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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지막의 순간을 마주할 때면, 알 수 없는 이유의 민트향 뒤섞인 우울함이 찾아온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이건 저렇게 해볼걸', '이때는 이 선택을 할 걸' 등의 생각으로 완벽하지 못한 마무리를 짓는다.

 

오늘은 마지막, 그리고 이별에 대해 다루면서 아트인사이트에게 작별을 고하고 싶다.

 

처음 이별의 슬픔을 느낀 것은 6살 때였다. 일본에 거주하시는 증조할머니의 집에 한 달간 놀러 간 적이 있다. 처음 뵙는 할머니였지만 한 달간의 여름날을 함께했던 할머니와의 작별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할머니께 더 잘해드리고, 더 많은 추억을 쌓을걸이라는 후회 섞인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교환 학생으로 간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과 작별할 때, 또 지금처럼 아트인사이트라는 곳을 떠나갈 때에도, '내가 더 잘할 걸'이라는 후회가 든다. 인생을 살면서 또 어떠한 후회스러운 이별을 마주할 지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전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으며, 고민이 조금 가벼워졌다. 지난 여름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가 나의 슬픔을 덜어준 것처럼 말이다. 문학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이 편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싯다르타’는 과거와 미래의 내 모습은 모두 현재의 내 안에 있다고 말해준다. 잘 마무리 짓지 못해 나에게서 도망가 버릴 것 같은, 놓치고 싶지 않은 과거의 모습들이 어쨌든 계속해서 나와 함께 간다는 생각에 위로가 되었다.

 

책 속에서 싯다르타는 진정한 깨달음을 찾아 나섰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 유흥에 빠져 살기도 한다. 싯다르타는 그 경험으로 인해 사람은 누구나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좋은 스승 혹은 아주 좋은 책을 통해 지식은 얻을 수 있어도, 지혜까지 가질 수 없다는 맥락이다. 그 말인즉슨 내가 후회하는 것은, 이 후회로 인해 얻은 깨달음을 내 안에 새기기 위해 필연적이라는 말처럼 들려 마음이 가벼워진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내가 먼발치서 후회하며 돌아보고 있는 과거가, 또 이런 식으로 와버린 이별이 밉지가 않아졌다. 왜 그렇게 완벽한 이별을 완성하려고 애쓰고 내 자신을 옭아맸을까.

 

나는 교환 학생 마지막 날, 계획했던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떠났다. 일찍 일어나 친구들의 졸업을 축하해주고 여유롭게 내가 좋아했던 장소를 한 번씩 가보려고 했었는데, 늦게 일어나기도 했고, 너무 우울했던 나머지 짐을 싸서 친구들과 울며 급하게 우버를 타버렸다. 그렇게 바보 같고 조금은 찌질한 마지막 날을 보냈다.

 

마지막의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 과정에 있었던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나의 눈동자와 숨 담았던 나무의 향, 그리고 배웠던 깨달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느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주제로 아트인사이트의 마지막 글을 장식하고 싶었으나, 부담감 때문인지 그러한 주제가 도저히 생각이 나지를 않아서 그저 내 속에 있는 솔직한 이야기를 해버린다. 완벽한 마지막 글의 주제로 못 찾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지금까지 새긴 모든 소중한 글들의 효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끝없는 마지막을 마주하다보면, 우리는 언젠가 멋진 사람이 되어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것이 인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실수투성이에 바보 같고, 마음 약해지고 후회하고. 이렇게 약한 존재이기에 이별의 앞에 서서 소중하게 고심한다.

 

로봇이라면 마지막을 깔끔하고 더욱 정제된 상태로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아름답고 작은 인간이기에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엉성한 방식으로 매듭을 조인다.

 

아트인사이트를 되돌아본다.

 

아트인사이트에 속해있던 시간 동안, 글을 통해 나를 지키는 방법을 배웠다. 나의 취향과 문체가 더욱 견고해지고, 문화와 예술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되면서 외부의 어떠한 영향으로부터 나를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전히 약해지겠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올 수 있는 안식처가 생기는 느낌이랄까.

 

도파민 섞인 컨텐츠가 만연한 요즘의 인터넷 속에서 우직하게 자극없는 나만의 글을 써내려가며 행복감을 느꼈다.

 

그래서 혹시나 상처받고 우울하신 분들께는 꼭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들을 만들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20대 초중반, 나의 청춘을 아트인사이트에 내려놓고 흘러간다.

 

나중에 뒤돌아보면 타임캡슐처럼 그대로 있을 나의 청춘 글들에게 미숙한 작별의 인사를 보내며 나는 또다른 이별을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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