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은 귀하고 아름답지만, 도리어 나의 시야를 차단하기도 한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개인적으로 조금 힘든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낸 후 친구가 날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
우린 너무 진지해. 좀 덜 진지해도 되는데.
당시에는 좀 갸우뚱했다. 내가 진지한 사람인가?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난 친구들을 만나도 농담만 일삼는 사람인데. 우스개로 투덜대고 삶을 비관하다가 제 불평에 키득거리며 웃어버리는 사람인데. 그래. 설령 그렇다 쳐도.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태도는 그다지 특별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애초에 세상에 자신의 삶을 가볍게 대하는 사람이 그리 많진 않아 보였다. 다들 열심히 사니까.
그런데 첫 에세이를 쓰기 위해 각종 에세이와 작법서를 손에 든 나를 보며, 나는 친구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꼭 써보고 싶었던 에세이를 드디어 쓸 수 있게 되자 상당한 욕심과 부담이 동시에 올라왔고, 그 욕심과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한 게 바로 작법서였다.
잘 쓰고 싶다! 대충 하고 싶지 않다! 자기연민으로 가득 찬 에세이를 쓰고 싶지 않다! 구조는 깔끔하고, 문장은 유려하고, 단어의 표현은 정확하며, 중간중간 유머도 곁들인, 그러다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통찰로 마무리하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돌이켜보면 모든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해 왔다. ‘잘한다’는 게 정확히 뭔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말. ‘잘한다’는 게 뭐길래. 그런 기본적인 개념을 정의하는 일을 선행하지 않고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소위 말하면 ‘무식하게’ 살아온 것 같았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는 점이다. 분명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었다. 사랑도 결핍도 성격도 먹고 마시는 일상도 전부 글감으로 느껴졌던 시간이 있었는데. 이런 경험을 이렇게 풀어내면 어떨까? 이런 이야기를 저런 이야기와 결합하면 어떨까? 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설레었던 시간 말이다.
그제야 친구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아마도 친구는 나의 아주 깊은 어딘가에 있는 진지함을 먼저 발견했으랴. 농담과 우스갯소리로 덮어놓은 삶을 ‘잘’ 살아가고 싶어 하는, 그러나 아직은 방향성이 정리되지 않은 그 원초적인 열정과 본심을 나도 모르는 새에 먼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지금이 그 ‘진지함’을 촉발한 순간이구나. 그래, 열심히 하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작법서가 아닌 흰 노트가 먼저 필요했다. 본질은 ‘하고 싶은 말’이니까.
베개 솜도 그렇다. 시도 때도 없이 채우기만 하면 결국 베갯잇이 터지고 만다. 그렇게 나는 손에 꼭 쥐고 있던 글자들을 잠시 내려놨다. 작법서의 핵심 내용은 노트에 옮겨 적고 책상에 고이 모셔 두었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고 있던 인기 에세이도 창을 닫았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멍- 한 시간을 보냈다.
조금씩 머릿속에 공간이 생겼다. 빠르게 굴러가던 내 일상이 아주 잠시 멈춘 것 같았다. 내가 나를 머리 꼭대기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보였다. 글쓰기에 힘을 꽉 주고 있는 나, 이력서 쓰기에도, 자격증 공부에도, 운동에도. 머릿속의 공간이 조금씩 커지면서,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 조금씩 명확해졌다.
본질로 돌아가자.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나’에 관한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니 나는 항상 이런 식으로 살아왔다. 조금씩 내가 첫 에세이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할지 선명해졌다. 무식하고 진지한 나에 관한 이야기. 할 말이 명료해지니 그다음은 쉬웠다. 노트북 메모장에 에피소드를 적고 개요를 짰다. 그제야 첫 문장을 쓸 수 있었다.
장담컨대 작년의 나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작년의 나는 단 하루라도 쉬면 무언가를 놓치는 것 같아 초조했다. 숨구멍을 만들고, 멈추고, 공간을 비우고 힘을 빼는 것. 그 잠시의 휴식을 가지지 못해 결국 몸을 해치던 나였다.
누군가는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뭐 대단한 걸 한다고 쉬지도 않냐, 유난이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힘을 주는 것보다 힘을 빼는 걸 더 어려워했다. 내가 만들어놓은 레이스에서 결승선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 자신조차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진지한 열정이 가득하지만 정작 자신을 돌보는 데 서툰 사람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진지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진지한 마음과 태도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는 꽉 쥐었던 힘을 스르르 풀어야 비로소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깨끗한 종이에 이야기를 적어가며, ‘진지함’에 관해 생각했다. 영어 단어로 치면 ‘serious’일까? 어쩌면 ‘심각한’, ‘무거운’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난 지나치게 잘 해내고 싶어서 스스로 심각해지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산다는 건 대충 사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고 관조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light’라기 보다 ‘relaxable’한 삶. 가볍게 생각한다는 건 결국 내가 스스로 숨 쉴 틈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이다. 속도 조절이 가능한 삶. 그런 삶을 살고 싶다.
1월은 새해의 첫 달이고, 2월은 연휴와 행사로 분주한 달. 그러니 3월부터가 진짜 새해의 시작이라고 믿으며, 힘을 꽉 주고 뭔가에 매달리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 순간만이라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기를 바란다. 진지하고 열정적인 달리기와 가벼운 숨 고르기, 이 둘이 함께할 때 우리는 더 단단하고 길게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