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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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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어릴 적의 나는 완벽주의자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도 받아쓰기 시험에서 하나라도 틀린 날이면 너무나 울적해 직접 오답 노트를 작성할 정도였다. 공부 머리가 부족했는지, 혹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한 탓인지 성장하면서 틀리는 문제도 점점 많아졌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풀지 못하는 문제를 보면 이렇게 생각했다. ‘푸는 아이가 따로 있겠지.’, ‘이건 일부러 오래 붙잡으라고 만든 문제인 거야.’.


한편으로는 올라오는 속마음을 꾹 누르기에 바빴다. 나의 속마음을 스스로에게 들키는 게 무서웠던 것 같다. 그런 아우성 속에서 하나의 글을 발견했다. 뉴스레터를 구독할 사람을 모집하는 인스타그램 피드였다. 어떤 뉴스레터인지도 잘 모르는 채, 나는 집 주소를 적고 우편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게 올해 2월, <월간 소전서림>과의 첫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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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사람’은 소전문화재단의 독서 장려 캠페인으로 매달 두 권씩 고전과 신간 작품을 소개하며 함께 읽는 모임이다. 내가 받게 된 뉴스레터는 ‘읽는사람’에서 1월에 선정된 두 권의 고전과 신간 작품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모임 속 사람들의 서평과 평점을 볼 수 있는 열여섯 장의 귀여운 책이었다. 넉넉히 삼십 분 정도, 좋아하는 음료를 곁에 두고 보면 좋아 보였다.

 

눈여겨본 것은 ‘고전 지수’라는 귀여운 오각형 그래프였다. 여기엔 ‘주제의 보편성’과 ‘해석의 다양성’ 등 다섯 가지의 평가 요소를 두고 선발대와 독서단의 평점 및 전체 평점을 5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서평은 실명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마뱀바위’나 ‘밝은밤달’ 등 회원이 원하는 별명으로 적혀 있어 더욱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본 후 나는 며칠 전 친구에게 받은 홍차를 찻잔에 내렸다.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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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주는 힘은 알고 있었지만, ‘짧은 글이 주는 힘’ 역시 막강하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단 세 문장으로 깊이 있는 공감이 이어질 수 있다니. 긴 글이 무조건 좋은 글이 아닌 것처럼, 짧다고 해서 좋지 않은 글도 아니다. 여기에 담긴 단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당당히 내비친 좋은 글이었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이라는 도서의 서평에서는 이러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설 속 부조리에는 저항하고 현실의 부조리에는 수긍하는 모순된 우리.’ 책을 편 가장 첫 페이지에 이러한 서평이 수록되어 있다니. 단순한 도서 후기가 아닌 덕분에 충분히 스스로 고민하며 읽을 수 있었다.


‘난해함으로 시작해 병든 사회의 모습을 지나 하나의 음악으로 끝나리.’나, ‘이토록 매력적인 불친절함.’ 모두 같은 도서의 서평이다. 같은 도서라 해서 다 같은 느낌을 받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뉘앙스가 다르고 느낀 점도 다르며, 읽은 후 뻗어가는 생각의 가지도 천차만별이다. 내가 가장 충격 받았던 건 고전 파트 속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담긴 서평이었다.

 

이 도서는 문학을 깊이 파고들지 않아도 제목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유명한 고전이다. 작가의 수려한 문장과 감각적인 풍경 묘사가 특히 아름답다. 그런데 한 독서단이 이런 서평을 남겼다. ‘깔끔하고 시원한 결말이 아니라 해석이 어려웠다.’ 읽은 지 일주일은 훨씬 지났는데도, 이 글자들이 가슴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 어려운 걸 어렵다고 하지 못하게 됐을까?”


삼십 분의 문장들과 함께, 나는 어려운 것에 대해 생각하며 ‘나’를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레 겁먹고 어렵다면서 학교 공부나 대인관계 문제를 기피한 적 있지 않은가? 혹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 이해한 척 상황을 지나친 적은?

 

나의 어려움을 인정하는 것은 전혀 부끄럽지 않으며 좋은 용기다. 마음껏 어려워하자. 그리고 주변과 실컷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좋다.

 

그만큼 나를 소중히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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