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감상하고 난 후에 쏘아올려진 학문적 관심이 글로 이어지게 된 3부작의 마지막 시리즈에 해당된다. 첫 번째 시리즈는 <모든 것은 결국 우리 '엄마'의 뜻대로.>라는 제목의 글로, 왜 필자가 뮤지컬 감상 후 든 감상을 무려 3부작으로 구성하여 글을 쓰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필자가 이 뮤지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다룬, 일종의 전초작업적 성격을 지닌 글이다. 두 번째 시리즈는 <'지극히' 인간적인 세계관과 인물들의 불협화음 향연>이라는 제목의 글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대해 약간의 학술적 설명을 가미하여 감상 포인트를 중심으로 쓴 감상글에 해당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시리즈는 두 번째 시리즈에 조금 더 학문적 색채를 더하여, 신앙에 의구심이 많은 필자가 이해한 그리스도교와 예수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하는 자체적인 프로젝트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 글을 관심있게 읽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부디 첫 번째 시리즈와 두 번째 시리즈를 먼저 읽고 오시기를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이 세 시리즈를 기고하기 위해, 나는 『신의 역사』, 『다시 만난 예수: 복음서의 주인공, 예수의 9가지 모습』 그리고 『교회를 위한 성서학: 복음서는 역사적 사실인가?』 이 세 권을 참조했다. 각각의 책은 예수의 행적과 일대기를 다룬 사복음서에 대해 다른 각도로 조명을 비추어 설명해내고 있다. (오늘 이 글에서 『신의 역사』는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두 번째 글에서 이미 중심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1. 『다시 만난 예수: 복음서의 주인공, 예수의 9가지 모습』
- 예수의 생애와 행적을 다룬 사복음서 간의 관계 이해하기
『다시 만난 예수: 복음서의 주인공, 예수의 9가지 모습』에서 재밌었던 점은, 매체를 다루면서 (책에서는 뮤지컬 <해밀턴>이 표현되고 진행되는 방식으로) 예수의 사복음서를 유비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 레베카 맥클러플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면 대개 대체로 조명이 보이지 않게 연출하지만, 뮤지컬 <해밀턴>에서는 일부러 전등을 노출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도 예수를 비슷한 방식으로 조명해낸다. 즉, 각 장은 사복음서 전체를 기반으로 하지만 단순히 합성의 이미지로는 제시하지 않고 각기의 각도로 예수를 조명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내용은 아래의 것으로, 즉, 예수의 생애와 행적을 다룬 네 개의 복음서 간의 관계와 구도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복음서의 특징
(1) 마가복음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예수가 죽고 나서 35-45년 후쯤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복음서이다. 예수님의 절친 중 한 사람인 시몬 베드로의 기억을 바탕으로, 마가라고 하는 요한(당시에는 이름이 두 개인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이 마가복음을 썼다고들 믿고 있다. 또한 가장 분량이 짧은 복음서이며, 긴박감이 넘쳐나서 베드로의 충동적인 성격과도 잘 어울린다고 설명되고 있다.
(2) 마태복음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이자 레위 또는 마태로 알려진 세리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이 집약된 말씀인 산상 설교를 다루고 있다. 또한, 예수님의 생애를 가장 유대교다운 방식으로 기록한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데, 예수와 구약 본문을 연달아 관련짓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비유대인인 인물들을 연이어 엮다가, 예수님이 첫 유대인 제자들을 향해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는 것으로 끝난다.
(3) 누가복음
누가의 기록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함. 누가는 신중한 역사가처럼, '처음부터 목격자였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증언을 차례대로 적었다. 누가는 비유대인이이었고, 의사였다. 이에 따라 여자,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들에게 특히 초점을 둔 복음서이다.
(4) 요한복음
예수 사후 600년 후 기록된 가장 나중에 기록된 복음서이다. 다른 복음서에 있는 사건들은 많이 건너뛰고 다른 데서 크게 다루지 않은 사건들을 집어넣은 복음서이다. 또한 철학적 색채가 짙어서 뮤지컬보다는 오페라에 가까운 복음서이다. 요한은 한 손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무가 실재가 되고, 빛이 어둠이 되고 만물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유대교의 전선을 취한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영원 불변하고 창조 때부터 현존하는 보편 이성(logos)이 있다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주장이 흐르는 전선을 택한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의 우리들이 복음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예수가 유대인 특유의 무대에서 실제 삶을 펼쳐 나간 유대인이었음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무대에 있던 배우들은 자신들을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겼고, 하나님의 오래전 약속을 성취할 하나님의 메시아(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대의 유대인들은 로마 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고대하던 신적 왕의 임재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사렛의 유대인들은 그에 해당하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Christ/그리스도)이라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입을 모아 예수를 칭찬하고 예수의 말씀을 놀랍게 여긴다. 그러나 그 기대는 이내 분위기가 바뀌게 되는데, 그들의 애국적 기대와 달리 예수는 하나남이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돌볼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면서, 그리고 예전에 보았던 영화 <나사렛 예수>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을 때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장면 중 하나가 바로 다음의 장면이었다. 예수를 결국 십자가형에 처하게 만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결국 다 예수와 같은 유대인인데, 왜 굳이 같은 민족의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서 굳이 그 시대의 가장 가혹하고 불명예스러운 십자가 형벌에 처하게 만들었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메시아를 반가이 맞이해야 했던 사람이 있다면 바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환영하기는 커녕 체포했다. (...)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 얼굴에 침을 뱉고 예수를 손바닥으로 철썩 때린다. (...) 대제사장들은 직접 예수에게 돌을 던지지 않고 예수를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내고, 빌라도는 예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는다. 예수는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빌라도에게는 인상적이었다. 당시는 유월절이면 명절을 지키려고 예수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총독이 죄수 한 명을 석방해주는 전통이 있었기에, 빌라도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석방해주기를 원하냐고 물었으나, 무리는 그 반대를 요구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들을 이미 구슬렸기 때문이다. (...) 빌라도는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짓을 하였소?"라고 묻지만 무리는 더더욱 크게 외친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질하고서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넘겨준다."
(p.87~89)
2. 『교회를 위한 성서학: 복음서는 역사적 사실인가?』
- '예수 당시 시대의 사실성이란 무엇을 의미했는가'에 대하여
이 책을 통해서, 필자는 성경에서 표현되고 있는 예수의 일대기가 어떤 점에서 사실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 안용성은 성서 시대 사람들에게 '사실'이란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알고, 그러한 이해 기반에 근거하여 바른 기대를 가지고 성경을 읽는 것이 더 바람직한 태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복음서들 사이에 사실적 차이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안용성은 그 사실적 차이를 당시 사람들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 확률이 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시대의 사실성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에 앞서, 현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실성에 대해 저자는 그것을 실증주의적 사고방식에 기반을 둔 이해임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실증주의의 사고방식을 따르자면 역사적 사실은 경험적이고 합리적인 인과관계를 통해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대인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현실을 초월하는 외적 원인을 가지고 설명하려 했다. 현실 외적인 원인은 감각될 수 없는 것으로서 실증적 사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것이 사실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복음서들은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 그 시대 사람들은 대부분 글이 아니라 말로 소통하고 기억을 통해 정보를 보존하는 구술문화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자 기록이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술 소통과 암기를 돕는 보조 수단에 가까웠고, 그것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엘리트 계층에 국한되었을 뿐이다. 처음 예수를 따른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에 속해 있었다."(p.107)
"사복음서의 저자들 가운데 마가와 누가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예수에 관한 자료를 입수하여 복음서를 저술했을 것이다. 마태는 예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신약성서 학자들의 대다수는 마태가 마가복음을 자료로 사용하여 마태복음을 저술했다는 마가 우선설을 받아들인다. 마태는 예수의 직제자이므로 마가보다 예수에 관해 더 잘 알았을 텐데 왜 마가복음을 자료로 사용했을까? (...) 이렇게 보면 사복음서에 담긴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은 저자들이 예수 사건을 직접 경험하고 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통해 전달된 자료들을 사용하여 저술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에 관한 자료를 어떻게 입수했을까? (...) 신약 성서 학자들의 대다수는 복음서가 저술되기 전에 예수의 말씀과 행적이 사도들과 목격자들의 선포를 통해 전달되고 기억으로 보존되는 기간이 있었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므로 복음서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음서 자료와 구술의 전달 과정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p.107-109)
"예수의 말씀과 행적은 목격자들이 살아있는 가운데 그들의 권위에 기대어 전달되었다. (...) 복음서는 단순히 민간 구전의 수집록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구술 증언에 기초하여 기록된 일종의 구술사(oral history)임을 보여준다."(p.183)
3. 이 시리즈를 마치며.
앞서 상술한 두 권의 책을 통해 그리고 이전 두 번째 시리즈에서 다룬 『신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작년 연말에 관람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장정을 풍성하게 마무리해볼 수 있었다. 예수와 그의 행적을 믿건 아니건, 그는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오죽하면 역사적으로 예수와 아무 관련이 없었던 동양 문화권도 B.C.와 A.D. 서기력을 받아들여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 서기력에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B.C.는 Before Christ이고, A.D.는 Anno Domini이며, 그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 바로 예수의 탄생이다. 이 서기력은 6세기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us)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연대 계산에 오차가 있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과 헤롯 왕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토대로 역사학자들은 예수 탄생이 기원전 6-4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종교, 구체적으로는 기독교와 예수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식견이 좁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상에 종교를 이해하는 방식 중에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필요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 3개의 시리즈로 구성된 글을 기고하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예수와 기독교 제반의 내용들에 대해 신앙심으로는 믿을 수 없지만 내 인생의 많은 시간들을 할애하여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던 주제였던 만큼, 시간이 흘러 필자가 조금 더 지혜로워지고 성숙해졌을 때 또 다른 이해와 믿음에 관한 조금의 관용을 가지고 이 분야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시리즈의 막을 내리고자 한다.