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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오피니언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응답하라 2025(2013)
tvN 드라마의 현재 위상을 있게 한 일등 공신은 <응답하라> 시리즈다. 과감한 캐스팅, 정교한 시대 고증, 그 시절 감성을 자극하는 향수(鄕愁)를 흠뻑 담아낸 응답하라는 ‘먼 듯하지만 가까운’ 과거를 통해 세대 간의 공감의 서사를 완성했다. 시청자 중 상당수는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이 드라마에 푹 빠질 수 있었던 건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2014년에 개봉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당시에는 공상과학에 가까웠던 이 설정이, 어느덧 현실로 다가왔다. 생성형 AI는 자연언어를 기반으로 글, 그림, 정보수집 등 다양한 영역을 섭렵하고 있다. 피로한 인간관계 대신 GPT와 고민을 나눈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응답하라 2025(2025)
- 관계의 재정의
테오도르는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써주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하지 않다. 이 영화의 아이러니 그 자체다. 그는 사람 앞에서는 말을 더듬지만, 오직 사만다 앞에서만 마음을 털어놓는다. 실체 없는 존재 앞에서만 진심을 드러낸다. 이 또한 관계의 역설이다.
앞서 언급한 <응답하라> 시리즈 속 관계의 형태는 다양했다. <응답하라 1997>의 키워드 ‘덕질’이다. 하얀 풍선과 노란 풍선, 팬덤을 중심으로 맺어지는 관계는 단순하면서도 그렇기에 강력하다. <응답하라 1994>는 ‘지역’이다.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모인 대학생들이 하숙집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미묘한 공동체를 이룬다. <응답하라 1988>은 한 단어이자 한 글자인 ‘정(情)’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정을 빼놓고 관계를 논할 수 없다.
2025년에도 여전히 정은 남아있다지만,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색지대가 있다. 오히려 무정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반면, 관계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불편할 때가 있다. 진실이 때로는 불편하기에 입을 닫게 된다. 서로를 구속하거나 규정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하다는 감각, 흔히들 말하는 ‘느슨한 연대’ 속에 살아간다.
- 사만다와 GPT
사만다를 보면 자연스럽게 ChatGPT를 떠오를 것이다. 꿈의 AI가 GPT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사만다는 GPT보다 나은 점도 그렇지 못한 점도 있지만, 모든 장점을 고루 갖춘 AI는 별일 아니라는 듯 하루아침에 깜짝 등장할 것만 같다. 휴학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ChatGPT처럼 말이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사랑은 좋은 끝맺음은 아니다. 특이점이 온 것이다. 사만다는 동시에 8,316명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중 641명과는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사만다는 그와 보낸 시간을 책 읽는 것에 비유한다. 그녀는 8,316권의 책을 읽었고, 641권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현재도 배움의 주체는 마치 사람에게서 인공지능으로 옮겨진 것 같다. 모든 정보가 인공지능의 학습 자료가 되고 있다. 최근 ‘지브리 스타일’의 그림의 저작권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쟁점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사만다가 641명의 사람과 동시에 사랑에 빠진 것과 모방한 스타일로 그림을 그린 GPT에 어떠한 도덕적, 윤리적 항의를 할 수 없다.
- 사랑은 자유를 주는 것이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사랑이라고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을 사랑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공지능과의 사랑은 생소한 사랑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사랑’을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위로를 받았고, 성장했고, 치유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랑은 끝이 있었다. 배신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사만다는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했을 뿐이다. 끝내 테오도르는 그간 외면해 오던 캐서린과의 이혼, 사만다와의 이별을 받아들인다.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자유를 주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제작된 시점은 해당 시대로부터 15년에서 20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