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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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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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한 개인의 소회일 뿐임을 미리 밝힙니다.

 

 

나는 본래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특정 당을 지지하여 승리에 기뻐하고 패배에 좌절하는 식으로 즐긴 것은 아니다. 모래성 같은 권력을 두고 다투는 개싸움, 우리도 잘못이지만 너희가 더 책임이 크다느니 따위의 삿대질. 그 자체를 즐겼다. 오가는 고성을 들으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곤 했다.


가끔 타인에게 정치를 좋아한다고 소개할 때가 있다. 관심사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유튜브 알고리즘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는데 AI는 내가 야구와 정치 뉴스에 미쳐 사는 사람처럼 보이게 알고리즘을 세팅해 놓았다. 이럴 때, 보통 상대방은 내게 어느 정당을 지지하냐고 묻고 싶은 마음을 “신기하네요.”라는 짧은 문장으로 대신한다.


정치 관련 영상에서는 늘 나랏돈으로 싸움질이나 한다는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정치를 즐긴다. 정확히 말하면, 정치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생동감을 좋아한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응원하는 마음은 희미하다.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내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주장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생기를 잃어가는 중인 내게 좋은 자극제가 된다.


내가 뭉개진 눈오리를 보고 파안대소하는 싸이코로 보일 수도 있다. 누구는 나라의 운명이 달린 일이 장난이냐고 쏘아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악을 선택했을 뿐이다. 이 답도 없고, 명분도 없는 갈등을 눈에서 치우는 방식으로 외면하는 것보다 차라리 양비론을 펼치며 주시하는 것을 택했을 뿐이다.


사실, 양비론은 비겁한 사고방식이다. 나는 고고하게 상황을 관망하는 이성적인 존재고, 너희들은 이권 다툼에 매몰되어 흥분에 휩싸인 원숭이라고 생각하는 느낌이니까. 이는 2023년부터 다시 전개된, 중동의 전쟁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를 보면 확실히 체감될 것이다. 무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터져 죽든 말든, 그저 먼 나라 이야기라며 얼음 같은 논조를 자랑한다. 쾌적한 온도의 스튜디오에 양복을 입은 전문가들이 온갖 격식을 갖추며 문제점을 지적하는 꼴이 참 우습다고 느껴졌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정치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정말 부끄럽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신념을 정하기도 했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맞닿는 정당이 없는 건 아니기에 양당 중 그나마 나와 비슷한 결을 지닌 곳에 표를 던지곤 했다.


그러나 어딘가 찜찜한 느낌이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내가 A정당에 표를 던졌으니, 그럼 나는 A정당의 지지자가 되는 것인가? 나는 A정당의 일부분을 극렬하게 혐오하고 심지어 차라리 B정당이 낫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출구 조사에서 A정당을 찍었다고 답했다는 이유로 20대, 남성, A정당 지지자로 기록되어야 하는가?


솔직히, 정말 별것도 아닌 고민이다. 비밀투표가 원칙이 나라에서 내 실명과 투표한 정당이 미스터리 드라마 속 남은 수명 처럼 머리 위에 표시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무던하게 살면 되었는데 천성이 이런 탓인지 머릿속이 잡념으로 가득했다.


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쉬운 길을 택했다. 안일하고, 비겁한 마음이었다. 팔짱을 끼고 바른 말 들리는 소리를 해대며 종합격투기 경기를 관전하듯 정치를 대했다. 이런 행동의 기저에는 뻔뻔함이 깔려 있었다. ‘내가 정치인도 아니고, 내가 내는 세금으로 –조금이지만- 먹고 사는 사람들 품평한다는데 어쩔 거야.’라는 한심한 생각으로 자신을 합리화했다.


위 같은 생각은 첫 문장부터 틀려먹었다. 나는 정치인이 맞았다. 나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출근길 버스에서 마주치는 낯선 우주들도, 그리고 드디어 일반인 신분으로 돌아간 그 사람도 모두 정치인이다. 멍청하게도, 이 간단한 사실을 나는 8년간 잊고 지내다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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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정치가 사라졌다


 

계엄이 선포되었다. 이와 동시에 모든 정당 활동이 모두 금지되었다. 출판과 언론은 모두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전공의들은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될 예정이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굳이 논하지 않겠다. 모든 점이 문제였다고 20분 동안 조곤조곤 짚은 판결문이 역사에 남았으니까.


계엄 이후, 탄핵 선고까지 122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혹한이 지나가고 꽃이 피어나는 시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가장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시기 아니었냐고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법원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사상 초유의 사건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우리 주변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정치’ 활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음모론을 주창하고, 법원의 기물을 때려 부수고, 곳곳에서 자살 시도 소동이 벌어지고. 마치 집단 최면에 빠진 것 같았다. 애초부터 생각의 차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지만, 그 정도가 날로 심해져 갔다. 그들의 세력이 커질수록 마음 한편에 매단 추가 점점 무거워졌다. 탄핵이 기각되는, 미친 현실이 도래할 가능성 때문이 아니었다.


어쩌다 신봉하게 되었을까. 국가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한 죄인일 뿐인데. 의지할 곳이 얼마나 없기에 세상과 현실을 등지고, 군중 속에 뛰어들어 그들과 일체감을 느끼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한심하다고 여긴 마음이 동정심으로 바뀌었다. 안타까웠다. 정말로.


정치인들은 그저 이용하기에 바빴다. 그들을 위하는 말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말을 확성기에 소리치며 더욱 깊은 환각으로 내몰았다. 지지층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길거리에 나온 수많은 인격체를 이용하고 우롱했다.


122일 동안, 공론장이 완벽하게 자취를 감췄다. 사람들은 더 이상 토론을 듣지 않는다. 모든 메시지가 연설의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한 방송국에서는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사의 발언들을 짜깁기해 ‘OOO 사이다 발언 10분 하이라이트’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비이성과 야욕, 이권 다툼이 그 자리를 채웠다. 친구끼리 한바탕 싸우고 선생님한테 잘잘못을 가려달라며 교무실로 달려가는 아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다. 아이는 귀엽기라도 하지, 다 큰 어른이 그러니 정말 징그러울 따름이었다.


탄핵 선고는 생각보다 늦어졌다. 이전 선고보다 이유가 명확해 속전속결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시원한 소식이 좀체 들려오지 않았다. 답답했다. 처음으로 뉴스를 보며 가슴을 치고 싶었다. 슬픔, 기쁨, 분노. 이런 종류의 감정을 느낀 적은 많지만, 짜증이 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선고가 늦어질수록, 내 눈이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막장으로 치달은 느낌이었다. 물 떠 놓고 기도하는 수준의 토테미즘이 현 시대의 정치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즐겼던 정치는 어디로 갔는가. 각자가 지닌 세계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창조되는 산물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이런 걱정이 처음으로 머리를 스칠 때 즈음, 탄핵 선고일이 잡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동안 골머리를 앓았던 것이 무색하게. 탄핵은 일상처럼 우리에게 안겨 왔다.


아직은 지켜봐야겠지만, 조금은 정치가 우리에게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정말 환영하는 마음으로, 나는 즐거운 고민을 해본다. 그러니 나의 위치가 명확해졌다. 소속된 정당은 없지만, 정치인은 맞다. 이제 관망해서는 안 된다. 한 번 더 당하면 세 번째라는 생각을 하니, 실소가 터져 나온다. 맞다. 마린 벙커링을 세 번 당해도 역사에 오르는데, 탄핵 세 번은 아마 세계사에 오를 일일 것이다.


나는 조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돌아온 정치를 반긴다.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돌아온 탕아를 반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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