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가 싫어하는 일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싫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우선 국어사전에서 그 정의를 살펴보았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싫다’를 “마음에 들지 아니하다”라고 정의합니다. 이에 유의어로는 ‘밉다’, ‘마땅찮다’, ‘불합하다’, ‘지긋지긋하다’, ‘역겹다’ 등이 있습니다. 이들 유의어를 종합해보면 ‘싫다’는 단순한 부정의 감정이 아니라, 어떤 모양이나 행동이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아 큰 괴로움을 주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좋다’나 ‘애정하다’와 같은 반의어는 시간을 들여 자꾸 보고 싶어지거나 기꺼이 하고 싶은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싫다’의 의미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마음에 들지 않아, 어떤 행동이나 대상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상태”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게 ‘싫다’의 기준이 되는 대상은 무엇일까요? 사람, 일, 물건, 혹은 어떤 모양까지—저는 오늘 이러한 ‘싫어함’을 통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우선, 저는 폭력적인 영화를 싫어합니다. 사람을 한계까지 몰아넣고, 실험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시험하는 영화들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선호합니다. 예를 들어, 조폭 영화나 극한 상황에서 인간성을 탐구하려는 실험적 시도들이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물론 이러한 영화들이 인간의 심리를 깊이 파고들고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 모습을 조명하려는 의도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영화들은 종종 폭력을 미화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을 과도하게 강조하여, 관객에게 감각적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느낌을 줍니다.
저는 영화를 통해 새로운 경험과 감정의 확장을 기대합니다. 감동과 위로, 그리고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제게는 큰 힘이 됩니다. 반면, 잔인한 장면과 극도의 폭력성이 중심이 되는 영화는 오히려 감정을 소모시키고 때로는 인간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는 아마도 제가 인간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고,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중요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대체로 사람들의 관계와 소소한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따뜻한 감정을 섬세하게 다룹니다. 예를 들어, 제 인생 영화로 꼽는 '김씨표류기'에서는 짜장면 한 그릇을 요리해 먹는 일상이 주는 소박하지만 깊은 기쁨을 통해,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저에게 위로와 힘을 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은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제가 싫어하는 것들은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과 정반대되는 요소들입니다. 폭력보다 따뜻한 인간 관계를, 강제적인 경쟁보다는 협력과 연대를, 인간을 단순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이야기를 선호합니다. 이런 점에서 ‘싫어함’을 들여다보는 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저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내 삶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소중한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