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성향은 유전자 탓?
오늘 리뷰할 책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의 원제는 'Predisposed'로, 이 단어는 생각, 행동에 영향을 주어 어떤 성향을 갖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책의 전체적인 논지를 생각할 때, 제목은 적절한 방법으로 변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인간의 정치적 성향에 생물학적 기반이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한국 독자들에게 크게 낯설지 않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책, '이기적 유전자'가 아직까지 활발하게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와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공통된 관점을 공유한다. 첫째,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존재라는 전제다. 두 책은 인간의 특정 사회적 행동, 나아가 정치적 성향 조차도 신경적, 유전적 기질에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을 펼친다. 즉, 우리가 의식적으로 내린다고 믿는 선택도 생물학적 성향이 깊이 작용할 수 있다.
둘째, 이러한 선천적 차이는 각각 다른 생존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이타성이나 협력 행동, 심지어 가족애조차도 진화적 전략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역시, 정치 성향의 차이를 생존 전략의 차이로 설명한다. 위헙에 민감한 보수적 성향과 탐험을 추구하는 진보적 성향은 서로 다른 생존 전략이다. 나아가 '이기적 유전자'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유전자는 집단의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하고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는 사회적 균형을 위한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2. 극단적인 정치세력을 이해하는 책?
이처럼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는 사회 이론, 이념적 대립이 아닌 신경학적 양식의 다양성으로 바라본다. 이 책은 한국 독자에게 익숙한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 행동의 유전적 동기에 대한 통찰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오늘날 이 책이 읽히는 이유는 대부분 "왜 그들은 그렇게 이해할 수 없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러한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면-사실 서문에서 저자들이 스스로 밝히듯-, 속 시원한 답을 얻을 수는 없다. 책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다면, 아마 이럴 것이다. "정치 성향의 차이가 도덕의식의 차이가 아닌, 진화적 기반의 차이일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타자 이해와 정치적 관용을 새롭게 사유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책은 특정 정치 성향을 옹호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끌어와 '우리는 다른 것이 당연하다'라는 결론으로 내달린다.
그러나 교양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책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차이를 이해하는 일' 뿐일까? 하지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그런 교훈을 전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의 전제를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질문에 도달한다. "우리의 정치적 태도와 윤리 감정도 유전자 생존 알고리즘의 일부인가?", "우리는 스스로 정치적 신념을 형성하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책이 궁극적으로는 '주체(의식) 이전의 결정성'과 '도덕과 행동의 생물학적 환원'에 대해 도발적인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다른 관점에서 읽기
정신분석적 접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나는 이들의 연구와 주장을 일부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궁극적인 의미에서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동의하고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전자나 신경단위에서 우리는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이미 쌍둥이 행동유전학 연구와 유전자의 연구들은 유전자나 신경학적 경향성이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되어 왔다. 다만, 이러한 연구들은 강력한 단일 원인을 제시하지는 않고 선천적 기반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할 뿐이다. 후생 유전학의 설명도 이를 보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의 차이는 개인의 세계관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우리의 행동과 판단은 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의 신경심리학 연구와 정신분석학은 의외의 부분에서 접점을 이루고 한다. 우리는 환경과 맥락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존재로, 생존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었을 온도와 습도, 짧은 오감 자극만으로도 사고를 바꿀 수 있다.
정치 성향 테스트를 수록함으로써 우리를 끌어들이는 이 책이 가진 큰 약점 중 하나는, '중도'를 적절히 해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책에 수록된 테스트를 꼭 하지 않아도, 우리는 언론의 스피커를 통해 보도되는 극단적인 지지 세력이 아니면 대부분 중간에 위치해있다.
나는 이러한 불일치가 정치 성향을 뇌 구조나 유전적 기질에 기초한 기질적 반응 경향성으로 환원하는 책의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만으로는 극단적인 정치세력은 물론이고 중도 세력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개별 유전자나 신경화학물질 수용체, 뇌의 활성화 차이가 어떤 현상의 증거는 될 수 있지만, 원인을 파악하는데에는 지나치게 낮은 설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책의 이러한 태도를 비판할 수 있지만, 나는 비슷한듯 다른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이를 비판해보려고 한다. 정신분석학적 관점, 특히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인간은 자극에 의해 일어난 예민한 반응에 의해 세계관을 형성하는 육체적 존재지만, 자신에게 쾌, 불쾌의 자극을 주는 존재를 대체하고, 상상하여 '안정감을 발명'할 수 있는 존재다. 이 과정에서 권위적인 리더나 외부의 침입자, 내부의 불복종자에 대한 태도가 정해질 수 있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볼 때, 책의 논리적 흐름과 꽤 맞닿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경향성'은 무의식적 갈등과 상징 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보다는 점에서 좀 더 유연성이 있다. 고전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정치적 입장이나 윤리는 단순한 기질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기적 유전자'나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와 같이 생물의 감각, 생존 욕구가 행동의 근원이 되는 점은 같지만, 그러한 경험들을 표상으로 사유화하고, 타인이나 세계와 관계를 다시 재구성한다. 정치적 입장은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강력한 선천적 차이'에 얽매여 설명되어서는 안된다.
4. 나가며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는 정치 성향의 차이를 생물학적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독특한 시도를 담은 책이지만 그런 만큼 조심스럽게 읽혀야하는 책이다. 이 책은 정치심리학과 생물학적 접근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자료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우려와 문화적 요인에 대한 고려 부족 등 일부 한계도 존재한다. 어쩌면 이 책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 그 자체를 과학으로 대신하려는 충동에 봉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가진 도발적이지만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의 결론으로 사람들 사이에 뿌려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