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건 나의 아주 오랜 취미이자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하지만 영화를 보는 것이 재미있지 않았다면 자주 보지 않았을 터. 어릴 때부터 시험이 끝났을 때 혹은 할 일이 없거나 일상이 무료하면 언제나 가까운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 정보를 확인하고 영화를 보곤 했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취미지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취미는 아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할 수 있겠지만 이 둘의 차이는 적어도 나에게는 확연히 다르다. OTT가 발달하며 영화를 관람하는 주변의 방식도 나뉘었다. 집에서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보겠다는 사람이 늘어나며 영화관을 찾는 이가 예전에 비해서는 많지 않다고 느낀다. 내 주변부터도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OTT를 통해 그 영화를 보았다는 말을 더 자주 듣는다.
나에게 영화는 단순히 몇백 분의 영상물을 보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란, 시간을 사는 것과도 같다. 영화를 볼 때 집에서 가까운 복합문화공간을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영화 상영 시간에 딱 맞춰가지 않는다. 보통은 두 시간 전부터 가있는다. 갈 때는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간다. 산책하는 것을 좋아할뿐더러 그곳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마음에 들어서다. 탁 트인 넓은 길과 적당히 있는 사람들, 화려한 도시의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간 만큼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까지도 여유롭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여러 매장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서점에 가서 책도 본다. 할 일이 있는 경우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해야 할 것들을 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광고이다. 대부분의 영화관은 영화 시작 전 약 10분 동안 광고가 있는데 나는 이 시간을 아주 좋아한다. 광고를 보는 것도 영화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때의 광고는 상업 광고뿐만 아니라 곧 개봉할 영화의 예고편도 함께 나온다. 자연스레 계봉예정영화와 재미있는 광고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관에서 광고를 보며 다음에 볼 영화를 정하기도 하고 흥미로운 광고를 발견하고 찾아본 적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배우 수지가 광고하는 헤이딜러의 경우, 영화관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단편영화 같은 느낌이 들어 끝나고 검색해보기도 했었다.
내가 영화와 함께하는 시간을 아끼는 것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너무 기뻤다. 좋아하는 영화의 분야는 다를 수 있어도 영화를 보는 것에 진심이라는 것은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4개월 동안 함께 영화를 보며 다양한 영화와 영화관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대중적인 영화관을 많이 갔었는데 좋아하는 영화관이 하나씩 있는 분들을 보며 영화를 보는 장소도 영화를 선택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을 넘어서 하나의 영화를 지정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 영화 추천을 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영화를 감상한 후 단순히 재미있다는 평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알아볼 수 있어서 매우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특히 이번 활동을 하며 좋은 영화도 많이 알게 되었다. 함께 본 영화 중 ‘서브스턴스’와 ‘더 폴: 디렉터스 컷’의 경우 솔직히 고백하자면 상영하는지도 잘 몰랐다. 상영관이나 상영시간이 적기도 하고 아예 상영하지 않는 곳도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대중적인 영화와 인기 있는 영화 위주로 본 나에게 이런 영화를 본 것은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뜻깊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봤는데 담고 있는 메시지나 곳곳에 숨어 있는 의미들이 있는 영화여서 긴 여운이 남기도 했다. 간만에 좋은 영화를 추천받아서 정말 고마웠다.
이렇게 영화를 위한 4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다 보니 그 시간이 짧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겨울을 전부 보냈다고 생각하니 꽤 긴 시간을 함께한 것 같다. 2월을 끝으로 모임을 마무리하며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트인사이트 모임은 특이한 부분이 있다. 모임 분야를 선택해 신청하면 저절로 팀이 정해진다. 구성원은 내 뜻대로 정할 수도 없고 누구와 함께할지 알 수도 없다. 팀이 선정되어 단톡방에 초대가 되어도 만나기 전까지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오직 그들이 그동안 쓴 글이 전부다. 글을 통해 사람의 가치관과 내면을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글만으로 한 사람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사는 곳도, 활동 반경도, 하는 일도 전부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모임을 이어가는 것은 이렇게 보니 참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흘러가며 아무리 거리가 가까운 동네 친구라도 일 년에 한두 번 시간 내기조차 쉽지 않아서 약속을 잡았다가 취소한 적도 참 빈번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것도 서로 사정을 이해하다 보니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 정보도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 배려하고 맞춰가면서 4개월의 모임을 잘 마무리했다. 일상에서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기거나 사정이 있어도 한분 한분 전부 최선을 다해 협조해 주었다. 바쁜 현대사회 속 시간은 금과 같이 너무나 소중해서 그 시간 아껴 쓰라고 누군가가 그랬는데, 4개월 동안 그런 시간을 함께해 준 사람들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