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이 차가울 땐 빈 공간에 오세요."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434, 이병률 시인의 시집 『눈사람 여관』을 읽은 뒤의 생각이다.
우린 얼마나 꽉 찬 인생을 살고자 하는 걸까. 홀로서기의 외로움을 알면서도 홀로 설 수밖에 없는 아이와 어른들에게, 함께 하는 공간은 매우 소중하다. 어른이 되며 더욱 줄어드는 여가 시간으로 인해 밤 늦게 침대에 누워 보상 심리를 채우는 일도 적지 않다. 피로에 못 이겨 잠에 들더라도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타인의 하루를 영상으로 보는 것이 나의 삶은 아니기에. 이런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기 싫다면, 한두 편의 시를 보는 것은 어떨까.
왜 시를 보며, 사랑하는가? 미디어에 비해 느릿하게 읽히는 글자에 담긴 의미를 전부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시인이 행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독자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불면을 달고 있는 밤중과 새벽, 어스름한 밤공기에 겨우 눈을 붙이며 시간을 헤아린 적이 많다. 그럴 때면 침대 옆의 무드등을 켜고 시집을 읽었다. 이들은 내가 책을 펴는 시간과 공간이 어떻든 따스하게 반겨준다. 그렇기에 이 시집을 너무나 소개하고 싶었다. 특히 이 두 편을.
오늘도 잠에 들지 못하는 당신에게.
걱정하지 말아라, 당신의 짙은 그림자를 알아주는 가로등이 있으니.
2. [유약한 건, 더욱 살아가기 위한 것]
종이를 깔고 잤다누우면 얼마나 뒤척이는지 알기 위하여나는 처음의 맨 처음인 적 있었나그 오래전 옛날인 적도 없었다나무 밑에 서 있어보았다다음 생은 나무로 살 수 있을까 싶어이 별에서의 얼룩들은 알은체하지 않기로 했고저 별들은 추워지면 쓰려고 한다그 언젠가 이 세상에 돌아왔을 적에그 언제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멀리 달아났을 때이 땅의 젖꼭지를 꼭 쥐고 잠들었다얼마나 놓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이병률, 「가늠」 전문
누우면 얼마나 뒤척이는지 알기 위하여 종이를 깔고 자는 일은 단순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가 잘 때의 모습을 직접 관찰할 수 없다. 당장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삶은 참 바쁘면서도 버거워 보인다. 눕는다는 건 피로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다.
무방비한 상태에서의 생명은 원초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당장 이전의 한 일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혹은 당장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처음의 맨 처음인 적 있었나
독자가 생각할 게 많아지며 시인의 간결한 제목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처음의 맨 처음이라는 게 있을까. 원하던 꿈이나 미래의 완성을 열망하지만 정작 그 시작을 허투루 여긴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바로 다음 행에서 시인은 독자의 깊은 생각을 반전시킨다.
그 오래전 옛날인 적도 없었다
오랫동안 갈망했다 생각한다는 말의 ‘오랫동안’에 대해 사고하게 한다. 무언가를 열심히 갈망하면 이전의 열정은 모두 현재로 겹쳐지는 듯하다. 평행하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시인의 감정에 따라 시간이 흐른다.
이렇듯 독자의 시선을 하나씩 끊어 생각하게 하는 매력은 시를 한층 더 장면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다음 연의 나무 밑에 서 있는 화자는 바람 없이 가만히 서 있을 것만 같고, 이 땅을 꼭 쥐고 잠들었을 적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을 것만 같다. 화자의 행동이 연속적이지 않은 덕분에 독자는 시 속 어느 장소든 유연하게 다가갈 수 있다.
그 덕분인가, 시인은 독자의 외로움을 아는 것 같다. 누울 때, 가만히 생각하며 휴식을 취할 때, 꿈을 꾸거나 꿈에서 멀리 떨어질 때.
이 땅의 젖꼭지를 꼭 쥐고 잠들었다
얼마나 놓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유약하더라도 내일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드러난다. 딛고 있는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로 인지할 수 있는데, 이 현실의 끄트머리를 희망이란 이름으로 잡는 듯하다. 놓지 않을 수 있는지를 가늠한다는 것은 얼마나 잡고 싶은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원하는 미래를 생각하는 수많은 현대인의 마음을 빗대어볼 수 있다.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자. 그것으로 오늘의 삶은 충분하다.
3. [둥근 세상에서 우리 언젠가, 마주칩시다]
당신은 시를 모른다고 했다나는 괜찮다며 알아야 할 건 시 하나가 아니라 했다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계절의 문제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바람과 나무의 문제로 나는 넘기려 했다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당신이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내 이야기를 하는 듯하더니이내 나를 험담하고 있었다이것은 세상의 양면이 아니라 세상의 둥근 면간밤에 시를 석 줄 쓰고 잤다가아침에 시 넉 줄 지우고 외출하는 일과도 맞먹는일이라며 넘기려 했다당신보다 십 분쯤 늦게 도착하려고 멈춘 공원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뜨겁게 토하고그도 모자라 손톱 발톱을 깎는 어린 운동선수들이나무 밑에 모여 앉아 있는 저녁 공원저 청춘의 미래에는 무슨 일이 생기나시를 모른다 하더니 나조차 모르는 당신을 앞에 두고많은 막걸리를 마시었다내 얼굴을 가리기엔 막걸리 잔이 좋아서였다넘기려 했으나 쓴 찻물처럼 넘겨지지 않는 시간을 넘기고혼자서 다시 찾은 밤 공원손톱이 어질러진 탁자 위에 차려놓은이 행성의 냄새- 이병률, 「시의 지도」 전문
시를 안다는 건 무엇일까. 잘 모르는 것. 그게 시라고 줄곧 생각했다.
시인이 세상을 몇 빌려 언어로 읊으면, 듣고 보는 이가 저마다 생각하는 것이 시의 완성이라 생각한다. 이전에 읽었던 시집이더라도 읽는 시간대와 공간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진다.
낮에 이 시를 보았을 땐, 세상을 보고 나를 느끼는 것으로 시를 충분히 안다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자정이 된 지금은 모른다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는 의미다.
시 속 화자는 당신과 물리적으로 점점 멀어진다. 그럼에도 2연에선 세상이 둥글다고 표현한다. 아무리 멀어져도 뒷걸음질치다 못해 결국 등을 맞대며 만날 것이라는 아이러니가 보인다.
4연의 화자는 어차피 얼굴을 가릴 수 없는 크기의 막걸리 잔이라면, 감추지 못하는 상황에 부끄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잔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며 상황을 선택한다. 하지만 마지막 연에선 공원을 다시 찾아와 행성의 냄새를 맡는다. 둥근 세상, 이곳에 있었던 과거의 일을 최대한 흡수하려는 듯.
우리는 앞을 모르는 채 살아가고, 살아오며 느낀 감정과 장면에 점수를 매겨 나만의 모토를 앞세운다. 감정 몰래 서두르다 지치지 말자. 과거가 떠오르면 열렬히 생각하고 마음을 써도 괜찮다. 잊어도, 잊지 않아도 괜찮다. 생각 이후의 마음을 오롯이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