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의 ‘낭만젊음사랑’이라는 노래가 있다. “우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젊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사랑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 길을 잃어도 우린 서로 꼭 붙잡고 있어. 나를 안아줘 따스한 아침 햇살과 우리 둘의 사랑은 영원할 거야”라는 노랫말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노래다.
평소 즐겨 듣던 인디 음악인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노래가 떠올랐다. 저자에게 낭만, 젊음, 사랑은 공연 그 자체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에 또래보다 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저자의 말은 매우 객관적인 평가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19년 차 공연 기획자다. ‘무대 뒤에 사는 사람’이라는 에세이 제목처럼 관객이 보지 못하는 무대 뒤에서 공연의 시작을 만들어내고 연출가, 배우 등 여러 예술가를 이끄는 사람이다. 오늘날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콘텐츠가 등장하고, 그중 몇 개는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기도 한다.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연출가와 예술가에 대해 집중한다. 무슨 의도였을까. 어떤 감정이었을까. 콘텐츠 비하인드, 소감 등이 다양하게 오가지만 콘텐츠가 처음 시작되는 이야기는 잘 없다. 이성모 작가는 이번 책을 통해 공연이 탄생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본인의 시행착오를 통해 가감없이 보여준다.
말하자면 공연 기획자는 영화 어벤져스의 닉 퓨리 국장 같은 사람이다. 사회 속 이상 현상을 ‘분석’하며 영웅들이 뭉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명씩 찾아가 어벤져스를 ‘결성’한다. 그들을 ‘서포트’하고, 때로는 어벤져스로부터 배우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을 구해 사람들에게 안전한 ‘세상의 가치’를 알려준다. 세월호 사건으로 언론의 역할에 대해 고찰하면서, 보도지침 폭로 사건을 주제로 공연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사건 당사자였던 기자와 변호사를 찾아가 허락을 구하고, 각색부터 공연을 함께 완성할 팀원들을 모으고, 관객들에게 언론 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관객들은 공연에 감명을 받지만 공연 기획자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렇게 보니 공연 기획자의 역할이 영웅적 서사와 비슷해 보인다.
체육을 그만두고 진로에 대해 방황하던 당시, 우연히 본 룰라 콘서트에서 ‘앞으로 이런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한 운명적 시작도 물론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팀워크’의 막강함이었다. 저자는 무대 디자이너, 조명 감독 등 무대 뒤에서 함께 공연을 완성하는 여러 직업을 소개하고 동료들과 함께 겪은 에피소드들을 소개한다. 기획자가 포기하고 싶을 때가 오면 동료들이 ‘그래도 열심히 해보자’라고 격려한다. 가끔 공연을 설득하는 게 막막해도 괜찮다. 옆에 나와 함께 설득에 동참할 든든한 동료가 있으니까.
저자는 공연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함께 하는 예술가들이 지치지 않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대학생 때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던 내가 떠올랐다. 제작할 당시에는 팀워크의 중요성에 실감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결과물에만 집중하고 과정은 잊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밀고 나가는 용기, 팀원들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 멋진 공연을 완성해야 한다는 사명감 등. 잊고 있었던 가치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지점에서 역시 공연 기획자는 낭만적인 직업 같다.
저자가 앞으로도 낭만이라는 배를 타고 오래오래 항해하며 세상의 다양한 가치를 전하는 공연을 만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