의 증거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모든 것에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 이 자연스러운 결과에 ‘도발적 사건’ 같은 큰 계기가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돌이 아니다. 아니, 돌도 풍파를 맞으며 변한다.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변화라는 가능성을 굳이 스스로나 남을 재단하기 위해 부정할 필요가 없다. 자발적인 변화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사람은 변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어느덧 깨닫는다. 거울 속 낯선 나를 발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