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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익숙한 공간이 무척 지겹게 느껴졌던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게는 그런 고루함을 느꼈던 시기가 대학교 2학년 시기였다.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학교의 수업은 어느 순간 지겨워졌고, 당시에 있던 학과 전시를 목전에 두었지만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몰라 피드백 시간에는 그 수업 하나를 넘기기 급급했다.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을 병행하며 바쁘게 지냈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몰라 그저 관성적으로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껍데기 같은 삶을 살다 보니 당연히 눈에 밟히는 이야깃거리는 없었고, 무얼 그려야 할지 몰라 방황하며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그러던 중 당시 듣던 수업의 교수님께서, 무얼 해야할지 모르겠는 그 상태를 그대로 그려보라는 피드백을 전하셨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 든 생각은, '무슨 소리지?' 였지만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었기에 일단 붓을 들었다. 무얼 해야할지 몰라 여러 번을 덧그리고, 다시 하얗게 물감을 덮기도 하며 캔버스가 묘하게 지저분해졌지만, 왜인지 캔버스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캔버스에 그림을 완성시켜야만 내가 고착되어 있는 이 상태를 타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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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탈출], 캔버스에 아크릴.

기존에 그리던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하며 고전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과정조차 즐거웠던 것 같다.

 

 

그렇게 작업한 것이 [지구 탈출] 이었다. 말 그대로 지구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평소에 낙서장에 사사롭게 그리던 만화적인 표현을 차용했고, 당시의 우울하면서도 잠잠한 기분에 맞게 무채색을 사용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애착이 가 아직까지 사진첩에 남아 있는 작업이다. (사이즈가 꽤 크기 때문에 원본은 아쉽게도 폐기되었다...)

 

이 작업을 그리며 조금이나마 와닿았던 점은, 어떤 상황이든 어떻게든 무언가를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손을 움직이며 와닿는 해소적인 느낌, 완성된 작업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뿌듯함이 힘들었던 나를 고루함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글을 읽는 이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손을 움직이는 일에 임했으면 좋겠다. 설령 그것이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더라도, 결국 스스로를 구덩이에서 꺼내주는 돋움판이 되어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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