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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어느 날 인생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24시간 부모님 곁에서 보살핌을 받던 갓난아이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보통 우리는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시기를 맞이한다. 자유와 함께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등에 업게 되면서 이전에 알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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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는 어른이 채 되지 않은 어린 13살 소녀 ‘키키’가 어엿한 마녀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마녀가 되기 위해서는 13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야 된다. 자신이 원하는 마을에 정착해 1년간 마녀 수련을 거치면 진정한 마녀로 거듭난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마녀 신분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키키는 맑은 날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이윽고 들려온 밝은 보름달이 뜬다는 소식에 곧바로 떠날 채비를 한다. 어머니가 준 빗자리를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하늘을 날던 키키는 갑자기 쏟아진 비에 잠시 열차 안으로 몸을 숨긴다. 키키는 열차가 출반한 지도 모른 채 잠에 들고 만다. 날이 밝고 일어난 키키가 본 열차 밖 풍경은 그토록 바라던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었다.


아름다운 해안 마을에 반한 키키는 이곳에 정착하기로 한다. 하지만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지 않는 마을 사람들과 머물 곳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때, 키키는 우연히 만난 빵집 아주머니를 도와드리면서 이를 계기로 빵집 옆 빈방에 지내게 된다.


드디어 거처를 정하며 한시름을 놓게 된 키키. 하지만 여전히 앞으로 마녀로서 어떻게 일을 해 나가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키키는 이 상황을 어떤 식으로 헤쳐나갔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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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는 다른 마녀들에 비해 평범했다. 특별한 약을 만들거나 점을 칠 줄 아는 다른 마녀들과 달리 키키는 하늘을 나는 것 외에 별다른 능력이 없었다. 마녀들은 자신이 가진 특기로 새로운 마을에 적응해 나가지만 키키는 그럴 수 없었다. 설상가상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기지 못한 키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내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것이 키키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단 하루면 충분했다. 이렇게 오랜 고민을 하지 않은 건 키키의 긍정적인 마인드 덕분이었다. 키키는 빵집 아주머니처럼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는 키키에게 다시 용기를 낼 힘을 주었다.


키키는 하늘을 나는 능력으로 배달 일을 시작한다.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빵집 아주머니 호의로 가끔 빵집 일을 보는 대신 방세와 배달에 필요한 전화세까지 내지 않게 된다. 한차례 문제를 해결한 키키는 더욱 열정을 갖고 주어진 일을 해 낸다.


이처럼 같은 상황에 처해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단정 짓기는 이르다. 키키는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을 이끌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좌절 속에서 나를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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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고 똑 부러진 키키도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첫 배달을 하러 가는 길에 그만 손님의 택배를 잃어버리고, 궂은 날씨로 시간에 쫓기며 택배를 하는 등 힘겨운 일들을 겪는다. 넘치는 의욕과 달리 키키를 찾는 손님도 많지 않았다. 호기롭던 마음이 무색해질 정도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한 키키는 점차 지쳐간다.


항상 키키에게 먼저 다가오는 또래 친구 ‘톰보’와 시간을 보내며 잃어가는 자신감을 회복하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과 대화 도중 다른 친구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톰보를 보고 키키는 왠지 모르게 심술이 난다. 언제나 곁에 있던 단짝 친구 검은 고양이 ‘지지’도 다른 고양이 친구를 사귀면서 키키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타지에서 밀려오는 외로움은 키키를 다시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지금 키키는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기 위한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작부터 모든 일이 매끄럽게 잘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예기치 못한 것들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들이 더욱 많다. 이때 우리는 좌절을 경험한다.


키키는 자신의 밝고 쾌활한 모습을 잃어간다. 이와 함께 마법도 사라지고 만다. 이전처럼 하늘을 날 수도, 지지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게 된다. 이는 지금까지 마녀가 되는 삶을 꿈꿔온 키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결국 키키는 마녀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며 깊은 슬럼프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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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는 이를 극복해낸다. 배달을 하던 중 인연이 된 화가 ‘우르술라’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다잡는다.

 

 

“마법하고 그림은 비슷하네. 나도 안 그려질 때가 종종 있어. 그럴 때는 미친 듯이 그릴 수밖에 없어. 계속 그리고 또 그려야지!”
“그래도 날 수 없으면 어떡하죠?”

“그리는 걸 포기해. 산책이나 경치 구경, 낮잠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마. 그러다가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지.”


 

“난 네 나이 때 화가가 되기로 결정했어. 그림이 너무 재미있어서 잠도 아까울 정도였지. 그런데 어느 날 전혀 그릴 수가 없었지. 그려도 그려도 마음에 안 들었어. 이제껏 그림이 누군가를 흉내 냈다는 걸 깨달았어.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어.“


 

이 말에는 깊은 교훈이 담겨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혹여 좌절하는 순간이 찾아와도 그 좌절에 깊이 매몰되어 자신을 잃으면 안 된다. 스스로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무엇을 향해 달려왔는지 그 목표를 잊지 말아야 된다. 나라는 중심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주변을 의식하느라 진실한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면 안 된다. 그러니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여 스스로를 믿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는 사람이야말로 바라던 것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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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는 이를 경험한다. 아슬하게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선에 매달린 톰보를 구하면서 마법을 되찾는다. 복잡한 생각은 접어두고, 오로지 톰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 하나 만으로 주저 없이 행동한 결과였다. 자신의 능력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걸 깨닫고, 하늘을 날아야 한다는 간절함,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믿음이 합쳐졌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키키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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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생각을 나눈다는 건 꽤 근사한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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