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상반기 ‘할머니’를 소재로 한 두 편의 뮤지컬이 공개되었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이 문예 학교에 다니는 할머니들의 삶을 그들이 쓴 시를 통해 조망했다면,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늙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70세 생일날, 생일 소원이 기억나지 않는 고춘자 앞에 춘자의 느슨해진 정신줄에서 빠져나온 영혼의 물고기가 나타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춘자와 사라진 춘자를 찾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되며 가족의 사랑과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다룬다.
평생 자식을 키우느라 자신을 헌신한 춘자는 생일 케이크 초를 불기 전 소원을 빌라는 가족들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내뱉을 뿐, 자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소원이 기억나지 않는 춘자는 슬퍼하며, 자신의 소원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만의 모험을 시작하는데, 사실, 이 순간은 춘자에게서 치매 증상이 나타날 때이다. 70살에서 0을 빼서 순식간에 7살이 된 춘자는 자신의 내면에서 빠져나온 영혼의 물고기를 마주한다. 젊어지고 싶어서 물고기의 코딱지도 먹었건만, 춘자는 실제로 어려진 것이 아니라, 어릴 적으로 잠시 돌아갔을 뿐이다. 다시 제정신이 들자, 춘자는 “늙어서 슬퍼. 죽는 게 무섭고, 애들이 고생할까 두려워”라고 말하며 속절없이 늙어버린 자신을 한탄한다. 그 앞에 한 때는 시계탑의 시곗바늘이었지만, 지금은 세월이 흘러 와이퍼가 된 이들이 나타난다. 어떤 모습이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며, 각기 다른 삶의 형태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춘자는 위로를 얻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김호근
자신의 잃어버린 소원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길거리를 정처 없이 떠도는 춘자를 찾기 위해 가족들은 고군분투한다. 가족들과 춘자의 길이 계속 엇갈리는 와중에, 춘자는 ‘은빛 가루 나라’를 알게 된다. 은빛 가루 나라로 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춘자는 이를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고 싶고, 그리운 이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꼭 가고 싶다고 말한다. 춘자는 일찍 떠난 남편, 불이 난 집에 있다가 죽은 딸 수정이, 엄마, 키우던 개 누렁이를 그리워한다. 수정이와 남편이 죽고 나서 춘자는 두 아들과 함께 삶을 등지려 했지만, 결국 살아내기로 마음먹고 지금까지 두 아들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결국 남은 두 아들이 마음에 걸리고, 자신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게 된다. 이에 춘자는 소원 나무를 찾아 소원을 빌기 위해, 환상 속 존재들이 알려준 장소를 찾아 헤맨다. 교회 십자가를 소원 나무로 착각하고, 불자인 그는 십자가 밑에서 절을 하며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달라 소망한다. 그의 소원은 두 아들을 지키다가 편안히 죽은 후,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김호근
이런 춘자의 모습은 지극히 가부장 사회 속에 형성되었던 신파적 감수성과 전개를 강하게 보여준다. 춘자는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한 모습이다. 치매 증상이 발생함으로써 일상생활과 단절된 어떤 환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춘자의 모습은, 본 작품의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앨리스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환상 속의 나라에 다녀옴으로써 근대적 사고관 속 형성된 자신의 근대 자아를 성찰하고 거기서부터 깨어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입장의 맥락에서 이 작품을 본다면,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환상의 모험에서 돌아온 춘자의 근원적인 모습은 그다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족에게 얽혀 살았던 그가, 자신의 잃어버린 소원을 찾아 모험을 떠났지만, 결국 그 소원 또한 가족과 얽힌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흔하면서도, 그럼에도 조금은 색다르게 풀어낸 본 작품에서 주목해 볼만한 지점은 적극적인 언어유희의 사용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춘자의 70살 생일을 맞아 방문한 고깃집 이름은 ‘소, 원하는 대로 다 돼지’(소원하는 대로 다 돼지), ‘1544-8282’(일어서서 빨리빨리) 등 쉴 새 없이 말장난이 등장한다. 한국어의 말맛을 살려, 다소 어둡고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에 웃음을 더해 분위기를 환기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김호근
어머니를 찾아 계속해서 헤매는 과정에서 장남 진수, 차남 성찬, 그리고 진수의 아내 다정은 지금까지 꼭꼭 숨겨왔던 감정을 드러낸다. 진수는 귀찮아서 집에 놓고 갔던 수정이 집에 불이 나서 죽게 된 일에 있어 자신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는 죄책감을 드러내고, 성찬은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방황하는 자신의 외면해 왔던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며느리인 다정은 이들 가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진수와 성찬이 용기를 내 꺼낸 이야기를 들으면 이전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들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의 소원을 찾은 춘자를 찾은 진수, 성찬, 다정은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한다. 춘자의 생일을 맞아 찾았던 고깃집 사장이 춘자의 떡볶이 맛을 잊지 못해, 떡볶이 밀키트 사업을 제안했던 것을 기반으로 춘자의 가족들은 떡볶이 밀키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이러한 사업적 성공을 통해 어린 시절 어머니가 떡볶이를 팔던 것이 창피하고 싫었던 진수와 성찬은, 이제는 떡볶이를 좋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과거의 아픔을 바탕 삼아 현재를 살아가게 된다.
사실, ‘춘자’는 극적인 사건 전개가 이루어져야 하는 뮤지컬의 특성을 생각해 보았을 때, 뮤지컬의 일반적인 주인공과는 다소 먼 인물이라 볼 수 있다. 더불어 길을 잃은 춘자 앞에 펼쳐지는 일련의 환상적인 사건들은 다소 맥락을 획득하지 못한 채, 단순 단열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조망되지 않았던 누구보다 평범한 인물을 무대 위 주인공으로 세워, 극적이지 않더라도, 우리 삶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