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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지킬앤하이드 공식포스터_(주)글림아티스트, (주)글림컴퍼니 제공.png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넘버를 하나 뽑으라고 하면 아마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거의 2~3년에 한 번씩 재연되고 있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올해 20주년을 맞았고, 여전히 많은 관객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시점, 동일하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원작으로 하는 연극 <지킬앤하이드>의 등장은 지금까지 대중에게 각인된 ‘지킬앤하이드’와 어떤 차이점과 의미를 갖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도전적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퍼포머 역에 최정원을 캐스팅함으로써 젠더 크로스(gender-cross)를 시도했다.


이 소설은 이미 출간 직후부터 수많은 공연으로 상연되었고, 영화의 경우 120편이 넘게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사례 두 개를 언급해 본다면, 출간된 지 바로 그다음 해인 1887년 연극에서 1인 연극 형태로 배우 리처드 맨스필드(1856-1907)가 지킬 박자이자 하이드를 연기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매춘부들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가 악명을 떨치고 있었던 만큼, 관객의 큰 이목을 끌었다. 2014년에는 일본 동경예술극장에서 코미디 극작가 미타니 코키가 쓴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가 초연되었고, 이 작품은 2015년 한국에서 상연되었다. 이 작품은 사실 하이드가 실험이 실패한 지킬 박사가 신약 발표회를 위해 섭외한 무명 배우이며, 지킬의 약혼녀 이브 댄버스가 하이드에게 반하게 되면서, 자신도 야성적인 하이디로 변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본 공연에서 극작가 게리 맥네어(Gary McNair)는 원작을 인간 내면의 비틀림, 이중적 정체성에 대해 해학적 해석과 함께 방대하고 복잡하게 얽힌 고전을 한 명의 서술자가 이끌어가는 현대극으로 재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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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글림아티스트)

 

 

어터슨 변호사의 관점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원작처럼, 연극 <지킬앤하이드> 또한 퍼포머는 혼자 무대 위에 서고, 배역의 이름은 ‘퍼포머(performer)’이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은 어터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원작에서 어터슨에 관한 설명이 자세하게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연극에서 어터슨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그저 퍼포머이자 어터슨이 “좋은 사람, 전 그럼 사람 아닙니다. 그렇지만 전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에요.”이라고 말하며 극의 포문을 연다. 무대 위의 주요 기제는 ‘그로테스크한’, ‘그로테스크한 문’이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온전히 프로시니엄 극이 아니다. 퍼포머는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중에도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말을 걸어, 마치 어터슨과 같은 시공간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더불어 퍼포머와 퍼포머를 연기하는 배우 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보이는 것처럼 전 잘 관리했고, 앞으로도 잘 관리할 거고, 제 능력에 걸맞은 옷을 입고 다닙니다” 등과 같은 중의적 대사가 사용됨으로써 발화의 대상자가 누구인지 관객은 헷갈리게 된다. 더불어 퍼포머를 맡은 배우 최정원은 “네가 하이드면, 나는 가이드” 등과 같은 유머를 곳곳에 삽입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인, 뮤지컬 <맘마미아>와 <시카고>의 시그니처 제스처를 선보이고, 대사에서는 ‘24601’(뮤지컬 <레 미제라블>), ‘쿡카운티 교도소’(뮤지컬 <시카고>) 등을 삽입함으로써 ‘배우 최정원’의 정체성을 동시에 부각한다.


이런 연출은 어터슨이 지킬의 비밀을 추적하고, 하이드의 정체를 밝혀가는 과정에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사실 관객은 이미 지킬이 하이드인 것을 알고 있고,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또한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관객에게 말 거는 어터슨, 그리고 어터슨인 듯, 어터슨이 아닌 듯한 극 전개에 관객은 어터슨과 함께 미지의 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극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퍼포머가 말해주는 지킬과 하이드의 이분법은 뚜렷하지 않다. 지킬은 선하거나, 착실한 사람이 아니다. 어린 시절 망나니 같았던 그는 자라면서 자신의 본능을 억눌렀고, 하이드는 지킬과 완전히 대조적인 존재인 것이 아니라, 지킬의 억눌렸던 본능적인, 진정한 내면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원작과 달리 ‘하이드’는 단순히 지킬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내면의 깊이 숨겨져 있던 본능, 어쩌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악함인 ‘하이드’는 어터슨에게도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몇 년이나 하이드를 잡을 수 있었지만 잡지 않은 것이, 바로 어터슨의 하이드이다. 이것이 처음 어터슨이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 것과 연결된다.


지킬과 어터슨 이외에도, 인간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는 성악설과 성선설이 끊임없이 대립했으며, 이 사이를 조정하는 성무선악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인간은 자기 파괴적 욕구가 있는 동시에 자기 보존의 욕망을 가지며, 사회적 평판을 위해 페르소나를 형성함과 동시에 자신의 본능적인 모습을 언젠가는 감추지 못하고 펼치게 된다. 이런 상충하는 가치는 이 작품에서 주요 장치가 되는 그로테스크한 문과 연결된다. 하이드의 첫 범죄가 일어나고, 하이드가 나타나는 장소, 어터슨이 두려워하는 그곳, 그로테스크한 문의 정체는 오랜 시간 밝혀지지 않았다가, 결국 어터슨은 이 문이 자신의 친구 지킬의 집과 연결된 문임을 깨닫는다. 마치 우리 모두가 자신의 진짜 본능을 꼭꼭 담아놓은 닫아 놓은 문 같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기괴하고 무서운 것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 도덕성, 육체성에 대한 불안과 혐오, 그리고 경계의 붕괴 등 이질적인 모든 것들이 섞여 나타나는 그로테스크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하이드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극 중 내내 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강력해서 머릿속에서 쉽게 떨쳐낼 수 없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넘버들이 자동 재생되는 경험을 한다. 1막 마지막 넘버 ‘Alive 2’가 끊임없이 재생되며, 사람을 죽이는 하이드의 모습과, 자신의 본능을 한껏 표출하는 그가 떠오른다. 그런데, 이때 과연 나는 여기서 환희를 느끼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나 또한 이런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문이 든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연극 <지킬앤하이드>는 어터슨을 통해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하이드는 무엇’인지 물으며, 나는 나의 하이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성찰하게 하고, 지킬과 하이드에 대해 지금까지 고정되어 있던 관념에 새로운 충격을 선사한다.


퍼포머 역에 유일한 여자인 최정원은 이 작품에서 전혀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아니,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문제다. 보통 크로스젠더를 하게 되면, 배우의 신체와 캐릭터의 신체 간 차이로 인해 그 속에서 젠더적 의미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어터슨’이라는 이름을 제외하고는, 최정원은 남자 특유의 정형화된 행동을 하지도, 그렇다고 여성적인 몸짓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무대 위 퍼포머로만 존재할 뿐이다. 모든 남자 배우들이 꿈꾸는 역할인 ‘지킬’을 여자 배우인 최정원이 연기하는 순간 일순 색다른 느낌이 다가오기도 하지만, 아쉽게도 크로스 젠더는 이 작품에 무언가를 더해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최정원의 지킬과 하이드 연기는, 최근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가 자신의 작품을 ‘다시 쓰기’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성별을 전환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는 너무나도 우리에게 익숙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또한 이렇게 젠더를 바꾸어 공연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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