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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에게도 환상은 있다. 예컨대 매주 재미로 사던 복권이 당첨된다던가, 우연히 만난 훌륭한 조건의 이성과 연인으로 발전한다던가 하는(이성과 잠깐 눈이 마주친 사건 하나로 순식간에 결혼까지 달성해버리는 그런 종류의 우스운 환상도 흔하지 않던가.)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환상 속에서 우리는 쫓고 쫓기거나, 죽고 죽이거나, 존재할 수 없는 존재를 만나기도 한다.


이처럼 환상은 현실에서 실현되기 쉽지 않은 형태로 나타나지만, 역설적이게도 얼마간은 현실과 맞닿아 있다. 복권이라는 현실적 실체가 존재할 때 당첨이라는 환상적 사건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처럼 경직된 현실이 통제에서 벗어난 환상을 요청하고, 자유로운 환상은 현실의 조건을 빌려 전개된다. 환상은 비―현실이며, 동시에 반(半)―현실이다. 현실과 절반을 공유하면서,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나머지 절반을 향해 깊어지는 일. 환상의 기능에 대해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있다.


발터 벤야민의 『고독의 이야기들』(엘리, 2025)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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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이야기 하나. 평범한 회사원인 한 남자가 있다. 연말을 함께 보낼 사람조차 없어 외로웠던 그는 한적한 밤거리를 걷다가 한 수상쩍은 동네 술집에 들어간다. 술집이지만 도저히 술집처럼 보이지 않는, 그 수상한 장소에 들어선 남자를 열렬히 반기던 주인은 오늘의 특별 공연이 있다며 그를 안내한다. “묵은해를 돌아보는 여행!” 남자는 용기를 내 그 환상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묵은해를 돌아보는 여행이 시작됩니다. 열두 장의 장면이 지나가고, 각 장면에 짧은 설명이 쓰여 있고, 늙은 주인이 이 자리 저 자리 급하게 돌아다니면서 해설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장면들입니다.


그때 저 길로 가고 싶었는데

그때 저 편지를 보내고 싶었는데

그때 저 사람을 구해주고 싶었는데

그때 저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는데

그때 저 여자를 따라가고 싶었는데

 

- <두 번째 자아> 중에서

 

 

벌어질 수 있었으나 현실이 되지 못했던 일들이 있다. 열등감과 억압과 자기 비난으로 놓쳤던 삶의 여러 국면들. 그것들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서 남자는 “두 번째 자아”, 즉 또 다른 자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때 저” 일들을 그때의 자신은 하지 못했으나, 환상 속 또 다른(억압되기 이전의) 나의 도움을 통해서, 남자는 지난날을 후회하고 자신을 용서하며 눈을 뜰 수 있을 테다. 후회하고 용서한 후 다시 나아가는 일이 용기다. 남자는 외롭던 묵은해의 끝에서 환상적인 용기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 꿈속의 ‘나’는 노트르담 성당 맞은편에 있다. 그러나 정작 성당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나는 자신을 “압도하는 뭔가”를 느낀다. 나는 곧 깨닫는다. 그 강렬한 감각의 정체는 바로 “그리움”이라는 것. 꿈속의 나는 그 장소를 지금껏 간절히 그리워했다는 것. 이토록 압도적인 그리움의 감각이, 그 그리움의 대상 바로 앞에 있을 때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었던” 이유를 고민하던 나는 길고 난해한 답 하나를 내놓는다.

 

["답: 꿈에서 내가 그 대상에 너무 가까이 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때 처음으로 경험한 그리움, 아예 그리움의 대상 안으로 들어가 있던 나를 엄습했던 그 그리움은,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데서 비롯되어 대상을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그리움이 아니었다."]  - <너무나 가까운> 중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그리워할 때(혹은 간절히 욕망할 때), 그 무언가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절박함이 생겨난다. 너무 가까워진 절박함은 우리의 시야를 일그러뜨리는 위험한 감정이겠지만, 벤야민은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기꺼이 그 대상 안으로 아예 들어가는 일을 선택하리라는 것. 그리움의 대상과 하나가 되어 그리움 그 자체에 압도되는 일은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안전한 그리움의 거리에서 지켜보는 일보다 힘겨울 테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복된 그리움”이다. 그런 그리움만이 “상상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 사이의 문턱”을, 그러니까 상상으로만 남겨두고 체념하거나, 현실에서 소유하려는 집착의 문턱을 넘는다. 그리움은 환상을 자아내지만, 환상은 그리움과 우리를 밀착해서 압도적으로 만든다. 압도적이 된 그리움은 고유하고 특별한 “이름”이 붙어 “모든 형상의 피난처”로서 안락해진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러 작품에 깃든 벤야민의 사유는 훨씬 더 깊었겠지만, 심오하고 난해한 그 깊이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나는 일단 이렇게 말해두기로 한다. 현실과 환상의 사잇길에서 우리는 좌절했던 용기와 절박했던 그리움을 자주 만난다고. 아니, 그 용기와 그리움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현실에서 환상으로 자주 여행을 떠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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